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 다니엘 글라타우어 [원도의 내 인생의 책 ②]
[경향신문]
감정이란 정말 우습고도 고약하다. 나는 왜 이런 행동을 할 땐 머리가 복잡하고, 저런 행동을 할 땐 마음이 편안한가? 이 사람은 왜 나를 보고 싶어하는가? 무엇보다, 나는 왜 저 사람을 사랑하는가? 답은 알 수 없다. 사랑, 우정, 연민, 그리움처럼 감정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낱말은 심하게 비약적이다. 대충 이런 감정이겠지 넘겨짚으면서 거기에 잘도 이름을 붙인다. 이건 사랑이고 저건 우정이지. 누가 알겠는가? 시간도 돈이 되는 세상에서 감정에 대한 탐구는 낭비로 전락했고 그것이 습관으로 굳어져버렸다. 난 저 사람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단지 그가 가진 부분이 마음에 든 것뿐일지도 모르는데. 눈썹이 희미한 내가 반대로 눈썹이 짙은 사람만 보면 속절없이 빠져드는 것처럼. 나의 진짜 사랑은 고등학생 때 친구 소개로 만나 쭈뼛한 자세로 함께 노래방에 갔던 남자애가 아니라, 보고 싶다는 이유 하나로 뻔질나게 다른 반을 드나들게 만들었던, 나보다 키가 작고 피부가 하얗던 친구였는지도 모른다. 참고로 나는 여고를 나왔다.
이 책의 주인공인 에미와 레오는 얼굴 한 번 본 적 없이 메일을 나누며 가까워진다. 생김새도, 성격도, 분위기도 알지 못하는 사이버 관계에서 사랑에 빠지는 건 가능한 일일까? 이들이 느끼는 감정은 정말 사랑일까? 나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는 타인에 대한 고마움이 아닐까. 일상을 공유하는 즐거움을 알게 해준 누군가에 대한 반가움은 아닐는지. 누가 알겠는가? 어쨌거나 이들은 자신들의 관계에서 사랑이란 단어를 읽고 갔다. 나 같아도 지루한 일상에서 ‘그동안 불행한 날들을 정기구독하셨다면 마음 놓고 저에게 구독을 취소하십시오’ 따위의 말을 건네는 이가 등장한다면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을 테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을 읽고 설레서 며칠간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 역시도 사랑을 읽고 말았다.
원도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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