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아 칼럼]민주당의 '꼰대 본색' 드러낸 '당신' 논쟁

김민아 토요판팀 선임기자 2021. 5. 17. 21:1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지난 13일 저녁 국회 본회의장.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의 의사진행발언이 끝났다.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 표결이 선포됐다. 불참을 선언한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하기 시작했다. 정의당 의석 쪽으로 더불어민주당 의원 두 명이 다가갔다. 문정복 의원(54)과 홍기원 의원(57)이었다. 두 의원은 배 원내대표가 박준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13일 사퇴)를 비판하며 “외교행낭을 이용한 부인의 밀수”를 거론한 부분이 사실과 다르다고 항의했다. 배 원내대표가 “그럼 무슨 이유로 사퇴했냐”고 묻자 문 의원은 “아니, 그건 당신이…”라고 답했다. 이를 들은 류호정 정의당 의원(29)이 “당신?”이라고 반문했다. 문 의원은 “야!”라고 소리쳤다. “어디서 지금 감히” “어디서 목소리를 높여!”라고도 했다.

김민아 토요판팀 선임기자

그는 논란이 일자 ‘당신’은 박 후보자를 ‘3인칭’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당신(박 후보자)이 국정에 부담되는 것을 원치 않아서”라고 말하던 중이었다는 것이다. 정의당을 가리킨 게 아닌데, 류 의원이 오해했다는 설명이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당신(當身)’을 찾아보면 다섯 가지 뜻풀이가 나온다. 마지막 다섯 번째가 “ ‘자기’를 아주 높여 이르는 말”이다. 용례로 두 가지를 들고 있다. ‘할아버지께서는 생전에 당신의 장서를 소중히…’ ‘아버지는 당신과는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이라도…’. 문 의원 해명을 듣고 여러 방송사가 인터넷에 올린 영상을 찾아봤다. 일부 영상에선 ‘당신들’처럼 들리기도 한다. 만약 ‘당신들’이 맞다면 박 후보자가 아니라 정의당을 지칭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말을 더 보탤 필요조차 없겠다.

일단 여기선 문 의원 해명을 믿기로 한다. 문 의원을 옹호하는 이들은 류 의원을 비난하며 두 가지를 문제 삼는다. 첫째, 국어교육. ‘당신’이 3인칭으로 쓰이는 맥락을 몰랐다는 거다. 둘째, 말이 짧았다. 오해를 했다 해도 “당신?”이라 되물을 게 아니라 “당신이라니요?” 했어야 한다는 거다.

‘맥락’부터 살펴보자. 국회에서 다른 정당 의원 발언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발언권을 얻어 반박하거나 논평·성명·기자회견 등을 통해 비판하면 된다. 회의 도중 다른 당 의석까지 찾아가 항의하는 건 무례다. 더욱이 일반 의원도 아니고 원내대표 발언을 지적하려면 자당 원내대표나 수석 부대표 등이 면담을 요청하는 게 관행이다.

맥락을 중시하는 사람들이라면, 문 의원이 국회 관례에 따라 행동했는지 그 맥락부터 살펴야 옳다. 말이 짧았는지는 그다음이다. 국어교육에 관해서라면, 문 의원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주권자의 대표인 국회의원이 검증 대상인 국무위원 후보자, 그것도 54세 동갑인 사람에게 조부모·부모에게나 사용할 ‘극존칭’을 쓰다니. 그러곤 같은 주권자 대표에겐 “야!”라니.

‘문제적’ 행동을 한 건 문 의원뿐이 아니다. 영상을 보면 홍기원 의원이 류 의원의 어깨를 밀치는 장면이 나온다. 정치부 기자로 국회에 출입하면서 의원들 간 몸싸움을 자주 봤다. 의장석 점거 혹은 사수를 위해 밀고 밀리는 와중에도 남성 의원들은 여성 의원들과의 신체 접촉을 피하려 애쓰곤 했다. 최소한의 ‘상도의’였다. 홍 의원은 의전과 에티켓을 중시하는 외교관 출신이다. 주영국대사관 공사참사관 출신인 박 후보자 편을 들려다 외교관의 품격마저 잊었나. 소수정당의 ‘딸뻘’ 의원이니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여겼나.

이번 사태는 짧은 시간에 ‘한국형 꼰대 정치’의 민낯을 드러냈다. 문 의원은 동료 의원에게 막말을 했다. 홍 의원은 동료 의원의 어깨를 밀쳤다. 타깃은 ‘나이 어린 여성’ 의원이었다. “당신?”이라고 반문한 의원이 ‘나이 지긋한 남성’이었다면 문·홍 의원이 똑같은 행동을 했을까.

민주당은 어제(17일) 성년의날을 맞아 20대 초청 간담회를 열었다. 송영길 대표는 “뒷세대의 비판에 기꺼이 길을 열어주고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그러나 문·홍 의원의 행태를 통해 “우리 당은 꼰대당”이라고 자백한 격이 됐다. 청년을 동등한 시민, 독립적 인격체로 존중하고 있지 않음을 ‘시청각적’으로 전시했다. 당내 대선주자들이 갖가지 현금 지원 공약을 내놓으면 뭘 하나. “야!” 한 방이 더 강력한데.

국민의힘은 끼어들 생각도 말라. 민주·정의당을 싸잡아 “오십보백보”라고 했는데 ‘당신들’은 논평할 자격조차 없다. 이준석 전 최고위원의 ‘혐오정치’부터 제동을 걸어라.

김민아 토요판팀 선임기자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