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5·18은 국가가 총칼로 국민 생명 빼앗은 사건..용납해선 안돼"

임충식 기자,이지선 기자 2021. 5. 1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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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은 국가가 믿고 맡긴 총칼로 국민의 생명을 앗아간 사건이다. 그 어떤 경우에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

이 지사는 "5·18은 국민들이 믿고 국가에 맡긴 총칼로 오히려 국민의 생명을 앗아가고 위협한 사건이다. 가장 중요한 책무인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을 저버린 사건이다"면서 "국가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돼서는 안 된다"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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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경기도지사 17일 이세종 열사 추모식 방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17일 전북 전주시 전북대학교 이세종 광장에서 열린 '제41주년 5·18 민중항쟁 전북기념행사'에 참석해 추모사를 하고 있다. 2021.5.17/뉴스1 © News1 유경석 기자

(전주=뉴스1) 임충식 기자,이지선 기자 = “5·18은 국가가 믿고 맡긴 총칼로 국민의 생명을 앗아간 사건이다. 그 어떤 경우에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

이재명 경기도 지사가 17일 오후, 전북대학교에서 열린 이세종 열사 추모식에 참석했다.

고 이세종 열사는 5·18 민주화운동의 최초 희생자를 알려진 인물이다. 5·18민주화항쟁기념 전북행사위윈회는 매년 고인이 사망한 5월17일에 추모식을 개최하고 있다.

이재명 지사 추도사에서 “1980년 5월, 저는 소년노동자로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면서 “당시 언론에서는 5·18을 북한군과 폭도들이 폭동을 일으켜 군인들이 많이 죽은 사건으로 보도했다. 주변에서도 들은 이야기가 그랬고 저도 그렇게 믿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대학에 간 뒤에 광주의 실상을 알게 됐고, 그제 서야 제 입으로 그 억울한 사람들을 비난했던 일을 후회했다. 죄송하고 정말 수치스러웠다”고 말했다.

이 지사는 “5·18은 국민들이 믿고 국가에 맡긴 총칼로 오히려 국민의 생명을 앗아가고 위협한 사건이다. 가장 중요한 책무인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을 저버린 사건이다”면서 “국가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돼서는 안 된다”고 힘줘 말했다.

그러면서 “광주 5·18민주화운동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그 진상은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다”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진실을 규명하는 노력을 통해 반드시 진상을 규명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지사는 이날 방명록에 ‘함께 사는 세상, 인권과 평화, 민주가 넘치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겠습니다’를 남겼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17일 전북 전주시 전북대학교 이세종 광장에서 열린 '제41주년 5·18 민중항쟁 전북기념행사'에 참석해 헌화를 하고 있다. 2021.5.17/뉴스1 © News1 유경석 기자

이날 추모식은 대학생들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정치인 등8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송하진 전북지사를 비롯해 김동원 전북대 총장, 도내 국회의원 등도 영상을 통해 추모 메시지를 전했다.

김완술 5·18구속부상자회 전북지부장은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그날의 생생한 뜨거움을 오늘 삶의 현장에서 함께하기 위함"이라며 "과거의 5·18이 오늘을 사는 국민의 일상이 됐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김지광 전북대 총학생회장은 "오늘 어두운 하늘이 자리잡고 있는데, 그날의 하늘은 어떤 분위기었을지 궁금해진다"며 "한 치 앞도 모르는 상황에서 내주신 이세종 선배님의 용기 덕분에 우리가 이 곳에서 공부할 수 있게됐다"고 말했다.

이어 "대학의 민주주의와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과 후배들이 이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선배에게 약속드린다"며 "그 날의 노력과 아픔을 기억하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이세종 열사는 농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지난 1980년 5월17일 전북대 학생회관에서 동료들과 ‘비상계엄 철폐 및 전두환 퇴진’을 요구하며 밤샘 농성을 벌이다가 교내에 진입한 비상계엄군에 쫓겨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18일 새벽 6시께 학생회관 옆에서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단순 추락사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당시 주검을 검안했던 이동근 교수는 추락 전 계엄군의 집단 폭행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민규 순천향대 교수는 2002년 학술세미나에서 “5·18 최초의 희생자는 이세종”이라고 밝힌 바 있다.

94chu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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