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K] 내변산 실상사..사자동 주민들과 함께 '폐사지에 피워낸 연꽃'
[KBS 전주]
'호남의 소금강'이라고 불리는 부안군 내변산.
천왕봉 아래 우뚝 자리하고 있는 실상사에서 '부처님 오신 날' 맞이 준비를 위한 손길이 정성스럽습니다.
[보광스님/실상사 총무 : "어둠을 밝혀가지고 지혜를 기르기 위해서 신라시대 때부터 이렇게 (등을) 밝혀왔다고 보거든요. 그 전통을 계승해서 우리 마음을 밝히려고 하고 있습니다."]
한 잎 한 잎 꽃잎을 붙여 단 등에 소원을 비는 마음이 푸른 산빛처럼 웅숭깊어가는 오후.
[김현희/부안군 변산면 사자동 : "저기 코끼리바위(인장바위)도 보이고, 마음적으로 편안해서 자주 옵니다. 꽃잎을 한 잎 한 잎 만들다 보면, 마음도 더 편안해지고…."]
[시홍준/경상북도 성주군 : "멀리 250Km 날아 와가지고 이렇게 오늘같이 연등도 만들고, 절에 봉사도 하고…. 직장생활 하면서 뭐 보시가 따로 있습니까. 이런 게 보시지. 그렇죠?"]
손수 연등을 만드는 작업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어서 대부분 사찰에서는 사라진 지 오래지만, 변산 4대 사찰 중 하나였던 실상사에서는 고집스레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스님, 요새는 농촌에 손이 없어가지고 연등 만들기가 쉽지 않을 텐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셨어요?) 전통을 계승하면서 지역 주민들하고 같이 협력해서 살아가자 해서 구상을 했습니다."]
속세에서 찌든 묵은 것들을 훌훌 털어버리고자 인연 따라 마음 따라 찾아오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정원/경상남도 사천시 : "여기 와서 불기 닦으면서 마음의 때도 벗기고, 몸의 때도 벗기고…. 안과 바깥의 때가 다 벗겨지는 느낌이 들어서 좋네요."]
오랫동안 절과 이웃해 더불어 살아온 사자동 마을 주민들.
해마다 이맘때면 열일 제쳐두고 '부처님 오신 날' 준비에 발 벗고 나섭니다.
머윗대며 오가피 순 등 산나물을 직접 채취하고 손님 맞을 음식을 만들며 작은 마음을 보탭니다.
[강영자/부안군 변산면 사자동 : "아, 좋지. 자연에서 해서 먹으니까. 사먹는 것보다 맛도 더 있고…. 이거 손님들도 좋아라고 그래, 해드리면. 이 것뿐만 아니고 산나물 좋잖아. 무공해고…."]
불교의 연중행사 가운데 가장 큰 명절을 기리기 위한 주민들의 정성은 제초작업을 하는 데에도 이어집니다.
[김보연/부안군 변산면 사자동 : "실상사 터가 넓어가지고 해년마다 풀을 제거하는 데 많은 인력이 동원되는데요. 저는 동네 살면서 자주 왔다 갔다 하면서 자주 이렇게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신라 689년, 초의선사가 창건하고, 조선 양녕대군이 중창을 한 1,300여 년 역사를 가진 실상사.
[지안스님/실상사 주지 : "실상사는 선인봉이라고도 하고, 천왕봉이라고 하는 뒷산을 중심으로 해서 앞에 인장봉을 두고 지어진 곳인데, '실상(實相)'이라는 말은 '근원이다', '핵심이다' 이런 뜻에서…."]
미국 로스엔젤레스 카운티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시대 문신이자 서화가였던 표암 강세황이 그린 〈부안유람도권〉.
당시 실상사 가람이 그려져 있어 예전 실상사의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지난 2017년 국보 제320호로 승격 지정된, 세종대왕이 지은 악장 〈월인천강지곡〉이 발견된 곳이기도 합니다.
6.25 전쟁 당시, 전라북도 내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전소되는 아픔을 겪은 절.
그나마 1995년, 현 주지 지안스님에 의해 복원불사가 시작되어 미륵전과 삼성각, 요사채 등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마을 청년들이 올라와서 '스님, 우리가 돈이 없으니까 절에 일이 있으면 열심히 와서 일을 도와드릴 테니까 가지 말고 사십시다.' 그 말이 고마워서 내가 지금까지 주저앉아서…."]
수려하고 웅장한 산세, 잠들어 있던 천 년 역사를 깨워 연등을 만들고 음식을 준비하는 등 스님과 마을 주민들이 하나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보광스님/실상사 총무 : "상생과 협력과 화합. 외형적인 모습보다는 과정에 뜻을 모으고, 대화를 나누고…. 그 속에 정화가 있고, 치유가 있지 않을까…."]
[지안스님/실상사 주지 : "내변산은 변산국립공원의 중심축인데도 전혀 아직 어떤 발전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어요. 이런 침체된 어떤 상황을 관계 요로에서도 합심을 해가지고 (실상사를) 부흥시킬 수 있도록…."]
아직 그럴싸한 범종도, 일주문도 갖추지 못했지만 우리가 지켜가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
오랫동안 폐사지로 남았던 아픔을 잊고, 꽃씨 한 줌, 나무 한 그루에도 부처님의 자애로움이 깃들여지길 바라는 손길들이 조용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KBS 지역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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