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기의 D사이언스] 과학 품격 높인 생명공학 代父.. "D-바이오텍 역량 키워야"

이준기 2021. 5. 17.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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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유학시절 다양한 분야 연구.. 융합연구 중요성 알게돼
효소공학 기술로 설탕대체 감미료 생산.. 식품업계 혁신
88올림픽서 선수들 도핑검사.. 약물분석기술 우수성 알려
AI 등 첨단 디지털기술 접목 신약개발 생태계 마련 강조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제공

이준기의 D사이언스 한문희 前한국생명공학연구원장 (초대 소장)

88세(米壽)의 나이가 믿기지 않았다. 노(老) 과학자의 모습은 언제부터인가 시간이 멈춘 듯 옛스러운 젊음으로 채색돼 있었다. 그를 보면서 나이듦의 품격과 멋스러움에 대해 새롭게 정의할 수 있었다.

특히 평생 과학자로 살아온 그의 인생을 반추해 볼 때, 그는 늘상 과학에 대해 올곧았고, 진취적·혁신적 자세로 일관해 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인터뷰 내내 '과학계의 진정한 개척자이자 혁신가' 면모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그만큼 생명공학 분야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는 뜻이다.

이런 점을 인정받아 국내 생명공학계의 대부(代父)인 한문희(사진) 박사는 지난해 '대한민국 과학기술 유공자'라는 최고의 영예를 안았다. 남다른 애정과 헌신, 노력을 통해 이 땅에 생명공학의 초석을 놓은 개척자이자 평생 국가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한 한 박사에게 국가 차원의 최고 예우를 뒤늦게나마 수여한 셈이다.

한 박사는 "지금도 국가와 국민에게 어떻게 보답해야 할 지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가 기술 선도국으로 나아가려면 기존 바이오 기술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디지털 바이오텍'에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고 'D-바이오텍' 육성에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지금껏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한 '캐치 업' 전략으로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성장했지만, 지금부터는 기초연구에 기반한 산업화 기술에 더 많은 투자와 지원을 통해 선진국을 능가하는 '선도형 전략'으로 디지털 시대를 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담=이준기 ICT과학부 차장

◇6.25 전쟁 중 대학 입학…'효소 연구 개척자'로 첫 발=한 박사가 고등학교 시절 6.25 전쟁이 일어났다. 전쟁을 피해 학교가 부산으로 내려갔지만, 한 박사는 경기도 인근에 마련된 종합학교에서 학업을 이어갔다. 전쟁 중에 대학 입학시험을 치러 서울대 생물학과에 입학했고, 휴전과 함께 잿더미가 된 캠퍼스에서 공부를 이어가며 거의 독학으로 졸업했다.

그는 "6.25 전쟁 이후여서 공부를 하고 싶어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면서 "친구들과 모여 함께 공부하고, 시험도 보고, 관심있는 분야는 개인적으로 독학하면서 공부하던 시기였다"고 고난했던 학창시절을 떠올렸다.대학 4학년 때 효소를 주제로 졸업논문을 쓰면서 효소 연구와 첫 인연을 맺었다. 하지만 효소 연구를 지도할 교수가 국내에는 없었다. 외국 원서를 어렵사리 구해 혼자 공부하며 효소 연구를 이어갔다.

한 박사는 대학원 졸업 후 제대로 된 효소 연구를 위해 미국 유학을 결심했다. 그는 "생명 현상을 근본적으로 알려면 효소를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에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며 "당시 효소 연구를 활발하게 하던 미국 플로리다주립대로 유학을 떠나게 됐다"고 말했다.미국 유학 시절, 효소 연구뿐 아니라, 생명현상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기 위해 화학, 물리화학, 양자과학 등 어떤 분야도 가리지 않고, 공부와 연구를 이어갔다. 돌이켜 보면, 그 때 융합연구의 중요성을 알고, 생명공학 분야에 융합연구를 도입하는 계기가 됐다고 한 박사는 설명했다.

◇설탕 대체·항결핵제 연이은 '산업화' 완수=그는 1974년 국가의 부름을 받고 '해외유치 과학자' 신분으로 고국에 돌아와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 새 둥지를 마련하고, 효소연구에 본격 나섰다. 당시 국제 원당(原糖) 가격 상승으로 국내 설탕 값이 치솟아 사회적 문제로 불거졌다.

한 박사는 자신을 취재하던 기자에게 "전분으로 설탕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고, 이를 기자가 기사화했다. 신문 보도를 본 과학기술처 차관이 자신을 불러 "진짜 전분으로 설탕을 만들 수 있나"고 묻었고, 한 박사는 "효소공학 기술로 가능합니다"고 답변했다.

이게 계기가 돼 정부의 연구비 지원을 받아 10개월 간의 연구 끝에 설탕을 대체하는 감미료인 '이성화당(인조꿀)' 생산 공정 개발에 성공해 설탕의 안정적 생산에 기여했다.

그가 개발한 기술은 미원, 선일포도당, 럭키 등에 이전됐고, 생산공정까지 만들어 산업화에 성공해 우리 기술로 전분당 산업 발전과 식품 분야에 새로운 혁신을 가져왔다.

이어 한 박사에 주어진 두 번째 연구 미션은 결핵 환자를 위한 항생제 개발 프로젝트였다. 당시 항결핵 항생제인 '리파마이신'의 중간 원료는 전량 해외에서 수입해 사용했다. 하지만, 원료값이 너무 비싸 모든 결핵 환자에게 항생제를 보급할 수 없었다.

한 박사는 생물학·화학적 발효 공정을 거쳐 항결핵제 원료를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비록 중간에 연구에 진척이 없어 연구비가 중단될 위기가 있었으나, 가능성을 본 최형섭 KIST 원장의 든든한 지원으로 균주부터 원료 생산까지 전 주기에 걸쳐 공정을 완성할 수 있었다. 개발한 기술은 종근당과 유한양행 등 국내 제약사에 이전됐고, KIST는 유한양행과 합작회사인 '유한화학'을 세워 의약원료 국산화와 국민 건강 증진에 기여하는 토대를 놓았다.

◇'유전공학' 씨앗 뿌리고, '88올림픽' 도핑검사 성공 추진=1980년대 들어 유전공학기술이 새롭게 조명받았다. 국내 생명공학 산업 발전을 위해 유전공학 분야가 국가 경제개발계획에 포함돼야 한다는 것을 인식한 한 박사는 과기처에 정책연구를 제안했다. 그 제안이 받아 들여져 '생명과학과 생물공업기술의 육성을 위한 연구개발계획수립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만들었다.

한 박사 주도로 마련된 이 보고서의 파급력은 어마어마했다. 과기처는 이 보고서를 계기로 정부의 주요 정책에 생명공학 분야를 처음으로 포함시켰고, 새 정부에선 '유전공학육성법(현 생명공학육성법)' 제정과 현재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모태인 '유전공학센터' 설립도 가능해졌다.

생명공학 분야가 국가 경제발전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게 이 때 부터였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유전공학센터는 당초 대학에 설립키로 했다가 한 박사의 강력한 반대로, KIST 부설기관으로 출범할 수 있었다. 한 박사는 초대 유전공학센터 소장을 맡았다. 유전공학센터는 설립 5년 후 대덕연구단지로 이전해 1995년 생명공학연구소로 이름을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유전공학센터 소장으로 재직하면서 올림픽 역사에 기리 남을 커다란 족적도 세웠다. 바로 86 서울 아시안 게임과 88 서울 올림픽에서 선수들의 도핑검사를 총책임지는 역할을 수행했다. 당시 약물검사를 할 수 있는 아무런 기반도 없었다.

한 박사는 도핑컨트롤센터 소장을 역임하며 99종의 약물분석 시스템과 장비를 성공적으로 구축하고, 베타-차단제와 이뇨제 분석기술도 독자 개발해 올림픽 기간 동안 도핑약물검사 지원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이 과정에서 컴퓨터로 약물을 분석하는 스크리닝 시스템을 처음으로 도입해 검사의 높은 정확도와 신뢰도를 갖춰 세계에서 15번째로 국제공인시험센터 인증을 받아 약물분석기술의 우수성을 해외에 널리 알리는 기반을 마련했다.

◇'D-바이오텍'으로 '바이오 강국' 선도해야=한 박사는 기초연구부터 임상연구까지 풀 사이클에 걸친 '신약개발 연구'와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디지털 바이오텍'으로 무장해 생명공학 기술 선도국으로 나서야 한다고 피력했다.

그는 "제가 70년대 시작할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하늘과 땅 차이로, 많은 발전과 성장을 이뤄왔다"며 "그간 축적한 연구역량과 인프라 등을 바탕으로 기초연구부터 임상시험까지 일괄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신약개발 생태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이오 분야 연구개발부터 사업화까지 토털 에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박사는 더 나아가 "이런 신약개발 시스템은 AI, 빅데이터 등 첨단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디지털 바이오텍'으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의 강점인 ICT 기반의 디지털 기술을 신약개발 등 바이오 분야에 적용해 집중 육성해야 선도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게 한 박사가 추구하는 지향점이다.

그는 "우리나라는 한국형 전투기 'KFX'를 국산화할 정도로 세계 최고 기술을 보유한 나라가 됐다"며 "국민소득 3만 시대를 넘어 4만, 5만 달러라는 더 큰 포부와 목표를 갖고 '선도형 기술전략'으로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데 과학기술 역량을 모으자"고 당부했다.이준기기자 bongchu@dt.co.kr

ICT과학부 차장·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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