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튠스 1위곡 '그러지 마', 세계를 먼저 홀린 우울의 색깔은
'프래질'로 돌아온 가수 이이언
RM 참여 타이틀곡 '그러지 마'
월드와이드 아이튠스 차트 1위
그의 노래는, 밤의 적막함이 감돌지만 색채감이 살아 있는 미국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같다. 그 역시 호퍼의 밤 풍경을 좋아한다고 했다. 어둠과 우울의 정서를 독창적인 사운드로 보여주는 싱어송라이터 이이언. 그가 최근 솔로 정규 2집 <프래질>(Fragile)로 돌아왔다. 밴드 ‘못’으로 활동하던 그가 2012년 솔로 정규 1집 <길트프리>(Guilt-Free)를 낸 이후 9년 만이다.
지난 1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사무실에서 이이언을 만났다. 낮이었지만 커튼으로 빛을 가린 채 은은한 스탠드 불빛 아래 마주했다. 스피커에선 그의 노래가 계속 흘러나왔다. 결코 우울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인터뷰는 웃음이 오가는 분위기에서 유쾌하게 진행됐다.
앨범 첫 곡이자 타이틀곡 ‘그러지 마’는 월드와이드 아이튠스 송 차트와 아이튠스 뮤직비디오 차트 1위에 오르는 등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유튜브 뮤직비디오 조회수는 17일 현재 920만회에 이른다. 이이언도 깜짝 놀랐다고 했다. “외국 팬이 정말 많이 늘어난 것 같아요. 에스엔에스(SNS)에서 한글 번역기를 돌리며 수고스럽고 정성스러운 과정을 거쳐 댓글 다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댓글에 ‘밥’(bop)이라는 단어가 많이 보여서 직접 찾아봤더니 ‘좋아서 계속 반복해 듣게 되는 노래’라는 뜻이더라고요. 놀랍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해요. 문화와 언어가 다른 이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건, 음악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이 노래가 갑자기 널리 알려진 데는 피처링으로 참여한 이의 영향력도 한몫했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알엠(RM)이 작사·작곡은 물론 보컬로도 참여했다. 이이언은 “앨범을 준비하면서 알엠씨에게 같이 해주면 좋겠다고 요청했더니 흔쾌히 받아줘서 같이 타이틀곡을 작업하게 됐다”고 했다. 앞서 알엠이 자신의 믹스테이프 <모노>(2018)의 ‘배드바이’를 제작할 땐 이이언이 피처링으로 참여하는 등 둘은 전부터 우정을 쌓아왔다.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이이언은 “5년 전 알엠씨가 제 음악을 좋아한다며 언제 한번 만나면 좋겠다는 트위터 다이렉트 메시지를 보내면서 친분을 쌓기 시작했다”고 했다. ‘처음이자 마지막 경험’이라며 재미난 에피소드 하나도 공개했다. “알엠씨와 홍익대 근처 상수동에 있는 작은 바에서 술을 몇잔 한 뒤 계산하려는데 손님 두어분이 저한테만 사인해달라고 했어요. 아마 언더그라운드 가수의 홈그라운드여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러지 마’는 떠나려는 이를 설득하려는 연인의 이별 이야기다. 그가 고통받고 힘들어했던 경험도 녹아 있다. “1차원적으로는 연인 사이의 이별 이야기지만, 저로서는 음악을 접고 다른 뭔가를 해볼까 했던 때를 그린 은유적인 곡이기도 해요.”
이이언은 2019년 공황장애로 고통받았다. 힘들었던 나날이라고 했다. 어떻게 극복했을까? “제가 할 수 있는 게 100이라면, 120이 아닌 100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겠다고 생각을 바꿨어요. 예전에는 오늘 멋진 작품을 만들면 내일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었죠. 불나방 같은 생각이었어요. 지금은 뮤지션으로 계속 발전하고 싶다고 생각해요. 당장 소모해서 저를 갈아 넣기보다 성장하고 발전하는 직업인으로서의 음악인이 되겠다고 생각을 바꿨어요.”
이이언은 소리를 치밀하게 변주해 낯선 아름다움을 찾기로 유명하다. 그는 “소리에 대해서는 악명 높을 정도로 집착하며 작업을 했다. 솔로 1집을 만들 때가 정점이었다”고 했다.
지금은 어떨까? “이번 앨범을 작업할 때는 사운드의 디테일보다는 전체적인 멜로디와 가사가 잘 전달되도록 좀 더 신경을 썼다”고 했다. “예전에는 세상에 흔치 않은 기발한 문장을 찾으려고 했어요. 지금은 문체의 기발함보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좀 더 초점을 맞추는 편이에요.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적합한 사운드를 찾고 있죠.”
이번 앨범에는 많은 후배 가수가 힘을 더했다. ‘눌’에는 리듬앤드블루스(R&B) 가수 제이클레프, ‘매드 티 파티’에는 래퍼 스월비가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타이틀곡 ‘그러지 마’엔 재즈 싱어송라이터 은희영이 기타 연주로 함께했다. “도움을 줬던 분들과 뒤풀이 자리를 했는데, 너무 친해져서 자주 보는 사이가 됐어요. 다들 외향적인 분들이 아닌데도, 서로 말이 잘 통했어요.” 그는 앞으로 릴 체리, 소금, 우효 같은 가수와도 함께 작업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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