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양의무자 기준 완화했지만..'방배동 모자' 아직도 42만가구
사각지대 아직 42만가구 남은 것으로 추정
전문가 "소득인정액 판정 기준도 너무 엄격"
정부가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 기준을 추가로 완화해 최근 넉달간 6만여가구가 새롭게 생계급여를 받게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기준에 대한 단계적 폐지 속도가 워낙 느린 데다 의료급여 신청자에게는 지금도 이를 적용하는 터라 ‘사각지대 빈곤가구’는 여전히 40만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발달장애인 아들과 함께 살다가 숨졌으나 수개월 방치됐던 ‘방배동 모자’ 사건의 60대 여성이 현재 살아있다고 해도 올해는 생계·의료급여 대상에 들어가지 못한다.
보건복지부는 17일 보도자료를 내어 “올 1월1일부터 노인·한부모 가구에 대한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로 저소득층 6만2618가구가 새롭게 생계급여를 받게 되었다”며 “연말까지 9만5천가구가 더 늘어나면 약 15만7천가구가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로 추가로 생계급여를 지원받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부양의무자 제도란 기초생활보장법에 따라 한 가구의 소득인정액이 생계급여(소득인정액이 기준 중위소득의 30% 이하)나 의료급여(″40% 이하)를 받을 수 있는 기준을 충족하더라도, 따로 사는 1촌 직계혈족(부모·자녀)이나 배우자가 부양 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수급권을 제한하는 제도로 복지 사각지대를 낳는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이에 정부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조금씩 완화해왔다. 2018년 10월에는 주거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없앴다. 지난해 8월에는 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을 발표해 수급자 가구에 중증 장애인이 있는 경우 부양의무자 기준을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이어 올해 1월부터는 노인과 한부모 가구에도 이 기준을 적용하지 않고 있고, 내년에는 나머지 모든 빈곤가구에도 생계급여에 한해 부양의무자 기준이 없어진다. 복지부는 지난달 2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2021년 15만가구, 2022년 3만가구가 신규로 생계급여를 지원받게 된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정부가 의료급여에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계속 적용하기로 하는 등 제한 조건을 남기면서 빈곤층 복지 사각지대는 여전히 발생할 공산이 크다. 지난해 정부는 2차 종합계획을 발표할 때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의료급여·생계급여를 받지 못한 ‘비수급 빈곤층’이 2018년 기준 48만가구(73만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추가 기준 완화로 6만여명이 새롭게 수급자가 되었어도 여전히 42만가구 이상이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얘기다. 민영신 복지부 기초생활보장과 과장은 “다만 소득·자산을 따지는 기준 중위소득이 최근 통계 작성 방식 변화로 전보다 더 높아졌고, 2018년부터 단계적으로 신규 수급자가 늘어난 측면도 있어 실제 비수급 빈곤가구 규모는 달라졌을 수 있다”며 “2021년 실태조사 결과가 나와야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인회 서울대 교수(사회복지학)는 “부양의무자 기준뿐 아니라 소득인정액 판정 기준이 너무 엄격해 생기는 사각지대 등도 있어 실제 사각지대 규모는 더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 4년 특별연설에서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에 속도를 내겠다“고 했다. ‘방배동 모자’ 사건 직후인 지난해 12월22일 민주당 당시 정책위의장이던 한정애 의원도 “폐지 정책 속도를 점검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방배동 모자’ 사건 뒤에 추가로 제시한 개선방안은 나온 게 없다. 민주당 관계자는 “여당 차원에서도 추가적인 논의는 없었다”고 밝혔다. 외려 복지부는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을 지난해 잇따라 4개 발의한 것에 대해서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사실상 반대 의견을 냈다. 이에 따라 ‘방배동 모자’의 경우 올해도 생계급여·의료급여 대상이 되지 못하고, 내년에야 생계급여 지급 대상에 들어가게 된다. 지금 고인이 된 모친은 부양의무자 기준이 없는 주거급여는 받았지만, 왕래가 끊긴 전 남편과 딸에게 부양의무자 관련 연락이 닿는 것을 꺼려 생계급여와 의료급여 신청을 포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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