욱일기 쓰면 징역 10년? "너무나도 박정희적인 법안"

최민지 기자 입력 2021. 5. 17. 17:06 수정 2021. 5. 17.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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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일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일본 제국주의를 찬양할 경우 10년 이하 징역이나 2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한 이른바 역사왜곡방지법안을 발의한 것을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연구와 토론의 영역에 맡겨야 할 역사 문제를 형사처벌 대상으로 간주하면 역사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토론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상의 자유를 속박하는 국가보안법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온 여당이 이 법안의 ‘찬양·고무’ 조항을 근거로 욱일기 사용을 규제하는 행태가 모순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17일 국회에 따르면 김용민 민주당 의원이 지난 14일 대표발의한 역사왜곡방지법안은 헌법에 명시된 3·1 운동과 4·19 항쟁을 계승하고, 역사 왜곡 행위 및 일본 제국주의를 찬양·고무하는 행위를 방지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일제를 찬양·고무·선전할 목적으로 일제를 상징하는 욱일기(사진) 등 군사기나 조형물을 사용하는 행위도 금지한다. 이 법안 발의에는 김 의원을 비롯해 같은당 소속 김남국·이재정·장경태·한준호 의원 등 12명이 참여했다.

법안에 따르면 역사 왜곡과 일제 찬양 여부는 ‘진실한 역사를 위한 심리위원회’를 설치해 판정한다. 역사학자 등 9인의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는 역사 왜곡 행위와 일제 찬양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 권한을 갖게 된다. 시정명령에 불복할 경우 이의 신청을 하거나 법원에 소를 제기할 수 있다. 김 의원은 지난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항일 독립운동이라는 숭고한 가치를 거짓으로 훼손하고 모욕하는 행위가 빈번해 국민적 공분이 커지고 있다”며 발의 배경을 밝혔다.

학계와 법조계에서는 역사를 옳고 그름의 문제로 보고, 형사처벌을 전제로 특정 표현 사용 등을 금지하는 것은 헌법상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비판이 많다.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사상이 자유롭게 개진되고 토론을 통해 살아남는 메커니즘으로 이룩하려는 게 민주주의인데, 국가의 힘으로 억압하고 강제하는 것은 사상 시장이 성숙하지 않게 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정준 서울시립대 사학과 교수도 “자신의 신념이나 사상을 드러내는 행위에 대해 국가가 개입하고 법적 처벌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은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며 “법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이 건강한 논의와 토론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국가보안법에 비판적인 민주당 의원들이 욱일기 사용 등을 일제 찬양·고무라며 규제하는 행태가 모순적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임지현 서강대 트랜스내셔널 인문학연구소장은 “법안의 ‘찬양·고무’ 조항은 사실상 국가보안법의 멘털리티(사고방식)”라며 “역사 해석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이 역사적 정답을 제시한다는 것인데 (이 법안을 만든 이들이) 역사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인식론적 틀은 너무나도 ‘박정희적’이고 ‘박근혜적’”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한 5·18 역사왜곡처벌법에 이어 역사 왜곡 관련 법안이 잇따라 발의되는 데 대한 우려도 있다. 손 변호사는 “(관련 법안이 제한하는) 표현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위험을 주는지 검증 없이 입법이 추진되는 것은 반일 정서에 기댄 포퓰리즘”이라고 말했다. 임 소장도 “정권이 바뀌어 반대로 ‘6·25 전쟁은 남침’이라는 점을 부정하는 이들을 처벌하는 법을 만든다면 민주당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겠느냐”며 “결국 자가당착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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