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代에 쓴 청춘의 자화상 "밀려드는 실패에 답 됐으면.."

서정원 2021. 5. 1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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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금희 인터뷰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출간
젊은 날의 좌절과 사랑 그려
"좌절을 좌절이라 말하며
부인하지 않는 것이 성장"
김금희 소설가 [사진 제공 = 창비]
소설가 김금희(42)에게 30대는 ‘불안’이고 ‘조급’이었다. 나이 서른에 직장을 그만두고, 꿈꿔왔던 작가의 길로 들어섰지만 현실은 험했다. 등단 후 5년 가까이 책을 내지 못했고 스스로도 글이 마음에 들지 않곤 했다. 후반기엔 신동엽문학상·젊은작가상·현대문학상을 수상하고, 장편 ‘경애의 마음’이 7만 부 이상 나가는 등 성취가 있었지만 과도하게 자기를 몰아친 탓에 스트레스가 컸다. “뒤도 안 돌아보고 달리며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며 “나를 잃을 뻔한 순간들이 많았다”고 작가는 회고한다.

지난 10일 출간된 소설집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엔 파란만장했던 30대, 그리고 그 출발이 됐던 20대의 정서와 기억이 아로새겨져 있다. 최근 서울 서교동 창비에서 만난 김금희는 “책에 묶은 단편들을 모두 40대에 썼다”며 “지나온 시절들에 대한 나만의 해석이 가능한 때가 오지 않았나 싶다”고 운을 뗐다. 과연 7편의 수록작은 설익었지만 풋풋했던, 혼란 속에서 커나갔던, 또 사랑하고 이별했던 청춘을 그려낸다.

표제작 ‘우리는…’의 화자 ‘채은경’은 대학 시절 선배 ‘기오성’과 여름 한 철을 같이 보낸다. 경기도 광주에 있는 노교수의 종택에서 족보 정리 일을 하면서다. 금요일마다 모란시장을 걸으며 농담을 주고받고, 또 밤이면 영화나 음악 취향을 공유하며 둘은 점점 더 가까워진다. 관계는 제법 견고해보였지만 “(기오성과) 아주아주 딥한 얘기들을 했다”는 교수의 손녀 ‘강선’의 한 마디에 균열로 치닫는다. 사랑은 허무하리만치 끝나고 오성은 구호 활동을 한다며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이라크로 떠난다. 훗날 옛 연인을 다시 만난 은경은 느지막이 돌이킨다.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 수 없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어서 울고 싶은 기분으로 그 시절을 통과했다는 것. 그렇게 좌절을 좌절로 얘기할 수 있고 더 이상 부인하지 않게 되는 것이 우리에게는 성장이었다.”

젊은 날의 혼란과 실패, 그리고 재회의 테마는 다채롭게 변주된다. 진학과 적응에 실패한 두 사람을 그린 ‘우리가 가능했던 여름’, 유학생 ‘이기성’이 재일 한국인 ‘유키코’와 따로 또 같이 투쟁했던 추억을 담은 ‘마지막 이기성’ 등의 단편을 통해서다. 등장인물들의 과거는 마냥 찬란하지만은 않다. 외려 감추고 싶을 만큼 부끄럽지만, 이조차 삶의 한 부분이기에 아끼고 보듬게 되는 기억들이다. 김 작가는 “무결하게 성공한 삶은 언제도, 어디에도 없다”며 “밀려드는 실패에 맞부딪혀 어찌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의 의문에 답해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자신도 청춘을 지나면서 많은 것을 잃고 얻었다. 맨 처음 작가가 됐을 때 마주한 건 고독이었다. 자기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내면으로 침잠해야 했고, 어쩔 수 없이 주변 사람들과도 멀어졌다. 그럼에도 “후회는 없다”고 그는 고백한다. “작가는 근원적인 고독감에 끊임없이 시달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다시 결정할 수 있다고 해도 저한테 필요한 고독을 유지하기 위해선 선택에 변함은 없을 겁니다.”

40대의 김금희는 한결 여유로워졌다. 예전엔 정신적 무게에 짓눌려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듯 글을 쓰는 때도 있었다면, 지금은 한결 편하고 자연스럽게 나온단다. 사회에 대한 책임감은 더욱 커졌다. “작가는 ‘세상’이란 직장에 복무하는 직장인”이라며 “사회의 문제적 사건들을 소설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황우석 사태(‘우리가…’)·이라크 파병(‘우리는…’) 등 2000년대 한국사의 분기점들이 소설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건 이런 고민의 결과다. “정부가 이라크 전쟁 참여를 결정했을 때 충격이 컸습니다. 가치를 지키는 게 아니라 미국과 관계 속에서 타협적인 선택을 했죠. 소설 속 ‘기오성’이 기성세대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신념을 손쉽게 선택하는 것처럼요.”

현실의 김금희는 옳다고 믿는 바를 올곧게 고수한다. 지난해 그는 ‘수상작 저작권을 3년간 출판사에 양도하고 작가 개인 단편집에 실을 때도 표제작으로 내세울 수 없다’는 부당한 조항에 맞서 이상문학상 우수상을 거부했다. 표준계약서·인세 누락 등 최근의 작가 권리 이슈에 대해서도 그는 용기 있게 말했다. “저술노동자로서 작가의 권리와 처우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 건 좋은 신호라고 봅니다. 하루아침에 한 사람이 바꾸기는 어려운 문제이지만 언젠가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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