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욱의 술기행](50) "현지화 전략으로 코로나 파도 넘었어요."

박순욱 선임기자 2021. 5. 17.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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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의 수제맥주 양조장 '크래프트루트' 김정현 대표
대한민국주류대상 수제맥주부문 최고상(Best of 2021) 받아
동명항 페일에일, 속초IPA, 대포항 스타우트 등 지역명을 브랜드로
"쌉싸름한 맛 도드라지지 않아..쓴맛, 단맛, 과일향이 적절한 '밸런스'가 핵심"
속초에 위치한 수제맥주 양조장 크래프트루트의 캔 맥주들. 속초 지역명과 풍경을 라벨에 담은 것이 특징이다. /크래프트루트

동명항 페일에일, 속초IPA, 청초호 골든에일, …

속초를 대표하는 랜드마크 지명과 풍경을 맥주캔 라벨에 담은 크래프트루트 수제맥주들이 올해 대한민국주류대상에서 호평을 받았다. 산뜻한 오렌지, 자몽 향이 나는 ‘동명항 페일에일’은 수제맥주 부문 최고상인 ‘Best of 2021’상을, 강원도 쌀을 10% 넣은 ‘하이&드라이’는 대상을 받았다.

이들 맥주들을 만드는 양조장 크래프트루트는 설악산이 ‘파노라마’로 보이는 설악산 바로 밑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1층 브루펍에서는 설악산 명물인 울산바위, 대청봉을 바라보면서 맥주를 즐길 수 있다. 맥주 맛이야 개인 차이가 있겠지만, ‘전망(뷰)’만큼은 전국의 어느 수제맥주 양조장보다 낫다고 해도, 이견이 없을듯 싶다. 아직 해가 지기 전인 초저녁에 가면, 설악산의 풍경과 함께 속초 수제맥주를 같이 누릴 수 있다.

동명항 페일에일을 마셔봤다. 양조장측이 설명한대로 오렌지, 자몽, 라임향을 느낄 수 있었다. 쌉싸름한 맛도 도드라지지 않았다. 한마디로 맥주의 ‘밸런스’가 뛰어난 수제맥주라는 생각이 들었다. 맥주 본연의 단맛, 쓴맛, 과일맛 등이 전체적으로 잘 어우러져, 어느 한맛이 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수제맥주 특유의 깊고 진한 풍미가 일품이었다. 알코올 도수는 5%. 술에 약한 분들도 별 거부감이 없을 만한 ‘착한 도수’다.

그러나, 착하지 않은 것도 있다. 편의점 판매 가격이다. 동명항 페일에일을 비롯한 크래프트루트 맥주들은 속초 주변 편의점에서 7000원에 판다. ‘네 캔에 만원’이 편의점 취급 맥주의 대세로 자리잡은 게 언제인데 한 캔에 7000원이라니?

크래프트루트 김졍현 대표가 속초 양조장에서 만드는 제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손에 들고 있는 제품이 대한민국주류대상 최고상을 받은 동명항 페일에일. /박순욱 기자

크래프트루트 김정현 대표의 설명은 이랬다. “양조장 브루펍과 똑같은 가격에 속초 인근 편의점, 대형마트에서 팔고 있다. 서울을 비롯한 타 지역 편의점까지 공급할 정도의 생산 능력이 안된다. 또, ‘네 캔에 만원’을 맞추려면 부득이 품질을 떨어뜨려야 하는데, 그러기는 싫어서 높은 가격을 고수하고 있다. 그래서 ‘가격 깡패’라는 소리도 듣지만, 의외로 속초 인근 편의점주들은 좋아한다. 저렴한 맥주 네 개를 파는 것보다 우리 맥주 한 캔 파는 것이 마진이 더 좋기 때문이다.” 전국 편의점에 ‘네 캔에 만원’ 제품 공급을 포기한 것은 품질을 양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김 대표의 얘기다.

속초 양조장 1층의 펍과, 서울 익선동, 신사동 펍에서 취급하는 맥주 가격은 여타 수제맥주와 가격이 비슷하다. 속초 인근 편의점 판매 가격만 다른 맥주 캔에 비해 비싼 편이다. 규모가 큰 수제맥주 업체들은 브루펍 가격에 비해 싼 캔 제품을 전국 편의점에 공급하고 있다. ‘네 캔에 만원’하는 이들 맥주들은 그러나, 브루펍 취급 맥주보다는 싼 원료를 사용하는 등 품질과 맛이 전반적으로 떨어진다.

2017년에 세운 속초의 크래프트루트 양조장은 30년된 식당을 개조한 건물이다. 인수하기 전에는 5년간 빈 채로 방치돼 있었다고 한다. 현재 이곳 지하에는 맥주 원료인 몰트 창고, 홉 냉동고, 캔 생산설비들이 들어서 있다.

먼저 몰트 창고에 가봤다. 독일어가 적힌 포대자루들이 많았다. 크래프트루트에서 양조사로 일하고 있는 남도현 과장은 “독일산 몰트가 수율이 좋아 주로 독일산 몰트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맥아’라고도 하는 몰트는 맥주의 청량감, 단맛, 알코올 도수 등을 결정하는 맥주의 가장 핵심 원료다.

크래프트루트 양조자 남도현 과장이 맥주의 주원료인 몰트를 설명하고 있다. /박순욱 기자

크래프트루트에서는 다른 수제맥주 양조장과 마찬가지로 여러 몰트를 섞어서 사용한다. 그 중 ‘베이스 몰트’는 기본적으로 당을 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또 다른 맥아로는 ‘카라멜 몰트’라고 해서 맥주의 향과 색을 입히는 몰트도 있다. 베이스 몰트 한 종류로 맥주를 만들지 않는다. 남 과장은 “수제맥주 한 제품에 적게는 3종류, 많이 들어가는 경우는 6~7종의 몰트를 섞어 사용한다”고 말했다.

크래프트루트에서 사용하는 몰트들. 진한 색이 맥주의 향과 맛을 입히는 스페셜 몰트, 연한 색이 베이스 몰트다. /박순욱 기자

색이 연한 몰트가 베이스 몰트, 진한 색이 스페셜 몰트(강하게 로스팅된 듯한)다. 베이스 몰트는 당 수율이 가장 높은 맥아다. 이를 통해 맥주가 발효되는데 필요한 당분을 충분히 뽑아낸다. 그외 카라멜 몰트, 다크 몰트 같은 스페셜 몰트는 수제맥주의 맛과 향을 결정한다. 스페셜 몰트는 함유량은 베이스몰트보다 적지만, 맥주의 향, 색, 맛 등의 개성을 표현한다.

다음으로 홉 보관고로 이동했다. 몰트는 주로 독일산을 쓰지만, 쌉싸름함, 과일향 등을 결정짓는 홉은 미국산을 많이 쓴다.

-크래프트루트가 사용하는 홉은 몇가지 종류인가?

“10~15종의 홉을 사용한다. 주로 미국산 홉을 사용한다. 그외 독일을 비롯한 유럽, 호주 홉을 쓴다.”

-미국 홉의 특징은?

“홉에서 나는 시트러스한 향이라든지, 홉이 가진 특유한 향이 두드러진다. 유럽, 호주 홉은 미국 홉보다는 약간 은은한 향이 난다. 허브, 꽃향이 난다. IBU(쓴맛 정도)가 높은게 미국 홉이다. 그래서, 같은 정도의 쓴맛을 내기 위해서는 유럽 홉은 미국 홉보다 많은 양을 써야 한다. 쌉싸름하면서도 과일향이 도드라지는 IPA 같은 스타일의 맥주에 미국 홉을 사용한다.”

크래프트루트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홉들. 미국산 홉이 가장 많으며, 냉동실에서 보관하고 있다. /박순욱 기자

-미국산 홉을 주로 쓴 제품은?

“속초 IPA, 동명항 페일에일, 설 IPA, 대포항 스타우트 등 에일 종류들은 대부분 여기에 해당된다. 반면에 아바이, 바이젠, 필스너 등은 독일 홉을 많이 쓴 제품이다. 독일 스타일의 맥주는 아무래도 독일 홉을 써야 한다.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스타일의 맥주를 만들려면, 그 나라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재료를 쓰는 게 맞다. 독일 식의 바이젠, 필스너를 만들 때는 그래서 독일 홉을 사용한다. 미국식의 페일에일 맥주를 만들 때는 미국 홉을 주로 사용한다.”

지하의 또다른 주요시설로는 캔 제품을 만드는 라인이다. 10개가 훨씬 넘는 크래프트루트의 캔 제품이 여기서 만들어진다. 캔 제품은 서울에서는 거의 공급하지 않고 속초 인근에만 납품하고 있다.

1층은 맥즙을 만들어 발효, 숙성 단계를 거치는 생산공정 설비가 모여 있다. 브루펍도 1층에 있다. 브루하우스(brewhouse) 담금(맥즙 만들기) 공정이 첫번째다. 분쇄한 맥아를 뜨거운 물이 들어 있는 브루하우스에 넣는다. 잘 불리면 시간이 지나면서 맥아에서 당분이 추출된다. 그 당분을 2개의 탱크에 순서대로 옮긴다. 당화조(왼쪽)로 먼저 옮겼다가 자비조(오른쪽)로 옮긴다. 당화조에서 당분을 추출한 뒤 끓임조(자비조)에서 당분을 끓이고 홉도 투입된다. 홉은 고온에서 오래 끓일수록 가지고 있는 특유의 향이 날아가고 쓴맛만 남게 된다. 그래서 쓴맛을 내기 위해 사용하는 홉은 자비조에서 맥즙이 끓기 시작할 때부터 바로 넣는다. 중간 정도에 넣는 홉도 있다. 다 끓고 나서 나중에 넣는 홉은 홉 특유의 향을 살리기 위함이다. 자비조에 홉을 넣는 공법을 보일링 호핑이라고 한다.

-보일링 호핑의 목적은?

“쓴맛이 도드라지기도 하고 향이 도드라지기도 하고, 홉 특유의 맛이 도드라지기도 한다. 어느 시간에, 어느 온도에, 홉을 넣느냐에 따라 성질이 바뀐다. 어떤 홉이든지 팔팔 오래 끓이면 쓴맛만 남고, 덜 끓이면 특유의 맛이 생기고, 또 어떤 홉은 끓고 나서(발효단계에서, 드라이호핑)에서 넣으면 향이 도드라진다. 홉의 특성에 따라 보일링 호핑, 드라이호핑 둘 다 사용한다.”

-드라이호핑하는 대표적인 제품은?

“어메리칸 스타일의 에일맥주들이 그렇다. 속초 IPA, 동명항 페일에일, 설 IPA 등이 해당된다. 드라이호핑의 장점은 맥주 발효가 끝난 시점(맥주 온도는 10~12도)에 홉을 넣기 때문에, 홉이 갖고 있는 아로마향, 맛이 더 잘 우러난다.”

-그럼에도 보일링 호핑도 많이 쓰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맥주는 쓴맛이 있어야 한다. 쓴맛이 미미할 수는 있지만, 아예 없을 수는 없다. 좋은 맥주는 밸런스가 좋아야 한다. 아무리 홉향이 좋고, 홉의 다양한 향이 잘 우러나는게 좋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보일링호핑은 전혀 하지 않고)드라이호핑만 했을 경우, 그 맥주는 밸런스가 깨지고 만다.

우리가 느끼한 음식을 먹을 때 콜라가 댕기고 매운게 댕기듯이, 맥주도 특정 향이 좋다고 해서 그 향에만 취중하면, 전체적인 맥주의 밸런스가 깨진다. 그래서 보일링호핑, 드라이호핑 둘다 사용한다.”

-어느 경우 홉 양이 많은가?

“드라이호핑 때 사용하는 홉이 더 많다. 홉 사용량을 100으로 봤을 때, 드라이호핑 비중이 60 정도 된다.”

-맥주 발효기간은?

“맥주마다 다르다. 통상적으로 발효는 일주일에서 보름 걸린다. 담금은 몇시간밖에 안 걸린다. 발효 후, 드라이호핑을 하거나 숙성탱크로 이동한다. 숙성은 한달 이상 길게 숙성하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2주 정도 숙성한다. 그러면 술이 완성돼 출고를 하게 된다. 발효탱크와 숙성탱크 모양의 차이는 발효조는 아랫부분이 뾰족하다. 숙성조는 바닥이 반듯하다. 발효조 바닥이 뾰족한 이유는 발효 공정 중에는 부유물이 있기 때문에 바닥으로 고인 침전물(홉이아 효모 등 부산물 찌꺼기)을 쉽게 빼내기 위해 아래를 뾰족하게 했다. 발효를 끝낸 뒤 천천히 냉각을 시키면 부유물들이 천천히 가라앉는다. 아래 뾰족한 부분에 쌓이게 된다. 이후 침전물만 배출하면 맥주는 맑은 부분만 남게 된다. 이후 숙성조로 옮긴다.

발효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공정이 숙성이다. 이곳에서는 많게는 한달 이상도 한다. 숙성을 오래하면 맛이 깊어진다. 장기숙성의 단점은 제품 회전율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대신, 맥주 품질은 높아진다.

크래프트루트 남도현 과장이 발효탱크 앞에서 7~14일 걸리는 맥주 발효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박순욱 기자

-숙성을 오래 하는 맥주는?

“필스너가 그렇다. 필스너처럼 라거계열 맥주 숙성을 오래하는 이유는 숙성을 오래 거치지 않으면 청사과 향같은 덜 숙성한 잡미가 난다. 홉이 많이 들어가는 에일맥주와 달리 라거맥주는 깔끔한 맛이 핵심이기 때문에 아주 사소한 잡미라도 있으면 그게 도드라진다. 작은 잡미를 없애기 위해 숙성을 오래하는 편이다. 필스너는 맑은 맥주이기 때문에 숙성을 오래할수록 술이 맑아진다. 맥주가 더 깨끗해진다.”

양조장 투어를 마치고 펍 한쪽에 앉아 김정현 대표와 인터뷰를 이어갔다. 속초가 고향인 김정현 크래프트루트 대표는 2016년 서울 익선동에서 맥주사업을 시작했다. 100년 한옥을 인수해 맥주펍으로 개조했다. 건축 디자이너 출신인 그의 전공을 십분 살렸다. 원래 한옥에 있던 있던 다락도 부수지 않고 살려, 손님들이 다락에서도 맥주를 즐기도록 했다. 그래서 이 업장의 이름은 ‘크래프트(수제맥주) 루(다락)’다. 크래프트 루는 익선동과 강남 신사동 2곳에 있다. 이들 영업장은 자체 양조장은 없고 속초 본사 양조장 맥주를 공급받아 팔고 있다.

-대한민국주류대상에서 최고상을 받은 동명항 페일에일은 어떤 스타일의 맥주인가?

“어메리칸 스타일의 페일에일맥주다. 과일향도 많이 난다. 자몽, 오렌지, 라임 향이 난다. 작년까지 3년 연속 대한민국주류대상 대상을 받았다. 올해는 최고상인 올해의 상(Best of 2021)을 받은 제품이다. 작년 독일에서 열린 ‘유러피언 비어스타’ 대회에서도 페일에일 부문 은상 수상을 했다. 유러피언 비어스타는 세계에서 가장 큰 맥주행사 중 하나다. 가장 잘 팔리는 맥주이기도 하다. 판매는 속초IPA와 동명항 페일에일이 1,2위를 다툰다.”

-2017년 속초에 크래프트루트를 설립했다. 속초를 양조장으로 삼은 이유는?

“2016년 4월 서울 종로구 익선동에서 맥주펍을 열었다. 100년 된 한옥을 맥주펍으로 개조했다. 양조 설비는 없고, 한국 수제맥주를 공급받아 판매했다. 테스트 업장으로 익선동 매장을 활용한 것이다. 양조장을 설립하기 전에 철저한 시장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 영업장을 양조장 설립 일년 앞서 연 것이다. ‘수제맥주 사업이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를 미리 알아본 것이다. 그런데, 반응이 괜찮아서 속초에 양조장을 차렸다.”

- 왜 속초에?

“고향이 속초라서 이곳에 양조장을 오픈했다. 유통만 생각하면 가장 큰 시장인 서울에서 가까운 경기도에 양조장을 만드는게 유리하기는 하다. 속초는 물이 특히 좋다. 속초가 강원도의 대표적 관광지인 만큼, 관광지와 연계한 마케팅을 펴기도 용이하다고 생각했다.”

-속초지역 물은?

“연수다. 물은 성격상 경수와 연수로 나뉘는데, 수제맥주 특성에 따라 경수 혹은 연수를 사용한다. 그래서 어떤 물이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고, 맥주 스타일에 따라 적합한 물이 따로 있다.”

-맥주 원료로서 연수의 장점은?

“몰트, 홉 같은 맥주 원재료의 특성을 맥주 맛에 잘 반영하는게 장점이다. 보편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물이기도 하다.”

-속초 본사 양조장 설비의 특징은?

“30년 전에 식당건물로 운영되다 5년 정도 방치됐던 건물을 인수, 양조장으로 개조했다. 지하에 맥아 창고 캔 제품 생산라인이 있고, 1층에 양조장, 펍 매장이 있다. 울산바위를 바라보며 맥주를 즐길 수 브루펍은 여기뿐이다.”

크래프트루트 양조장에서 직원이 캔 생산라인을 점검하고 있다. /크래프트루트

-속초 브루펍의 매력은?

“설악산이 파노라마로 보인다. 울산바위는 물론, 대청봉도 보인다. 설IPA 의 경우, 라벨이 울산바위로 돼있다. 화가인 내 친구가 이곳 펍에서 울산바위를 바라보며 그려서 준 것이다. 유리벽 안의 양조장 설비도 보인다.”

-양조장 대표 이전에 뭘 했나? 수제맥주 창업 계기는?

“건축디자이너 출신이다. 건축일 하면서도 집에서 맥주를 만들어 마실 정도로 맥주를 워낙 좋아했다. 맥주를 만들어 먹을 때부터 ‘맥주사업을 해볼까’ 생각해왔다. 100년 한옥을 인수하면서 전공인 건축디자인을 활용, 맥주펍으로 개조하면서 맥주사업을 작게 시작했다. 건축 일은 10년 정도 했다. 2016년부터 맥주사업을 시작했다.”

-유난히 지역명을 딴 맥주들이 많다.

“로컬라이징(현지화) 전략이다. 속초에서 양조장을 하다 보니까 속초의 주요 관광지들을 수제맥주 브랜드로 사용했다. 그 이유는 로컬화(지역친화적)를 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이즈의 양조장은 로컬(지역)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 전국구 사이즈가 못된다. 고향 속초에 대한 애착도 물론 있었다.

라벨은 직접 내가 속초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어서 일러스트화한 것이다. 그림은 일러스트 전문화가가 그렸다.

맥주에 지역 이름과 일러스트를 쓰다보니까 속초시청에서 ‘일러스트를 공공장소에서 쓰고 싶다’ 요청이 왔다. 공공화장실 문 디자인에 우리 제품 그림을 그대로 가져다쓰기도 했다. 사실, 저작권은 우리에게 있지만 속초시에서 공공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허락했다.”

-주력 제품 몇개를 소개하면?

“속초IPA와 동명항페일에일이 주력 제품이다. 이 두개 제품을 포함해 8종이 계절 없이 계속 생산된다. 속초 곳곳의 지역명을 딴 맥주들이 여기 해당된다. 양조사들이 특별하게 만든 제품들은 특정 기간만 생산되는데, 이런 맥주들은 지역명을 쓰지 않는다. 속초지역 숙박업소 등에 주문자생산방식으로 일부 제품을 만들어 공급하고 있다. 고성의 켄싱턴호텔에도 주문자생산방식으로 납품하고 있다. 라벨 디자인도 그쪽이 원하는 스타일로 만든다.”

-해외 수상을 많이 한 맥주는?

“맥주펍 한쪽 벽에 그동안 해외에서 받은 수상 내력을 다 붙여놓았다. 동명항 페일에일이 가장 큰 대회인 유러피언비어스타에서 상을 받았고, 아바이 바이젠도 일본 대회에 나가 큰 상을 받았다.”

-맥주 만들 때 가장 유념하는 것은?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밸런스’다. 맥주가 갖고 있는 향, 단맛, 과일맛, 쓴맛들이 밸런스가 맞아야 부담없이 많이 마실 수 있다. 우리는 쓴맛을 강조하는 스타일의 맥주를 선호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레시피(제조방법)를 디자인, 개발, 조율할 때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밸런스다. 밸런스에 초점을 맞추어서 맥주 레시피를 만든다.

맥주 매니아가 아닌 대중성을 더 우선시한다. 이곳이 관광지다 보니까 속초에 여행와서 우리 맥주펍에 오신 손님들 중에는 수제맥주가 좋아서 오신 분들도 있지만, 속초 특산물을 먹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오시는 경우가 더 많다. 이런 분들은 쓴 수제맥주들은 부담스러워한다. 불특정 다수, 대중성을 염두에 두기 때문에 맥주 만들 때, 밸런스를 가장 중요시한다. 쓴맛은 다소 낮추고 밸런스가 뛰어난 맥주 위주로 생산한다.

너무 단 음식은 금방 질리듯이 홉도 쌉싸름한 맛, 과일맛에만 치중하면 쉽게 질린다. 밸런스가 중요한 이유다. 단맛, 쓴맛, 과일향 등이 전체적으로 모두 어우러져야 좋은 맥주다.”

-서울 익선동과 신사동에 업장이 있다. ‘크래프트 루’로 회사명과 약간 다른 이유는?

“루는 다락이란 뜻이다. 익선동 업장에는 다락이 있다. 다락에도 손님들이 올라와 술을 마실 수 있도록 했다. 크래프트는 수제맥주라는 뜻이고, 루는 다락이란 뜻이다. 그래서 익선동, 신사동 영업장은 ‘크래프트 루’란 간판을 쓰고 있다. 양조장은 ‘크래프트 루트’라고 쓴다.”

서울 종로구 익선동의 '크래프트 루' 영업장에는 다락이 있다. /크래프트루트

-코로나 영향?

“심각하다. 서울의 2곳 업장 타격이 크다. 서울을 기반으로 맥주사업을 하는 분들은 다들 힘들어한다. 서울의 펍 매출은 70% 이상 줄었다. 직원들 월급 겨우 주는 수준이다. 반면에 속초는 현지화에 성공했기 때문에, 그나마 버티고 있다.

홈술 영향으로 대형마트, 편의점 맥주 판매가 늘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수제맥주 회사들은 그 덕을 보지 못했다. 캔 제품을 생산하는 일부 대형 맥주 회사들만 덕을 봤다고 보면 된다. 영세한 대부분의 수제맥주 회사들은 편의점에 공급할 만큼 생산량이 많지 않은데다 캔 제품 설비라인을 갖추고 있지 않다. 대부분은 케그 형태로 식당, 주점에 맥주를 공급해왔는데, 코로나 영향으로 수요가 줄어 회사 매출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크래프트루트는 캔 제품을 만드는데, 전국 편의점에 공급하나?

“전국 편의점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왜냐면 ‘네캔에 만원’ 단가를 맞출 수 없기 때문이다. 그건 불가능하다. 양조장 주변인 속초, 양양, 고성 지역 편의점에는 공급한다. 공급 조건은 ‘우리가 원하는 가격에 맞춘다’는 것. 이곳 매장과 편의점 제품 가격이 똑같다. 500ml 한 캔에 7000원 가량. 로컬라이징(현지화)에 성공한 덕분에 이 가격도 편의점에서 먹히고 있다. 편의점 업주들이 오히려 우리 제품을 좋아한다. 마진이 ‘네캔에 만원’ 제품보다 훨씬 높기 때문이다. ‘네캔에 만원’ 4캔을 파는 것보다 7000원 하는 우리 제품 1캔을 파는게 마진이 더 낫다는 얘기다.

속초에 있는 대형마트에도 같은 가격으로 들어가 있다. 의외로 잘 팔린다. 마트나 편의점에서 우리 제품을 맛보고 나서 제조장이 속초인 것을 알고, 양조장 펍으로 찾아오는 손님들도 꽤 있다.”

-일부 대형 수제맥주 회사들은 ‘네캔에 만원’ 별도의 기획상품을 만들어 편의점에서 팔고 있다. ‘네캔에 만원’ 제품을 안 만드는 이유는?

“우리는 아직 편의점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지 않았다. 그 이유는, ‘네캔에 만원’ 맥주를 별도로 대량으로 만든다고 해서 회사가 돈을 버는 구조가 못되기 때문이다. 직원들만 바쁠 뿐이지, 매출은 커지는데, 수익성은 더 악화될 수도 있다. 회사 경영에 더 안좋은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외부 투자를 받아 회사 생산능력을 크게 키운 회사들은 매출을 올려야 하기 때문에, 부득이 ‘네캔에 만원’ 제품을 만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아직 외부 투자를 받은 경우가 아니기 때문에 굳이 그럴 필요가 아직은 없는 것이다. ‘네캔에 만원’ 시장에 굳이 뛰어들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양조장 사이즈가 작은 만큼, 처음부터 현지화에 치중한 전략을 구사했고, 어느 정도는 먹혀 들어가고 있다.”

크래프트루트 김정현 대표가 그동안 해외 맥주대회에서 받은 상들을 설명하고 있다. /박순욱 기자

-국산 부재료를 쓴 제품도 있나?

“군산지역 맥아를 사용한 맥주도 개발 중에 있다. 국산 부재료를 넣은 ‘하이 앤드 드라이’ 제품은 이번에 대한민국주류대상에서 대상(트리펠 부문)을 받았다. 강원도 쌀을 넣었다. 이 지역 쌀 10% 정도 들어갔다.

-트리펠 맥주?

“수도원 맥주라고 보면 된다. 벨기에 수도원 수도사들이 만든 맥주로, 알코올 도수가 좀 높은게 특징이다. ‘하이 앤드 드라이’는 8도. 12도까지 가는 것들도 있다. 향긋한 향, 꽃향, 향신료 향이 느껴진다.”

-한국 수제맥주 역사는 짧다. 외국 수제맥주와 품질을 비교하면?

“빠른 시간에 급성장했다. 5년 전에 한옥(익선동)에서 당시 한국 수제맥주 15개를 취급했다. 그 때만 해도 외국 수제맥주와는 수준 차이가 좀 있었다. 국산 제품 품질이 들쑥날쑥하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좀 떨어졌다. 그런데 수제맥주 붐이 5년전부터 불기 시작했는데, 그 이후 수제맥주 양조장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양조장들끼리 경쟁을 하다보니까 품질도 급속도로 높아졌다. 불과 3년여만에 상향평준화됐다. 그러다보니 해외 맥주대회에서 상을 받는 국내 수제맥주들도 많아졌다. IPA,페일에일, 바이젠 같은 맥주들은 이제 국산맥주와 해외제품간에 거의 품질 차이가 없다.”

-올해 계획은? 중장기 계획은?

“올해 계획은 살아남는 것, ‘서바이브’다(웃음). 코로나 시국에 그나마 버티는 것도 처음부터 로컬라이징에 공을 들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는 지역 유통망을 좀 더 넓게 가져가려고 하고 있고, 중장기적으로는 제2 양조장 신축을 고민하고 있다. 속초 양조장 사이즈보다는 훨씬 큰 양조장을 지을까 말까 고민 중이다.

생산량을 늘리는 것은 결국 판로의 문제다. 지금 속초 양조장 생산량은 거의다 지역에서 소비가 된다. 때문에 생산량을 크게 늘리겠다고 하면, 유통채널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네캔에 만원’ 시장에도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편의점이나 마트에 한번 진출하면 빠져나오기가 어렵다. 유통업체들은 ‘네 캔에 만원’이 아니라 ‘다섯 캔에 만원’ 이런 식으로 맥주 회사들끼리 가격경쟁을 더욱 부추길 것이 우려되지만, 이미 생산설비를 늘려놓았으면 편의점 시장에서 빠져나오기가 어렵다. 유통업체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 이러니, 매출은 커지더라도 수익성은 오히려 떨어질 수도 있어 고민이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수출이다. 그래서 수출이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그때는 사이즈를 키우려고 한다. 제2 양조장을 새로 짓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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