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조원 굴리는 릭 라이더 "인플레 대비 자산 포지션 조정 중"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릭 라이더 최고투자책임자(CIO)가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에 대비해 자산 포지션을 조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라이더는 블랙록이 운용중인 9조달러(약 1100조원) 중 20%를 관리하는 인물이다. 인플레이션 우려 속 ‘월가 핵심지표’로 꼽히는 그의 발언에 관심이 쏠린다.
라이더는 16일(현지 시각)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인터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종식과 각국의 재정 부양책이 인플레이션을 촉발할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지만, 경력 초기에 옳은 것이 돈을 버는 것과 같지 않다는 것을 배운 뒤로는 위험을 분산하고 있다”며 정크본드(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이 발행하는 고위험·고수익 채권)를 줄이고 현금 보유와 장기 회사채를 늘리는 등 잠재적 인플레이션 위험에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높은 인플레이션이 장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장이 그렇게 믿는다면, 그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6개월 뒤에 ‘네가 옳았다’는 소리를 듣는 것보다 낫다”고 했다.
라이더는 노령화지수(15세 미만의 유소년 인구에 대한 65세 이상의 노령인구의 비율)를 고려하면 인플레이션 지속 기간을 짧게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인구통계 측면에서 1970~80년대와 확연히 다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며 “베이비붐 세대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개인에게는 연금, 퇴직 투자를 위한 채권을 사 다가오는 부채를 흡수하는 선택지밖에 남지 않게 됐다. 이는 지금 상황이 예전만큼 공포스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는 이어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보다는 불확실성이 걱정된다. 시장은 과거 긴축발작(선진국의 테이퍼링 정책이 신흥국의 통화 가치와 증시 급락을 불러오는 현상)에도 적응했었다”며 “앞으로 계획이 어떻게 발전할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포트폴리오를 꾸리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세계 금융시장은 2013년 연준의 테이퍼링 신호에 신흥국의 통화, 채권, 주식이 동시에 급락하는 트리플 약세를 경험한 바 있다. 당시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한 달 만에 1.67%에서 2.13%까지 급등했고, 9월에는 3%를 찍었다. 연준은 이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당분간 자산매입 축소는 없다’고 선언하며 사태를 수습했다.
WSJ는 라이더가 “전례없는 시대를 맞아 위험을 광범위하게 분산하고 있다”며 그의 발언에 주목했다. WSJ는 “약 1조8000억달러를 관리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의 결정이 갖는 파급력은 크지만, 라이더는 무엇보다 통화 및 국채 변동으로부터 시장 세력을 분리하는 ‘마법사’로 잘 알려져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 JP모건의 마크 바드리차니 글로벌 영업·연구 책임자는 “라이더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하지 않는 투자자는 없다”며 “그는 전 세계 시장에 대한 광범위한 시각을 바탕으로 새로운 트렌드를 파악하고 이를 장기 투자 전략에 통합하는 독특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라이더는 앞서 미 경제전문매체 CNBC와 인터뷰에서도 인플레이션은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전년동기대비 4.2%를 기록하며 월가 예상치를 훌쩍 넘어선 것은 중고차 가격 급등과 같은 단기적 요인 때문이라는 견해다.
다만 단기물 중심의 테이퍼링은 필요하다고 했다. 장기 국채를 매수하면서 테이퍼링을 시도하면 모기지(주택담보대출)와 기업 자금 조달에 중요한 장기 금리를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테이퍼링을 한다고 해서 일자리 창출이 둔화하지는 않을 것이다. 막대한 유동성이 일자리를 더 만들고 있지도 않다”며 “시장은 테이퍼링이 올바른 전환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라고 했다.
물가 상승이 일시적 현상인지, 인플레이션의 전조인지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연준은 이러한 추세가 기저 효과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이란 입장이다. 리처드 클라리다 연준 부의장은 CPI 발표 이후 이뤄진 전미실물경제협회(NABE) 연설에서 “물가 상승은 기저 효과로, 일시적인 영향만 미칠 가능성이 크다”며 “인플레이션은 2022년과 2023년에 우리의 2% 장기 목표로 회복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큰손’들의 의견은 다르다. 억만장자이자 유명 헤지펀드 투자가인 스탠리 드러켄밀러는 ‘연준이 불장난을 하고 있다’는 제목의 WSJ 기고문에서 “비상 상황이 지나간 후에도 비상 상황을 유지하는 것은 몇 소수점 이하의 인플레이션 목표를 놓치는 것보다 연준에게 더 큰 위험을 안겨준다”며 “이제는 변화할 때”라고 지적했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의 레이 달리오 회장은 “돈을 찍어 경기를 부양하는 미국 정부는 결과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며 “시장에 풀린 돈이 너무 많아 (증시에도) 거품이 형성되어 있다”고 짚었다.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도 이달 초 연례 주주총회 때 “이미 상당한 인플레이션이 와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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