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석의 글로벌 인사이트 23] '자전거의 인텔' 시마노, 인텔보다 더 잘나간다 | 자전거 부품 점유율 80%..코로나로 이익 폭발
일본 오사카부(府) 사카이의 최대 기업은 지난 수십 년간 샤프(SHARP)였다. 이젠 사카이 시민 모두가 다른 한 기업을 얘기한다. 자전거 부품을 만드는 ‘시마노(SHIMANO)’다. 1921년 사카이의 작은 철공소에서 시작해 전 세계 레저용 자전거 부품 시장의 80%를 장악했다.
100년 역사의 샤프는 자신들이 선도했던 LCD(액정표시장치) TV 시장을 한국·중국에 내주면서 몰락했고, 2016년 대만 훙하이(애플 제품을 만드는 폭스콘의 모기업)에 매각되고 말았다. 반면 시마노는 샤프와 같은 비극을 피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큰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 샤프가 액정 TV라는 ‘완제품’으로 한국·중국과 가격 경쟁을 벌이다 전사(戰死)한 것과 달리, 시마노는 완제품 대신 고부가가치 핵심 부품으로 승부한다. 완제품 업체들이 아무리 출혈경쟁을 하더라도, 자전거의 구동용 필수 부품은 어차피 시마노 것을 쓰게 만든 것. 덕분에 시마노는 제조업임에도 영업이익률 20%대, 무차입의 초우량 기업이 됐다. 인텔이 컴퓨터에 CPU(중앙처리장치)만 제공하면서도 고수익을 내는 것과 비슷하다 해서 ‘자전거계의 인텔’이라고도 불린다.
여기까진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기. 본론은 지금부터다. 지금까지도 잘해왔던 시마노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촉발한 비대면(非對面) 경제에 힘입어 매출·이익이 폭발하고 있다. ‘자전거계의 인텔’이 이젠 컴퓨터계의 인텔보다 더 잘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4월 27일 발표에 따르면, 시마노의 올해 1분기(1~3월) 매출은 1264억엔(약 1조246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64%, 영업이익은 326억엔(약 3260억원)으로 전년보다 157%나 증가했다. 영업이익률이 26%에 달했다.
1분기 영업이익 157% 증가, 공장 풀가동해도 수요 못 대 ‘비명’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자전거가 사람들 간 접촉을 피하는 이동 수단으로 떠오르며 자전거 부품 업체 매출이 급증했다. 감염 위험이 낮은 레저인 낚시 도구 부문도 호조였다”고 썼다. 매출 비중은 자전거 부품, 낚시 도구가 각각 8 대 2. 지난 1분기 자전거 부품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76%, 낚시 도구는 26% 증가했다.
시마노는 또 이날 발표에서 “올해 매출이 전년보다 20% 증가한 4555억엔(약 4조5550억원)으로 전망된다”고 했다. 실현되면 역대 최고 매출이다. 시마노는 “고객사 요청에 맞추기 위해 전 공장이 풀가동 중이며, 하반기엔 신제품 투입이 예정돼 있어 이익 증가도 기대한다”고 했다.
이 때문에 주가도 작년 중반에 1972년 상장 이래 최고치를 경신한 이후 고공행진 중이다. 5월 11일 현재 시가 총액은 2조3000억엔(약 23조원)으로, 한국과 비교하면 LG전자와 비슷하다.
시마노는 올해로 창업 100주년을 맞았다. 장수기업이 많다는 일본에서도 100년 기업은 많지 않다. 생존해 있어도 명맥만 유지하는 게 대부분. 시마노는 100주년인 올해에 사상 최고 실적을 낼 전망이니, 바로 지금이 최고조인 셈이다.
한국도 코로나19 이후 자전거 공급이 수요를 못 대고 있지만, 완성품은 대만·중국이, 고부가가치 부품은 일본이 이익을 독식하고 있다. 완성품 대신 부품으로 자전거 시장의 최강자가 된 시마노 스토리는 한국에도 시사점을 준다. 이 업체의 성공 원인을 세 가지로 분석했다.
1│미래 시장 예측하고 고부가가치로 승부
1990년 전까지 일본은 세계 최대 자전거 수출국이었지만, 이후 일본 메이커들이 줄줄이 쓰러졌다. 저가는 중국, 중·고가는 대만과의 가격·브랜드 경쟁에서 밀렸다. 현재 자이언트·메리다 등 대만 업체가 자체 브랜드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을 합쳐 세계 고급 자전거의 절반을 만든다. 반면 시마노는 출혈경쟁에 휘말리지 않고 고품질·고부가가치 부품에만 집중해 다른 일본 자전거 업체의 비극을 피했다. 시마노는 전 세계 레저용 자전거 부품 시장에서 원톱이다. SMBC닛코증권에 따르면, 시마노는 관련 시장의 80%를 차지한다. 변속기 점유율도 70%로, 경쟁 메이커인 이탈리아 캄파놀로, 미국 슬램을 크게 앞선다.
시마노 성공의 시작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래의 자전거 시장을 가장 먼저 예측해 고부가가치 부품에 전력을 쏟았다. 산악자전거(MTB) 전용 부품을 먼저 개발했고, 브레이크·변속기 등 핵심 부품을 일체화한 ‘컴포넌트’로 명성을 쌓았다. 시마노 컴포넌트를 사용하지 않으면 자전거가 팔리지 않았기 때문에, 완성품 업체 대부분이 시마노 부품을 선호하게 됐다. 속도를 추구하는 로드 바이크에서는 관련 레이스의 최고봉 ‘투르 드 프랑스’에서 시마노 부품을 쓰는 팀이 급증하면서 고급 로드바이크 부품 시장의 80%를 독점하기에 이르렀다.
2│1960년대부터 해외로 진출해 기회 포착
일본의 자전거 회사가 성장하지 못한 것은 세계에서 승부할 고부가가치 제품에 도전하지 않고, 매년 수백만 대씩 팔리는 자국 내 생활용 시장에 안주했기 때문이다. 반면 수출 지향이 강한 대만 업체들은 유럽·미국에서 팔리는 첨단·고급 자전거를 만들려고 계속 노력했고, 그 결과가 쌓이면서 승부가 갈렸다.
시마노는 다른 일본 자전거 업체들과는 달리 일찌감치 해외로 눈을 돌렸다. 1965년 미국, 1972년 유럽에 판매 회사를 세웠다. 다른 일본 업체들이 자국 시장에서 싸우고 있을 때, 시마노는 해외 선진 기술과 시장 정보를 어떤 경쟁 업체보다 정확히 얻을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시장이 원하는 제품을 발 빠르게 내놓으며 점유율을 높여 나갔다. 그렇게 시마노는 매출의 90%가 해외에서 나오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3│냉간단조 기술력으로 초격차 전략
1920년대 시마노가 처음 만든 제품은 ‘프리휠’, 즉 자전거 뒷바퀴에 다는 기어였다. 이후 내장 3단 변속기를 내놓아 히트했다. 레저·스포츠용 자전거 부품 시장에 진출하기 전에 보급형 자전거 부품으로 기술력을 다져 놓은 게 이후의 압도적 점유율로 이어졌다.
시마노의 강점은 높은 품질과 내구성, 합리적인 가격이다. 이것을 실현시킨 열쇠가 1960년대부터 갈고닦은 정밀 냉간단조 기술이다. 1965년 미국에 진출하면서 처음 기술을 습득했고, 1980년대 미국에 MTB 바람이 불 때 냉간단조로 재빨리 부품을 양산해 시장을 장악했다. 다른 업체는 이런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그 격차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냉간단조는 상온인 채로 금속에 압력을 가하는 가공법. 절삭 공정이 최소한으로 끝나 원재료 사용량을 줄일 수 있다. 열을 가하는 것보다 정밀한 가공이 가능해 제조 과정에서 버리는 부품도 적다. 닛케이비즈니스는 “경쟁사, 신규 업체가 같은 제품을 만들려 해도 가공의 정확도를 재현하기가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시마노는 고성능 부품을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팔 수 있었고, 이것이 경쟁사를 따돌리고 압도적 점유율과 고수익을 유지해온 비결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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