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정부 방역에 불만이지만 '멍청한 나치' 낙인찍힐까 침묵
정부 방역 조치 비판하면서도 극우파와 동일시되는 건 꺼려
(시사저널=이수민 독일 통신원)
독일에서 지난 4월22일 유튜브에 약 50개의 영상이 올라왔다. #전부다닫아(allesdichtmachen) #다신열지마(niewiederaufmachen) #영원한락다운(lockdownfrimmer)이라는 해시태그가 붙은 이 영상들은 1분가량 길이에 불과했지만, 그 영향력은 대단했다. 영상들은 독일에서 활동하는 배우·감독 등 문화예술가들이 합심해 참여한 프로젝트로, 독일 정부의 코로나19 정책을 풍자 형식으로 비판하고 있다. 이렇게 공개된, 총 한 시간짜리 영상으로 독일 사회는 다시 시끄러워졌다.
이미 지난해부터 독일은 코로나19로 인해 분열 조짐을 보여왔다. 독일 곳곳에서는 현 정부의 방역 조치에 반발하는 시위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스스로 '크베어뎅커(Querdenker)'라고 일컫는다. 크베어뎅커는 본래 비뚤게 생각하는 사람을 뜻하며, 기발하고 창의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긍정적인 표현이었다. 하지만 지금 독일에서 크베어뎅커는 곧 '극우파'와 동일시되고 있다.
타인 의견엔 관심 없고 자기만 옳다고 믿어
이들의 출발은 현 정부의 무능에 대한 비판이었다. 가령 과학적으로 증명된 마스크의 방역 효과가 없다고 했다가 하루아침에 입장을 바꿔 마스크를 의무화하더니, 이에 대해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하려고 노력하지 않은 점 등에 대한 비판이었다. 또한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발표하고선 며칠 후 이를 뒤집는 접촉금지령을 내린 데 대한 불신도 포함됐다.
지난해 여름 슈투트가르트에서 시작된 정부 비판 시위는 전국으로 퍼져 현재 베를린을 비롯한 뮌헨·하노버·하이델베르크·브레멘 등 독일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문제는 이들의 시위에 극우 세력까지 결집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 정부에 대한 크베어뎅커들의 반발심은 서서히 극우 세력을 끌어들였다. 이 때문에 극우 세력을 색출하고 감시하는 연방헌법수호청은 지난해 12월부터 크베어뎅커를 감시 대상으로 분류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의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일각에선 정부에 불만을 품은 목소리는 소수의 반동 기질을 보이는 시민과 극우 세력에게서 나오는 것이란 시각도 나온다. 하지만 지난 4월 올라온 이른바 #전부다닫아 영상들은 정부를 비판하긴 하지만 그들과는 분명히 결이 다른 세력의 작품이다.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건 배우 잔 조세프 리퍼스의 영상이었다. 리퍼스는 영화 《노킹 온 헤븐스 도어》를 통해 유명해진 배우로, 정치적으로도 활발하게 목소리를 내온 인사다.
동독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불과 며칠 전,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였던 알렉산더광장 시위 현장에서 연설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활동을 지속했으며, 2011년 사회적 공헌을 인정받아 독일연방공화국 공로장을 받기도 했다. 리퍼스는 독일 사회에서 정치적으로 치우치지 않고 사회적 정의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대표적인 공인으로 인식돼 왔다.
그런데 그런 그가 이번 영상을 통해 그동안과 다른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달해 화제가 됐다. 그는 영상에서 "우리나라 언론에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1년 넘게 지치지도 않고 책임감을 갖고 명확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말입니다. 언론은 항상 적합한 조치만을 취하는 우리 정부에 비판적인 논의들이 개입하지 못하도록 막고, 우리 주위가 산만해지지 않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몇몇 신문이 언론의 비판적 기능을 다시 부활시키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대항해야 합니다. 이를 허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그저 모든 것에 동의하고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에 모두 응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언뜻 듣기론 정부와 언론을 긍정하는 메시지인 것 같지만, 사실 이 말 속엔 고도의 풍자와 반어가 담겨 있다. 그는 정부와 언론을 동시에 비꼬며 이들의 불통을 비판한 것이다. 즉 정부는 결코 국민을 안심시킬 만한 적합한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으며, 언론은 시민들이 이에 대해 비판적인 사고를 하는 것을 막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리퍼스에 대한 반박 여론 역시 혹독했다. 일단 현재 #전부다닫아에 올라왔던 영상 중 절반은 삭제되고 없어졌다. 언론에서 쏟아지는 비난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특히 언론을 공격한 리퍼스가 언론에 의해 집중적으로 공격을 받았다. 리퍼스 외에도 몇십 명의 문화계 인사가 참여했지만, 그의 이름이 곧 #전부다닫아 영상의 상징이 돼 버렸다. 비난의 화살 역시 온통 리퍼스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그는 영상을 삭제하지 않고 기회 있을 때마다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설명하기 위해 애썼다.
논란이 종식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급기야 연방보건부 장관 옌스 슈판이 직접 나서기도 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전부다닫아 영상들에 시민들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해하지만, 이 영상들이 이 정도로 사람들을 흥분시킨 데는 분명 이들의 뇌관을 건드린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대인들은 더 이상 과거의 계급투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끼리 각자의 거품 속에 앉아 싸우고 있다"고도 말했다. 즉 거품 속에 앉아서 타인의 의견에 관심도 없고 자신의 의견이 옳다는 점에만 집중하게 되니 타인의 의견을 없애려고만 한다는 것이다.
말 없는 다수, 리퍼스의 풍자에 고개 끄덕여
리퍼스는 크베어뎅커 세력과는 구별되는 또 다른 다수와 접점을 형성하고 있다. 독일 사회의 또 다른 다수들은 현재 독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방역 조치에 불만은 가졌지만, 시끄러운 크베어뎅커에는 속하고 싶지 않은 이들이다. 독일 국민은 지난해 11월부터 이어진 락다운과 그 후 계속되고 있는 지원금 미지급 상황, 자영업자들의 몰락, 줄어들지 않는 하루 확진자 수, 초반부터 더디게 진행된 예방접종 등 무엇 하나 눈에 띄게 나아진 것 없는 현실에 지쳐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뭐라도 하고 싶은데, 비판을 하면 리퍼스처럼 역풍을 맞거나 크베어뎅커와 함께 '멍청한 나치'라는 낙인이 찍혀버리니 목소리를 크게 낼 수도 없다. 그런 다수에게 리퍼스의 풍자는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 것이다. 요란한 반박들 사이에서도, 사회에 대한 그의 진단 역시 곰곰이 재고해 봐야 한다는 여론이 지속되는 이유다.
전부다닫아 영상들이 업로드된 4월 이후 최근까지 독일의 코로나19 상황은 조금은 나아진 분위기다. 하지만 5월11일 기준 하루 확진자 수는 여전히 6000명을 웃돌고 있으며, 대다수 지역에서는 밤 10시부터 새벽 5시까지 셧다운이 이어지고 있다. 자유를 제한당하고도 바이러스 감염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채 수개월을 버틴 독일 국민의 불만은 사회 분열로 갈래갈래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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