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가구 '단절의 불안'을 건드리다

안진용 기자 2021. 5. 17.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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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거나 길을 걸을 때도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진아(공승연 분)는 관계를 단절한 채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과 몹시 닮았다.

■ 19일 개봉 ‘혼자 사는 사람들’

불편한 타인 무관심으로 외면

현대인 고독 현실적으로 그려

상담원 진아역 맡은 공승연

“둘째 동생 첫 직장이 콜센터

다신 돌아가고 싶지않다 말해”

“전 혼자가 편해요.”

19일 개봉하는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감독 홍성은) 속 주인공 진아(공승연 분)가 습관처럼 내뱉는 대사는 요즘 시대를 살며 한 번쯤은 내뱉거나 들어봤을 한마디다. 길을 걸을 때도, 버스에 탈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며 세상과 단절한 채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소위 ‘스몸비’(스마트폰+좀비)라 불리는 현대인의 단면과도 같다. 전체 가구 중 30.2%(통계청 2020년 12월 기준)가 1인 가구인 이 세상에서, 영화는 은유가 아니라 ‘혼자 사는 사람들’이라는 직관적 제목으로 “바로 당신의 이야기”라고 외치는 듯하다.

혼자 사는 진아는 누가 곁에 있는 것이 불편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가장 노릇을 하려는 아버지는 마뜩잖고, 자꾸 말을 거는 옆집 남자와 살갑게 다가서는 직장 후배도 걸리적거린다. 그는 그러한 불편함을 타인에 대한 무관심으로 애써 외면하려 한다. 진아를 연기한 공승연은 지난 13일 문화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다들 인간관계 단절을 생각해보지 않나? 관계 속에서 회의감도 들고 고민이 많았는데 그런 경험들을 생각하면서 연기했다”며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이 스마트폰에 빠져 있을 때가 많은데 그런 상황이 더 관계 단절을 가져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혼자 사는 사람들’ 속 인물 대부분은 혼자 산다. 그런 삶에 익숙한 듯하지만 스멀스멀 밀려오는 외로움을 떨쳐내려 몸부림친다. 아버지는 ‘나 아파’라고 진아에게 문자를 보낸다. 실제로 그는 아프지 않다. 하지만 이렇게 외쳐야 그나마 딸이 문자에 답을 하거나 전화통화가 되기 때문이다. 속내를 꿰뚫어 본 딸이 “어느 병원이냐?”고 다그치자 아버지는 이내 머쓱해진다. 배우자와 사별 후 혼자 사는 이 시대의 적잖은 장년층의 모습이 투영됐다고 볼 수 있다.

“인사 좀 해주지.” 옆집 남자의 이 한마디 역시 진아에게는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어느 날 “악취가 난다”고 경비실에 말한 후 귀가한 진아는 옆집 남자가 이미 사망했다는 소식에 적잖이 놀란다. “옆집에서 사람이 죽은 것도 몰랐냐”는 사람들의 질문은 고독사가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풍경이다. 옆집 남자에게 이웃의 인사란,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는 한 올의 지푸라기였던 셈이다.

이런 상황으로 혼란스러운 그에게 막 입사한 후배는 이렇게 말한다. “선배님, 밥 같이 먹어도 돼요?” 춘천에서 혈혈단신으로 올라온 수진(정다은 분)에게 진아는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선배지만, 진아는 자신의 공간 안으로 선을 넘는 수진이 불편하기 짝이 없다.

세상살이가 외로운 인간들의 군상은 카드사 콜센터 직원인 진아에게 전화를 거는 고객들을 통해 다양하게 드러난다. 한 남성은 “타임머신을 발명했다”며 과거로 돌아가도 카드 사용이 가능한지 묻고, 한 여성은 카드 사용 내역을 일일이 읽어달라고 주문한다. 진아는 직업적 특성상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응대한다. 이건 대화가 아니다. 감정이라곤 없다. 하지만 고객들은 그렇게나마 이야기를 들어주는 콜센터 직원에게 하소연하고 심지어 폭언이나 성희롱까지 하며 응어리를 푼다. 진아는 그로 인해 쌓인 스트레스를 혼자 피우는 담배 한 대와 관계 단절을 통해 극복하려 한다. 공승연은 “둘째 동생의 첫 직업이 콜센터 상담원이었다. 동생은 지금까지도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한다”며 “진아도 처음에는 힘들었을 것 같다. (상처들에) 점점 무뎌지면서 단절하려 노력하지 않았을까 싶다”고 생각을 밝혔다.

이 작품으로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에 진출해 배우상과 배급지원상 등 2관왕에 오른 홍성은 감독은 ‘혼자 잘산다는 건 뭘까’란 질문에서 이 영화를 시작했다. 홍 감독은 “20대 때 혼자 사는 게 좋았는데 고독사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났다. 처음에는 왜 우는지 몰랐는데 내 마음속 깊은 곳의 어떤 공포와 불안을 건드렸다는 걸 깨달았다”며 “사실 외로웠고, 상처받기 싫었다. 그런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볼 용기가 없던 것을 ‘혼자서도 잘사는 멋진 모습’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아직 정답을 찾지 못한 질문을 다양하게 전개해보고 싶었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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