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흐지부지.. "'인사청문회' 바꾸자" 이번엔?

이완 2021. 5. 17.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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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의 정치반숙]정치BAR 이완의 정치반숙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김부겸 국무총리 등에게 임명장을 준 뒤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얼마전 세상을 떠난 이한동 전 국무총리는 ‘화려했던 정치 인생’과 함께 국회 인사청문회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인물이었습니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2000년 6월 말 열린 총리 인사청문회에서 그는 야당 의원으로부터 ‘의원회관에서 고스톱을 친 적이 있냐’는 질문을 받곤 “국회가 공전할 때 의원회관에서 한두 번 친 적은 있지만, 지역구 상가에서는 친 적이 없다”며 진땀을 빼야 했습니다. 인사청문회라는 국회의 검증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국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일입니다. 당시 참여연대는 ‘청문회를 통해 공직 후보자의 도덕성·신뢰성 등 과거의 행적과 발언을 객관적·공개적으로 치밀하게 검증하고 그 적격성 여부를 국민이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의의가 있었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이한동 인사청문회는 1997년 당시 김대중 후보가 약속한 대선 공약이 입법으로 이어진 결실이었습니다. 2000년 6월 16대 국회에서 인사청문회법이 제정되면서 국무총리를 비롯해 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감사원장·대법관과 함께 국회가 선출권을 갖는 헌법재판관 3명·중앙선관위원 3명 등 23명이 인사청문회를 거치도록 했습니다.

이후 2003년 인사청문회 대상자가 국가정보원장·국세청장·검찰총장·경찰청장까지 확대되었고, 열린우리당이 과반수(152석)를 차지한 17대 국회 2005년 7월부터는 국무위원을 비롯해 헌법재판소 재판관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까지 청문회 대상자에 포함되었습니다. 인사청문회는 민주당 정부 때 태어나 민주당 정부에서 역할이 커진 제도인 셈입니다. 민주당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는 날카로운 인사청문 검증으로 야당의 전투력을 보여주며 정치적 이익을 얻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들어 인사청문회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부쩍 커지고 있습니다. 국회에서 번번이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이 실패하는 것을 지켜본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 4주년 특별기자회견에서 “우리 인사청문회는 능력 부분은 그냥 제쳐놓고 오히려 흠결만 놓고 따지는 그런 청문회가 되고 있습니다. 무안 주기식 청문회가 되는, 그런 청문회 제도로서는 정말 좋은 인재들을 발탁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제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고, 이제 청문회를 거쳐야 되는 인사를 할 기회가 별로 많지 않습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저는 이대로 이렇게 해도 괜찮은데, 적어도 다음 정부는 누가 정권을 맡든 더 이렇게 유능한 사람들을 발탁할 수 있게끔 그런 청문회가 꼭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누이 말씀드렸다시피 도덕성 검증 부분도 중요한데 그 부분은 비공개 청문회로 하고, 그다음에 공개된 청문회는 정책과 능력을 따지는 청문회가 돼서 두 개를 함께 저울질할 수 있는 그런 청문회로 좀 이렇게 개선되어 나가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2021년 5월10일)

청와대도 지난 13일 박준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의 자진사퇴에 대한 입장을 밝힌 뒤 인사청문회 제도 개선 이야기를 다시 꺼냈습니다. 인사 검증 과정의 문제나 ‘국민의 눈높이 미달’보다 제도에 대한 아쉬움이었습니다.

저희가 여당이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한다고 하면 현 정부에서는 그렇게 적용할 이유가 없고, 적용 안 해도 좋으니 다음 정부는 서로 대선에서 승리한다고 장담하고 있으니 다음 정부부터 적용한다는 조건 하에 인사청문회 개선과 관련된 열린 토론이 국회에서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대통령께서도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제도가 좋은 사람을 발탁하는 과정이 되어야지 좋은 사람을 자꾸 내치는 그런 과정이 혹시라도 안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 2021년 5월13일)

그러나 이같은 바람은 “(대통령이) 말씀하신 ‘무안주기식 청문회’가 부당하시다고 하면서 왜 야당일 때는 청문회 후보자들에게 목소리를 높이셨는지, 왜 지금까지 제도개선을 위한 노력은 안 하셨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는 배준영 국민의힘 대변인의 말 앞에서는 머쓱해집니다.

지금의 여당이 야당이고, 야당이 여당이었던 19대 국회에서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은 현재 청와대가 주장하는 것과 비슷한 취지의 개선 방향을 이야기했지만, 야당은 이에 호응하지 않았습니다. 문 대통령은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 시절, 인사청문회 결과를 여론조사에 부치자는 주장까지 했었다가 철회하기도 했습니다.

“만약 우리 주장(사퇴)을 야당의 정치공세로 여긴다면 중립적이고 공신력 있는 여론조사 기관에 여야 공동으로 여론조사를 의뢰하기를 청와대와 여당에 제안한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2015년 2월13일)

20대 국회에선 여야가 바뀌며 인사청문회 제도개선이 공감대를 얻을 기회도 있었습니다. 박근혜 정부 때 인사청문회 공격수였던 민주당이 문재인 정부로 정권 교체되며 수비수가 되었습니다. 인사청문회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새누리당이 야당으로 바뀌면서, 서로가 ‘역지사지’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당시 윤한홍 새누리당 의원이 제출한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은 인사청문회를 윤리성 검증인사청문회와 업무능력검증 인사청문회로 이원화하는 등 지금 민주당이 낸 개정안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20대 국회에 나온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은 여야가 모두 손을 놓으면서, 상임위에서 잠만 자다 끝나버렸습니다. 당시 이들이 개혁에 나서지 않은 이유로, 김형준 교수는 국회의원들의 ‘움직이는 이해관계’를 꼬집기도 했습니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 교양학부 교수는 12일 <한겨레>에 “의원들은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여당은 불편함을 이유로, 미래 정권을 잡을 것이라 믿는 야당에서도 쉽사리 개혁에 나서지 않는 것”이라며 “청문회 제도 등은 외부 전문가들에게 전권을 줘 그 방법을 따라가게 하는 게 개혁을 위한 방법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미나 기자의 정치적 참견시점, 2019년 4월 12일)

그렇다면 21대 국회에선 바뀔 수 있을까요. 21대 국회에서도 민주당 의원들이 인사청문회 제도를 개선하자는 법안을 3건 발의했지만 아직 상임위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박병석 국회의장이 인사청문회 제도 등 국회 운영 개선을 위한 여야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자고 했지만 활동도 별로 없습니다. 국회 관계자에게 현재 상황을 묻자 “야당이 유리할 때만 인사청문회를 써 먹고, 끝나고 나면 인사청문회 제도 개선에 대한 이야기는 더이상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같은 상황 속에서 ‘차기 정부 때부터 적용’하는 것으로 하자는 해결책도 여야 합의를 끌어내기는 쉽지 않을 듯 보입니다. 이미 정치권엔 ‘다음 정부부터 혜택을 보도록 할 테니 이번 정부에서 결정하자’고 해도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손을 못댄 대표적인 사례가 있습니다. 이 역시 민주당 정부 때 시작한 대통령 전용기 ‘공군 1호기’ 논란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후반 새 비행기를 구매해 노후화된 공군 1호기를 대체하자고 제안했지만 야당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습니다.

참여정부 시절이던 2005년 10월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인 1985년 도입된 보잉737-300기종(40인승)의 당시 공군1호기(현 공군2호기)를 거론하며 “새로 장만하는 결정을 하게 되면 그게 적용되는 시기는 제 임기 중이 아니고, 아마 다음 대통령도 해당 없고 그 다음 대통령 때나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도입 필요성을 거론했다. 이에 정부는 2006년 6월 전용기 구매 예산을 요청했지만,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이 2006년과 2007년 연거푸 반대해 무산됐다. (관련 기사 보기)

이후 한나라당이 대선에서 승리하자 상황은 역전됩니다. 이명박 정부로 바뀌자 여당이 된 한나라당은 2008년 전용기 구입을 추진했지만, 야당이 된 민주당이 과거 한나라당과 같은 논리로 막아섰습니다. 한나라당이 노무현 정부 때 반대했던 것에 대해 사과하고 민주당이 이를 받고 나서야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예상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한 보잉사와의 협상 끝에 전용기 구입은 다시 백지화되었습니다.

결국 정부는 2010년 대한항공 소속 보잉 747-400(2001년식) 여객기를 5년 동안 1157억원에 빌렸고, 2014년 말 박근혜 정권 때 1421억원을 주고 2020년 3월까지 계약을 연장했습니다. 정부는 지난해 일년 더 계약을 연장한 뒤, 새 비행기로 바꿔 2026년까지 5년 동안 3002억원을 내고 빌리기로 계약을 맺었습니다. 여야가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며 지체하는 사이 잘못 끼워졌던 단추가 점점 풀기 어려워진 셈입니다.

공군 1호기

‘대통령 전용기’ 논란과 닮은꼴인 인사청문회 제도 개선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요? 여야가 제도 개선은 놔둔 채 인사청문회 대상 공직만 계속 늘려 벌써 66명에 이릅니다. 지난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새로 대상에 포함되었습니다.

여야가 인사청문회 개선을 ‘진공 상태’에 놔둔 사이, 국민들 사이에서 정책능력 검증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는 변화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론조사기관인 한국갤럽이 지난 14일 내놓은 자료를 보면, ‘인사청문회에서 후보자를 검증할 때 도덕성과 정책 능력 가운데 무엇을 더 우선해야 하는지’ 묻는 질문에 도덕성과 정책능력이 각각 47%로 동률을 이뤘습니다. 7년 전인 지난 2014년 7월 조사에서만 해도 도덕성은 56%, 능력은 33%로 낮았습니다. 23% 포인트나 적었던 능력 검증의 중요도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7년 사이 껑충 뛰어오른 것입니다. 또 ‘후보자의 도덕성과 정책능력 모두 공개 검증’하는 방식에 응답자 가운데 76%가 좋다고 하는 등 도덕성 검증은 비공개로 하자는 의견에 동의하는 이(19%)는 많지 않았습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도덕성 검증은 비공개로 하자는 정치권의 현재 주장보다 능력 검증을 더 강화하는 쪽으로 가는 게 맞다고 주장합니다.

“전문성은 시간을 두고 상임위에서 소위를 구성하고 전문가들도 위촉해서 철저 검증해야 한다. 오픈북 테스트로 해도 된다고 본다. 누구에게 물어서 답을 작성하는 것, 좋은 자문그룹과 참모진을 두는 것은 장관의 중요한 덕목이다. 전문성 검증은 지금보다 훨씬 더 강화하는 것이 맞다. 그렇다면 여론과 언론의 관심이 전문성 쪽으로 좀 더 쏠리는 효과가 자연스럽게 나타날 것이다.” (윤태곤 실장)

문 대통령은 자신에겐 인사를 할 기회가 별로 남지 않았다고 했지만, 곧 김오수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립니다. 지난 13일 후보자가 사퇴한 해양수산부 장관 등 추가 인사가 이뤄지면 인사청문회는 또 열립니다.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도덕성 검증은 기본으로 하고, 지금 한국 사회가 고민하고 답을 찾아야 할 현안에 대한 토론이 활발히 이뤄지는 인사청문회입니다. 후보자들이 답해야할 현안 질문은 수두룩합니다. 검찰개혁·코로나19 극복·불평등 해소 등입니다.

대통령 전용기 논란은 여야가 ‘핑퐁’을 하며 미뤄도 국민 삶에는 크게 영향을 끼치진 않습니다. 하지만 인사청문회를 통과한 후보자들은 국민 삶에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여야 모두 인사청문회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면 이를 더이상 미루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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