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수의 지식카페>유럽 르네상스의 수도서..'언문일치' 근대문학 '신곡' 탄생하다
■ 장은수의 도시와 문학 - ④ ‘꽃의 도시’ 피렌체와 문학
막대한 재산 모은 피렌체 상인들 문화예술 적극지원… 단테, 라틴어 아닌 시민의 언어로 인간영혼 구원과정 그려
페트라르카 절제된 詩, 셰익스피어 등에 영향… 보카치오는 인간욕망 이야기 100편 담아내 산문의 세계 개척
‘꽃의 도시’ 피렌체는 새로운 문명, 새로운 세계의 관문이다. 막대한 재산을 바탕으로 문화예술을 후원한 메디치 가문이 자리 잡은 13세기부터 17세기까지 400년 동안 피렌체는 정치, 경제, 사상, 문학, 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인류사적 업적을 이뤘다. 두오모 성당의 종탑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면, 시내 전역이 ‘르네상스의 꽃’에 덮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단테, 페트라르카, 보카치오, 브루니, 마키아벨리, 조토, 보티첼리, 미켈란젤로, 다빈치, 브루넬레스키 등과 같은 불멸의 거장들이 피렌체에 자신만의 꽃을 심었다.
“누구도 이 도시보다 더욱 빛나고 영광스러운 곳을 이 세상에서 발견할 수 없네. 피렌체는 위대하고 장엄한 도시.”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기초를 놓은 공화주의 사상가 브루니의 ‘피렌체 찬가’다. 시는 전혀 과장이 아니다. 피렌체만큼 인류사에 큰 흔적을 남긴 곳을 찾기는 무척 어렵다.
12세기 중반만 해도 피렌체는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에 있는 작은 도시에 불과했다. 그러나 십자군 원정을 계기로 삼아 피렌체 상인들은 모직물, 무역업, 은행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함으로써 도시의 경제적 독립을 이뤘다. 또한 14세기 말부터 15세기 초까지 “전쟁마저도 아름다운 이 도시”는 시민이 흘린 피의 강물로 “수많은 굴종의 위협”에서 “자유”를 지켜냄으로써 르네상스의 정치적 기반을 마련했다.
“힘 있는 자들이 부와 지위를 악용해 약자를 위협하거나 경멸할 경우, 피렌체에서는 정부가 개입해 약자를 보호”했고, “정의와 분별력의 이상”에 맞춰 “도움이 가장 많이 필요한 사람이 가장 많은 도움을 받았다.” 로마제국이 보여줬듯, 자유 시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강한 군대 없이는 국가의 번영을 이룰 수 없고, 약자를 돌보는 정의의 복지가 없다면 시민들은 제 이익만을 다투는 짐승이 된다. 다빈치, 미켈란젤로 등과 함께 15세기 피렌체 르네상스의 꽃인 마키아벨리는 공공 이익을 위해서라면 정치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인간의 야수성(탐욕)을 다스려야 공화를 수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간의 속됨(자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신의 명령 없이 스스로 제어하는 길을 찾는 것이 근대의 핵심 과제 중 하나다. 피렌체는 최초로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의식한 곳이다. 13세기 중반부터 황제에게 작위를 받은 전통 귀족과 상업으로 돈을 번 신흥 가문 사이의 투쟁이 거듭됐고, 공화정이 자리 잡은 14세기 후반에는 다시 나폴리 전제주의와 혈투를 벌여야 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문학이 먼저 신에서 인간으로 시선을 옮기면서 르네상스 여명을 밝힌다.
트렌첸토(1300년대) 첫해에 단테는 정적에게 밀려 피렌체에서 추방당한다. “남의 빵을 먹고 사는 맛이 얼마나 짠지,/ 또 남의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너는 알게 될 것이다.” 정치적 타협을 거부한 단테는 죽을 때까지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채 타향을 떠돌면서 이방인으로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인간은 고통 속에서 지혜를 얻고, 방황을 거쳐 단련되는 법. 고난을 거치면서 단테는 ‘신곡’을 완성함으로써 중세를 마무리하고 근대를 앞당기는 위업을 이룩한다.
“인생길 반 고비에 나는 길을 잃고 어두운 숲속을 헤매었네.” ‘신곡’ 지옥편의 첫 행이다. 고통받는 인간을 정치로 구할 길을 빼앗긴 단테는 문학으로 인간 영혼을 구하는 여정에 오른다. 피렌체를 분열에 빠뜨린 정적을 지옥 곳곳에 던져넣고 단죄하면서도 그는 지옥에서 연옥을 거쳐 천국에 이르는 구원의 길을 찾아낸다. 이 점에서 단테는 아직 중세인이다. 그러나 그 길에서 그의 길잡이가 된 사람은 로마시인 베르길리우스와 영원한 사랑 베아트리체다. 단테의 등불은 로마의 인문정신과 애욕에 불타는 마음이다. 이로써 단테는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선구자가 된다.
페트라르카의 ‘칸초니에레’와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이 ‘신곡’의 뒤를 이었다. 세 작품은 모두 세속의 언어, 당대 피렌체 지방의 입말인 토스카나어로 쓰였다. ‘신곡’을 쓸 때 단테는 모순에 빠진다. 사랑이나 구원 같은 고귀한 정신을 시에 담으려면 온전한 진리의 언어인 라틴어로 쓸 수밖에 없는데, 시를 들려줄 베아트리체는 라틴어를 몰랐기 때문이다. 소수만 알던 지식·사상·감정을 모두가 알도록 만드는 일이 근대 지식 혁명이요, 소수만 누리던 권리를 모두가 누리도록 하는 일이 근대 정치 혁명이다. 문학과 학술의 언어를 시민의 입말(속어)로 바꾸는 일은 언제나 신민을 시민으로 변화시키는 첫걸음이다. 민주와 공화의 세계보다 먼저 번역과 문학이 존재한다.
언문일치는 단순히 입말로 글을 쓰는 일이 아니다. 라틴어의 품격에 맞춰 토스카나어를 다시 만드는 일에 가깝다. 속어로는 고매한 사랑을 충분히 전할 수 없었기에 단테는 글말에 맞춰 입말을 정련하는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 섬세한 느낌과 심오한 사상을 담을 수 있게 입말을 다듬는 것, 이것이 진정한 언문일치다. ‘신곡’은 인간 영혼의 구원 과정을 토스카나어로 된 완벽한 운율에 담아냄으로써 모어를 창조했다. 베아트리체를 성모 옆에 앉혀 놓음으로써 단테는 사랑을 통해 천국에 이르는 법을 발견했으며, 누구나 자기 입말로 진리를 말하는 세계를 열어젖혔다.
생전에 페트라르카의 이름을 높여 준 것은 고대 문헌을 발굴하고 정리해 정본을 확정하는 편집 작업, 키케로나 세네카 같은 로마인의 문장을 능란하게 활용해서 쓴 라틴어 서간문 등이다. 서양 최초의 인문학자인 그는 서재에 틀어박힌 채 독서를 통해 자아를 성장시키는 사색적 삶을 발명했으며, 고백 형식의 서간문에 ‘자아 찾기’의 여정을 담아냄으로써 인문 정신의 원형을 창조했다.
그러나 사후에 그의 이름을 불멸로 만든 것은 40년간 퇴고를 거듭하면서 쓴 ‘칸초니에레’였다. 연인 라우라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이 시집 역시 속어로 쓰였다. 단테의 언어가 아직 ‘속되다’고 여겼던 페트라르카는 소네트를 완성해 속어의 질을 한 단계 끌어올린다. “아, 아름다운 얼굴이여, 사랑에는 박차와 고삐가/ 모두 있어 이들로 나를 닦달하면서,/ 바라는 대로 몰아가니, 저항해도 소용없네!” 음악적 언어, 절제된 감성, 고상한 정신이 합쳐진 페트라르카 소네트는 완벽한 이탈리아어 사용법을 알려주는 교과서였고, 롱사르, 셰익스피어 등에게 영향을 줘 근대 서정시의 전범이 됐다.
1348년 페스트가 피렌체를 덮쳐 몇 달 동안 무려 1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보카치오는 흑사병의 한복판에서 재앙을 겪었고, 와중에 부친도 잃었다. ‘데카메론’은 흑사병을 피해 피렌체 외곽 별장으로 남성 일곱, 여성 셋이 피난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열흘 동안 이들은 매일 차례로 한 편씩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대부분 중세의 민담과 전설에서 가져온 것이다. 보카치오는 말한다. “적절한 언어를 쓴다면, 발설하지 못할 정도로 부적절한 이야기는 없다.”
부적절한 이야기란 ‘데카메론’에 모아둔 100편의 이야기를 뜻한다. 신을 찬양하던 입술에 담기에는 너무 천박한 것들이다. “나같이 싱싱하고 정력이 왕성한 젊은 여자가 음식과 옷 말고 다른 게 필요하다는 것쯤은 아셔야 하는 거 아녜요?” 이처럼 사랑과 증오, 진실과 기만, 정중함과 야비함, 고귀와 비천, 명예와 수치, 용감함과 비겁함, 지혜와 우매 등 인간 욕망 전체가 자유롭게 분출된다.
그러나 어떤 이야기도 본디대로 실리지는 않았다. ‘적절한 언어’로, 즉 보카치오가 내용과 형식을 조탁해 속됨을 씻어냈다. 이로부터 인간 욕망을 현실 그대로 그리되 격조를 잃지 않는 산문의 세계가 열린다. 이 작품을 신곡에 대비해 인곡(人曲)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열정에 휘둘리면서 진리를 찾아가는 인간의 문학, 나중에 ‘소설’이라고 불리는 세계가 데카메론에서 출발한다.
피렌체는 중세의 모든 것을 녹여 근대를 사출한 용광로였다. 여기서 르네상스가 태동했고, 인문주의가 자리 잡았고, 공화주의가 부활했으며, 인간 욕망에 기반한 정치학이 탄생했고, 은행 제도와 복식부기가 완성돼 근대 경제의 첫 단추가 놓였다. 무엇보다 언문일치가 실현되면서 지식과 정보가 민중의 손에 들어갈 수 있게 돼 근대 시민사회의 기틀이 마련됐다. 아테네와 로마가 서양 문명의 뿌리라면, 피렌체는 서양 근대 문명의 기둥이었다. 유라시아 변방에 있던 유럽은 피렌체의 융성과 함께 로마제국의 영광을 재현하면서 눈부신 날개를 펴기 시작했다.
문학평론가
■ 메디치 가문, 예술후원 왜?
‘이득 반환땐 면죄’ 믿음… 교회 짓고 예술품 봉헌
피렌체에는 성당이 무수하고, 성당마다 예술품이 가득하다. 대부분 메디치 가문을 비롯한 상인 집안이 후원한 것이다. 이들은 왜 돈을 들여 이런 일을 했을까?
성경은 이윤 추구 행위를 고리대로 봐 금지한다. 따라서 상인들은 죄인이었으므로 교회에 무덤을 둘 수 없었다. 부유할수록 큰 죄를 저지른 셈이니 부자들은 필사적으로 심판을 피할 길을 찾았다. 교회가 슬쩍 타협책을 내비쳤다. 유언을 통해 죄를 고백한 후 이득을 반환하면 면죄해 준 것이다. 특히, 따로 교회를 지어 바칠 경우, 대대로 가족 예배실로 물려줄 수 있게 했다.
돈과 구원을 바꾸는 사고방식은 상인에게 익숙했다. 그들은 부를 쌓아 구원도 사는 일을 환영했다. 성공한 상인들은 교회를 짓고 예술품을 봉헌해 가묘 확보에 나섰다. 중세 금욕주의가 약해진 자리에 거래와 교환이 퍼져나갔다. 이로써 행동 양식으로서의 자본주의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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