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처음 문 연 동네, 그곳에 이탈리아가 있다
글 사진 김문석 셰프 2021. 5. 17. 09:30
한국 근현대사 흔적 간직한 '개항 누리길'과 이탈리아 본토 맛 재현한 '체나콜로'
김문석 셰프의 맛으로 가는 길
김문석 셰프의 맛으로 가는 길
김 셰프의 걷기 추천
인천 개항 누리길
인천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도시다. 개항 누리길은 100여 년 전 처음 세계를 향해 문을 열었던 인천의 중구 개항장 권역을 한눈에 돌아보는 길이다. 공식적으로는 1시간, 2시간, 3시간 코스가 있지만 서로 겹치는 구역이 많아 통상의 걷기 여행가들은 가보고 싶은 곳만 이어서 걷는 것이 보통이다.
인천 도보여행의 기점은 인천역이다. 인천역은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과 수인선의 종착역이자, 수도권 전철에서 가장 오래된 역이다. 경인선 일반열차(비둘기호)가 다니던 시절인 1960년에 지어진 건물을 아직까지 사용하고 있어 수도권 전철역답지 않게 예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자유공원
걸음을 옮겨보자. 인천역에서 딱 300m만 걸어가면 한국 최초의 서구식 공원인 자유공원이다. 서울 종로의 탑골공원(옛 파고다공원)보다 9년 빠른 1888년에 조성됐다. 지금은 벚나무 거리 등 산책로가 아름다워 뭇 관광객과 주민들의 발길을 잡아끌고 있는 곳이다.
개인적으로 자유공원을 찾는 이유는 또 한 가지 있다. 바로 길거리 사진사 할아버지다. 오래전 카메라가 귀하던 시절부터 늘 공원 한켠에서 연인이나 가족의 추억을 사진 한 장에 길이길이 남겨 주고 계신 분이다. 물론, 지금 현재도 그곳에서 누군가의 소중한 추억을 영구보존해주고 있다.
#제물포 구락부
자유공원에서 살짝 내려서면 제물포 구락부다. 1901년 건립된 제물포 구락부는 처음엔 인천에 거주하던 외국인들의 사교장 역할을 하던 곳이었다. ‘구락부’란 말 자체가 영어 클럽Club의 일본식 음차다. 1914년 이후에는 일본재향군인회가 사용하면서 정방각으로 불렸으며, 광복 이후에는 미군의 장교클럽, 1990년부터 2006년까지 인천문화원 등 변천을 겪다 2007년 현재의 제물포 구락부로 복원, 스토리텔링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드라마 <도깨비>의 촬영지로 젊은 관광객들의 인기를 한 몸에 차지하고 있다.
현재는 인천문화원 주최로 영국인 화가였던 엘리자베스 키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한국을 사랑한 판화가 키스는 일제강점기에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해 한국인의 일상과 풍속을 그림으로 남겼다. 서양인의 시선으로 표현한 우리들의 과거 일상이 무척 독특하고 생경하다. 동북아시아와 러시아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 외관도 멋스럽다.
#일본풍거리
구락부에서 내려오면 개항 이후의 거리를 걷는 것 같은 착각을 주는 일본풍거리가 나온다.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미군의 도움을 받아 부서진 붉은 벽돌로 세웠다는 관동교회(1908년 일본인이 지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호텔이자 처음으로 커피를 선보인 곳이라는 대불호텔(현재는 중구생활사전시관), 인천에 설립된 최초의 은행으로 현재는 130년 인천 역사를 담고 있는 인천 개항박물관 등 볼거리가 가득하다.
인천 아트플랫폼도 가볼 만하다. 복합문화예술 매개공간으로 근대 개항기 건물을 리모델링해 공모로 선발된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해 둔 곳이다. 특히 이 거리는 해질 무렵에 가야 그 진가와 감성을 만날 수 있다.
김 셰프의 맛집 추천
체나콜로Cenacolo
주소 인천시 중구 신포로 15번길 69
전화 032-773-8155
오너 셰프 강나연 ICIF ITALIA를 졸업한 후 Ristorante La Fermate, Hotel Leonardo da vinci, 음식발전소, SPC 외식사업부 R&D, 퀸즈파크를 거치며 19년간 요리사로 살았다.
체나콜로는 개항 누리길에 갤러리의 그림들과 멋지게 어우러진 이탈리아 음식을 내놓는 셰프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간 곳이다. 체나콜로는 이탈리아어로 ‘식당’, ‘살롱’이라는 기본 뜻 외에 ‘최후의 만찬’ 그림을 뜻하기도 한다. 화려한 기교로 가득한 요리가 아니라, 담담하게 본토의 맛을 추구하는 것이 특징이다. 강나연 오너 셰프에게 식당 운영 계기와 요리 철학에 대해 일문일답을 나눠봤다.
Q. 요리 철학은 무엇입니까?
A. 한마디로 말하면 ‘기본’입니다.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위생적이고 청결하며, 화학조미료를 첨가하지 않고 좋은 재료로 정성스럽게 만들어내는 홈메이드 스타일의 요리’라고 할 수 있겠지요. 늘 내 가족의 식사를 준비한다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이탈리아의 트라토리아Tratoria(레스토랑보다 격식을 덜 차리고 조금 더 대중적이고 저렴한 음식을 내놓는 식당)가 제 정체성에 잘 맞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이탈리안 레스토랑과는 다르게 새롭고 창의적인 요리에 도전하기보다 본토에서 제가 느끼고 배웠던 ‘기본의 맛’을 충실히 재현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 취지로 메뉴도 정통적인 파스타, 가령 아마트리치아나Amatriciana, 펜네 아라비아타Arrabbiata, 라구 볼로네제Ragu Bolognese, 푸타네스카Puttanesca 등 클래식한 이탈리안 요리를 지향하고 있어요. 모든 소스는 직접 수제로 만들고 있습니다. 재료는 연안부두에서 신선한 제철 해산물을 공급받고 있어요.
Q. 왜 이곳 개항장에 식당을 여셨나요?
A. 이곳은 국내 최초라는 타이틀이 무수히 많은,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곳입니다. 또 시간 여행을 하듯 과거와 현재가 혼재되어 있어 무척 매력적인 곳이지요. 사실, 제 고향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유동 인구도 없고 힘든 상권이지만 이처럼 의미 있는 곳에서 인천 개항장의 역사와 함께 깊어가는 노포를 만들고 싶어요.
Q. 식당에 유독 그림이 많이 걸려 있습니다.
A. 체나콜로는 제가 연 첫 번째 식당입니다. 그래서 처음에 ‘어떤 콘셉트의 식당을 꾸릴까’ 하고 무척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 결정한 것이 갤러리+트라토리아, ‘갤러리토리아’입니다. 정성스러운 요리와 인천 출신 지역 작가들의 전시를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인 셈이죠. 이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개항장처럼, 예술과 미식이 공존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다행히 많은 분들이 레스토랑 그 이상의 문화공간이 생겼다며 좋아해 주십니다.
지금은 점묘화가 안명혜安明惠 선생님의 작품이 전시돼 있습니다. 29회의 개인전과 화랑미술제, 키아프 등 국내외 아트페어 및 단체전에 620여 회나 참여하신 분이세요. 바라만보고 있어도 생명이 가득한 행복의 세계가 펼쳐지는 작품들입니다.
<버섯크림 뇨끼>
고소하고 부드러운 버섯 크림과 구운 두백 감자로 만든 뇨끼. 두백 감자를 오븐에서 수분을 날려가며 구운 후, 레지아노 치즈와 소량의 밀가루와 넉맥, 소금, 후추로 반죽하고 성형해 버터와 함께 담백하게 구워 냈다. 사실 요리사 입장에서, 이 요리는 주방에서 손이 정말 많이 가고 수율도 좋은 편이 아니라 꺼리는 편인데, 감자의 담백한 맛을 잘 살려낸 것을 보며 강 오너 셰프의 정성을 엿볼 수 있었다.
<참송이 버섯 크림 리조또>
전라남도 나주의 참송이 버섯을 구워 고소한 풍미를 살렸고, 씹는 감촉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루 궁뎅이 버섯을 말려서 가니시로 사용했다. 버섯 크림 리조또는 대중화된 음식이지만, 이곳은 참송이와 노루 궁뎅이 버섯, 황금 팽이 버섯 등 많은 버섯을 사용해 더욱 다양한 식감을 입안에서 느낄 수 있다. 특히 트러플 오일을 더해 버섯향이 입안에 오래 머무는 것이 특징이다.
<새우 로제 파스타>
새우 머리로 비스크 소스를 만들고, 연안부두에서 공수한 블랙 타이거 새우로 만든 파스타.
<푸타네스카 파스타>
이탈리아 남부 지방에서 1960년대 즐겨 먹었던 파스타의 한 종류. 현지 이탈리아 가정식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토마토, 엔초비, 마늘, 올리브, 케이퍼 등을 섞어서 만든다.
'본 기사는 월간산 5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
Copyright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