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에 맞선 '진실'의 힘..4·3의 참상 고발한 '순이삼촌'
[앵커]
50편의 소설 가운데 가장 먼저 소개해드릴 작품, 현기영의 중편 '순이삼촌'입니다.
한국 현대사의 최대 비극 제주 4.3을 세상에 알린 이 소설은 역사를 은폐하려는 권력에 맞선 의지의 산물이자, 한 편의 소설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졌는지를 문학사에 각인한 걸작으로 평가됩니다.
정연욱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1949년 1월 주민 3백여 명이 한꺼번에 학살된 제주 북촌리.
그 뒤로 30년이 흘러 마을 전체가 제사를 지내는 날, 모처럼 고향을 방문한 화자는 순이삼촌의 부고를 듣게 됩니다.
'삼촌'은 먼 친척을 뜻하는 제주방언으로, 학살의 현장, 옴팡밭에서 홀로 극적으로 살아남은 여성이었습니다.
평생 신경쇠약에 시달린 이 기구한 생존자는 끝내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그 때 그 현장인 옴팡밭으로 걸어들어가 죽음을 선택합니다.
무려 30년 간 유예된 죽음이었습니다.
[현기영/소설가 : "생존자들은 정신적으로 병든 사람이에요. 트라우마를 앓고 있는 사람들이죠. 그게 순이삼촌이에요. 사실 그대로죠."]
순이삼촌의 부고와 함께 시작된 가족들의 회고.
당시 제주도민 10분의 1에 해당하는 3만여 명이 희생됐어도, 가족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감히 말하지 못했던 기막힌 사연들이 쏟아집니다.
소설이 발표된 시기는 제주 4.3 사건의 참상이 알려지기 전인 1978년.
당시 30대 후반이었던 작가는 집필에 앞서, 여전히 공포에 짓눌려 있던 북촌리 주민들을 찾아 설득부터 해야 했습니다.
[현기영/소설가 : "그 때 젊은 작가가 왔을 때 그 참상, 그 억울함을 호소했어야 되지 않겠냐, 근데 왜 말하지 않았냐, 하고 꾸중을 듣고 노여움을 받지 않겠냐, 이런 식으로 제가 울면서 설득을 했죠."]
4.3을 다루기만 해도 고초를 겪어야했던 시절, 고향 제주에서 벌어진 이 압도적인 비극을 작가는 끝내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현기영/소설가 : "4.3 이야기를 안하고는 문학적으로 한발짝도 떼어 놓을 수가 없다는 압박감을 느꼈어요."]
실제로 소설을 발표하고 1년 뒤, 보안사로 끌려가 사흘 동안 모진 고문을 당했습니다.
그래도 다시 용기와 양심을 되새기게 했던 사람.
가상의 인물, 순이삼촌이었습니다.
[현기영/소설가 : "꿈 속에 나타난 순이삼촌이 허구헌날 그렇게 술이나 처먹고 절망에 빠져있느냐, 일어나거라 어서 일어나거라. 내 손을 잡아 이끄는 거예요."]
목숨을 건 고발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화제가 됐지만, 제주 방언을 활용한 풍부한 묘사와 섬세한 표현력으로 문학성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홍기돈/문학평론가/가톨릭대 교수 : "첫 번째가 4.3의 참상을 알리겠다 이게 있고, 두 번째는 제주인으로서의 정체성 찾기가 있습니다. 왜 하필 제주에서 이런 비극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는가. 이것이 제주도를 향한 편견이 있었기 때문이다라는 것이 작품에도 나옵니다."]
강요된 침묵에 맞서 역사의 아픔을 드러낸 소설의 힘은 다름 아닌 진실의 힘이었습니다.
우리가 동시대의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KBS 뉴스 정연욱입니다.
촬영기자:조승연 류재현/그래픽:김지훈 박세실
정연욱 기자 (donke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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