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백년 '힙'한 전영록, 세대를 '합'한 하모니
젊은 힙한 가수들과 함께 작업
골드부다와는 36살 나이차
전영록 내년이면 데뷔 50주년
‘영원한 젊은 오빠’ 전영록이 젊은 열정의 힙합 가수들과 함께 국경과 세대의 벽을 뛰어넘는 도전에 나섰다. 전영록의 히트곡을 힙합으로 리메이크한 <전영록 힙합 리메이크 파트1>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 4월 말 발표한 이 앨범에는 릴체리·골드부다가 리메이크한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디보·던밀스가 참여한 ‘저녁놀’, 킴애딕·용용이 재해석한 ‘세레나데’ 세곡이 실렸다. 강렬한 힙합 비트에 얹은 전영록의 목소리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원곡과는 색다른 감성을 들려준다. 지난 13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분당의 한 카페에서 앨범을 합작한 전영록과 골드부다를 만났다. 둘의 나이 차는 무려 36살. 한 세대를 훌쩍 뛰어넘는 장벽을 무너뜨린 건 바로 음악이었다.
종이학, 연필…아날로그 감성 물씬
“1982년 ‘종이학’을 발표했을 때 종이학 접기 열풍이 일었거든요. 그 이듬해 내놓은 게 바로 이 노래였어요.” 전영록이 1983년 발표한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는 발랄하고 상큼한 매력의 노래다. 종이학과 연필처럼 아날로그 감성 물씬한 노래로 그는 많은 소녀 팬과 대중에게 사랑을 받았다.
릴체리와 골드부다는 원곡 가사를 유지한 채 힙합 리듬과 트렌디한 사운드로 리메이크했다. 릴체리의 밝은 목소리와 느낌, 골드부다의 영어 랩이 잘 어울린다. “체리가 원곡 멜로디를 좋아해 계속 흥얼거리며 신나게 작업했어요. 할아버지·할머니부터 손자·손녀까지 모두 좋아할 곡으로 리메이크하고 싶었어요.” 골드부다가 말했다.
릴체리와 골드부다는 흔치 않은 남매 힙합 가수다. 전영록 또한 연예인 가족으로 유명하다. 아버지는 연기파 배우 황해, 어머니는 ‘봄날은 간다’의 가수 백설희, 고모는 가수 나애심, 사촌이 가수 김혜림이다. 이뿐 아니다. 전영록의 첫째 딸 보람은 걸그룹 티아라 출신이고, 둘째 딸 우람은 그룹 디유닛 출신으로, 현재는 록밴드 ‘파이브 런 스트라이크’의 보컬이다.
골드부다는 어릴 적부터 전영록의 원곡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2002년 서울에 살았는데, 그때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서 많이 부른 노래였어요. 참, 부모님도 전영록 선생님 팬이에요.”
그러자 전영록이 말했다. “골드부다가 항상 동생 체리를 앞세우는 게 보기 좋아요. 그리고 체리와 우람이가 많이 닮았어요.” 그는 휴대전화에 있는 딸 우람의 사진을 골드부다에게 보여줬다.
싱어송라이터이자 히트곡 제조기
전영록은 싱어송라이터다. 그가 1988년 직접 작사·작곡해 발표한 ‘저녁놀’이 큰 인기를 끌었다. 그는 이 노래를 만든 이유를 이날 <한겨레>에 처음 털어놨다. “인천 서해 바다에서 저녁놀을 보고는 영화음악에서 영감을 받아 이 곡을 만들었어요. <대부> 오에스티(OST) 중 ‘부드러운 사랑으로 속삭여줘요’(Speak Softly Love)에 나오는 “내리쬐는 나날, 와인과 함께하는 날들”(Wine-colored days warmed by the sun)이라는 가사의 색감을 한국적인 느낌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 노래가 이번 앨범에선 힙합 가수 디보와 던밀스의 중독적인 리듬과 재치 있는 랩 가사로 다시 태어났다.
전영록은 히트곡 제조기이기도 하다. 그가 만들어 다른 가수에게 준 히트곡이 많다. 이지연의 ‘바람아 멈추어다오’, 양수경의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 김희애의 ‘나를 잊지 말아요’, 김지애의 ‘얄미운 사람’이 대표적이다. 대부분 발라드로 젊은층에서 인기를 끌었는데, ‘얄미운 사람’은 트로트라는 점이 색다르다.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는 원래 남국인 작곡가가 주현미를 위해 만든 트로트곡이었는데, 어찌하다 보니 제가 불렀어요. 주현미에게 미안해서 그를 위해 만든 곡이 ‘얄미운 사람’이었는데, 또 어찌하다 보니 김지애가 부르게 된 거죠.”
클래식을 가요로, 그리고 힙합으로
‘세레나데’는 전영록이 지난해 발표한 최신곡이다. 젊은 장교와 서커스단 소녀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그린 고전 영화 <엘비라 마디간>에 나오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 2악장’을 차용했다.
전영록은 클래식을 가요로 재해석한 이유를 ‘재즈의 황제’ 루이 암스트롱의 예를 들어 설명했다. “암스트롱의 대표곡 ‘왓 어 원더풀 월드’를 좋아해 자주 들었어요. 자꾸 듣다 보니 “반짝반짝 작은 별”로 시작하는 동요를 변형한 거더라고요. ‘그럼 이 동요는 어디서 나왔지?’ 하는 호기심으로 공부하다 보니 모차르트의 ‘아, 말씀드릴게요, 어머니’라는 곡을 변주한 거였어요. 이렇게 클래식이 동요로, 또 재즈로 변주된 거였어요. 그래서 저도 클래식을 가요로 변주해본 게 바로 ‘세레나데’입니다.”
이 곡은 힙합 가수들과 인연을 맺게 해주었다. “클래식을 가요로 만들고, 여기에 영어 가사를 붙여 국외 시장에 도전장을 내고 싶었어요. 일단 제 유튜브 채널에 이 노래를 올렸죠. 그랬더니 힙합 가수 킴애딕이 이를 듣고 협업을 제안해왔어요. 그래서 이번 앨범으로 이어진 거죠.” 킴애딕과 용용은 연인과의 사랑을 주제로 재해석해 진솔한 가사와 멜로디로 리메이크했다.
36살 차이 나는 가수들의 이심전심
전영록과 골드부다는 한 세대를 넘는 나이 차이에도 대중문화의 ‘전복’을 꿈꾸는 마음은 같았다. 대중음악이 세대와 국경에 따라 확연히 갈라져 있는 걸 뒤집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요즘 가요는 트로트와 힙합으로 확 갈라져 있어요. 트로트는 연세 드신 분만 좋아하고, 힙합은 젊은층만 찾죠. 장르마다 서로 단절돼 있어요. 많은 가수들이 이를 뒤집었으면 해요.”(전영록)
“저 역시 같은 생각이에요. 사실 힙합은 미국에서 들어온 장르잖아요. 그냥 미국 힙합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우리만의 색을 입힌 힙합을 만들고 싶어요. 동생과 함께 만든 ‘하늘천따지 1000 워즈’도 그런 생각을 바탕에 두고 작업한 곡이에요.”(골드부다)
요즘 방송의 대세인 오디션 프로그램을 놓고도 두 사람의 생각은 같았다.
“요즘은 노래하는 무대를 경연으로만 만드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가수들이 악을 쓰게 만드는 걸 볼 때마다 씁쓸해요. 노래는 즐기고 누리며 기쁘게 듣는 건데 말이죠.”(전영록)
“힙합도 마찬가지로 오디션에서 극단적으로 몰아넣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보여주고 싶은 게 많은데…, 그게 다가 아닌데…’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돼요.”(골드부다)
반백년에도 ‘불티’처럼 타오르는 도전
전영록은 “이번 앨범은 가수 후배들이 저에게 주는 세번째 선물”이라고 했다. 첫번째는 전영록 데뷔 20돌을 맞은 1992년 변진섭·원미연·유열·유홍석·이남이·이연경·이화규·임백천·임지훈·장혜진·정수라·최진실·홍서범 등이 참여해 만든 헌정 앨범 <음악세계와 친구들>이었다. 두번째는 데뷔 30돌은 맞은 2002년 나온 헌정 앨범 <전설>이었다. 여기엔 김조한·김정민·김원준·김현정·박진영·박상민·박정현·박강성·성시경·소찬휘·엄정화·윤종신·이기찬·이승철·장나라·채은옥·캔·홍경민 등이 참여했다.
전영록은 내년이면 데뷔 50돌을 맞는다. 반백년 세월이 흘렀어도 노래를 향한 ‘불티’는 여전히 타오르고 있다. 그의 노래 ‘불티’의 가사(“나의 뜨거운 마음을/ 불같은 나의 마음을/ 다시 태울 수 없을까”)처럼 말이다.
전영록은 ‘네이키드 뮤직’이라는 음악 장르에 도전하고 있다고 했다. “록의 3요소는 기타, 드럼, 베이스인데요, 네이키드 뮤직은 통기타로 기타와 드럼 역할을 동시에 구현하는 겁니다. ‘통기타의 소프트 록 버전’인 셈이죠.” 지난해 1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흘러간 팝과 록 음악을 네이키드 뮤직으로 편곡해 매일 한곡씩 올리고 있다. 지금껏 올린 노래만 800곡에 이른다.
그는 민중가요에도 도전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에 ‘5월의 노래’라는 꼭지를 만들어 노래를 올리고 있다. “1970년대 가요계에는 크게 두개의 축이 있었어요. 하나는 대중가요였고, 다른 하나는 민중가요·포크송 같은 언더그라운드 가요였죠. 김민기의 ‘늙은 군인의 노래’는 군 시절 선임하사가 자신을 위한 노래를 만들어 달래서 막걸리를 얻어 먹고 지은 거잖아요. 그런데 엄혹한 시대엔 못 부르게 했죠. 그때 못 불렀던 노래를 이젠 자유롭게 부르려고 해요. 김민기, 양병집, 한대수, 서유석, 김정호, 조동진, 양희은… 이런 가수의 노래들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뭘까? “음악은 화음이 중요해요. 한쪽으로 쏠리거나 갇혀 굳어지지 않고, 물처럼 펼쳐 흘러야 하는 게 음악입니다. 세대와 세대의 단절이 아니라, 세대의 벽을 무너뜨리고 하나의 감동으로 잇는 음악을 할 겁니다.”
골드부다도 자신의 바람을 전했다. “전영록 선배님처럼 위대한 뮤지션을 힙합 세대와 연결하고 소개해주는 일을 계속하고 싶어요.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강원도 평창에 있는 전영록박물관에서 힙합 뮤지션들과 함께 공연도 하고 싶고요.”
전영록은 후배 가수들과 ‘힙합 리메이크’ 프로젝트를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 음악으로 세대의 벽을 허무는 선후배 가수의 인터뷰를 마칠 즈음 서쪽 하늘엔 저녁놀이 불타고 있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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