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캐스팅보트 90년대생, 그들이 펜을 잡았다
한국 사회 공론장 바꿔나갈 젊은 논객들 주목
‘진짜’ 90년대생이 온다. MZ세대(1980년대~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를 이끄는 중심축인 90년대생은 현재 대한민국 정치·경제·사회 지형을 들었다 놨다 하는 ‘캐스팅보트’다. 그러나 막상 90년대생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볼 기회는 많지 않았다. 90년대생이 너무 궁금한 기성세대 혹은 선배세대가 규정하고 대상화한 90년대생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당장 기성세대에게 필독서로 자리 잡은 ‘90년대생이 온다’(웨일북)의 저자 역시 1982년생으로 엄밀히 따지면 MZ세대의 최고참 ‘맏형’이다. 이번엔 다르다. 90년대생들이 직접 펜대를 잡고 한국 사회를 분석하는 한편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책과 시리즈가 속속 출간되고 있다. 대한민국 공론장의 세대교체를 이끌 차세대 논객들이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지적 담론 갈아치울 젊은 지식인들의 등장
90년대생의 눈으로 한국 사회를 해부한 ‘K를 생각한다’(사이드웨이)의 저자는 1994년생 임명묵(27)씨다. 2018년부터 일간지에 2030 칼럼을 연재하며 20대 논객으로 이름을 알린 그의 페이스북 팔로어는 1만2,000여 명. 선배 세대의 문화를 잘 이해하면서도 90년대생 대변인으로 나선 그의 뛰어난 식견과 소통 능력에 4050 기성세대마저 열광한다. 오죽하면 ‘아재돌’이란 별명까지 붙었다.
16일 전화로 만난 임씨는 90년대생에 대해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어떠한 기회도, 보상도 얻지 못하는 절망의 세대”라고 진단했다. 부모의 신분과 자산이 구조적으로 대물림되면서 계층 상승의 사다리는 진작에 사라졌다. 90년대생이 ‘공정’에 민감한 건 “그나마 믿어온 국가시스템이 예측가능한 방식으로 흘러가지 못하는 것에 분노해서”란 설명이다. 다만 ‘20대 보수화’에는 선을 그었다. “민주당이 잘 못해서 국민의힘을 찍었을 뿐”이란 거다. 그는 책에서 90년대생의 중첩된 스트레스와 심리적 압박이 온라인 공간에서 투쟁적으로 발현되며 웹툰과 웹소설 등 K콘텐츠 붐의 자양분이 됐다는 흥미로운 주장도 편다.
1990년대생 차명식(31)씨는 68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의 미래를 내다보는 ‘68혁명, 인간은 세계를 바꿀 수 있을까’(북튜브)를 펴냈다. 인문학을 통해 청년의 자립을 꿈꾸는 인문학 스타트업 ‘길드다’ 소속인 그는 68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의 세대갈등과 진영논리를 넘어 더 나은 정치, 문화적 지평을 열어 나가려 시도한다. 출판사는 '차명식의 역사강의' 시리즈로 후속작을 준비 중이다. '지금은 없는 시민’(한겨레출판)을 펴낸 1990년생 강남규(31)씨도 거대 양당의 이분법적 논리를 넘어 시민의 책임과 역할을 역설하는 사회 비평으로 각광 받는 필자다.
“미래는 스스로 만든다” 90년대생의 대안적 삶
90년대생을 전면에 내세운 에세이 시리즈도 등장했다. 자칭 ‘40년 전통의 인문사회 출판사’로 묵직한 시각의 책을 주로 내온 ‘동녘’은 지난달 밀레니얼 세대를 위한 에세이 시리즈 ‘디귿’을 론칭했다. 밀레니얼 세대의 이야기를 가볍게 소비하듯 다루지 않겠다는 게 목표. 첫 번째 책 ‘집이 아니라 방에 삽니다’의 주제는 기본소득이다. 저자인 1994년생 신민주(27)씨는 "좋아하는 일에 도전할 수 있는 원동력, 실패해도 괜찮은 튼튼한 안전장치"로서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시리즈를 기획한 것도 90년대생이다. 1995년생 박소연(26) 편집자는 “기본소득은 밀레니얼 세대의 ‘미래 이슈’임에도 불구하고 중년 남성 전문가들의 목소리만 넘쳐나지 않느냐”며 “제대로 된 대안을 찾기 위해선 무엇보다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책을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시리즈는 ‘등산’, ‘달리기’ 등의 주제로 이어질 예정이다.
MZ세대의 삶을 직접 묻고 답하는 인터뷰집 ‘요즘 것들의 사생활’(900KM)도 ‘결혼생활탐구’(2018)에 이어 ‘먹고사니즘’ 편이 3월에 나왔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시대의 고민을 담았는데, 20대는 물론 3040, 5060세대에서도 반응이 좋다. 이혜민(34) 대표는 “전례 없는 코로나 위기를 겪으면서 과거와 같은 삶의 방식을 지속할 수 없다는 깨달음이 전 세대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며 “‘내 자식은 나와 다른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책을 사가신 60대 독자분도 있다”고 귀띔했다. 90년대생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삶의 선택지에서 기성세대도 대안을 찾고 있단 얘기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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