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회담서 '싱가포르 합의 계승' 명시 추진한다

조영빈 2021. 5. 17. 04: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바이든 취임 후 첫 한미회담 의제와 전망
①韓 쿼드 선별적 참여→ 美 북핵 협조
②韓 반도체 공급망 투자→ 美 백신 지원
오는 21일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정상회담을 갖는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AFP

정부가 오는 21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한미정상회담의 공동선언문에 '북미 싱가포르 합의'에 대한 미국의 계승 의지를 반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의 새 대북정책 검토를 마친 시점에서 개최되는 이번 회담을 활용해 미국의 협상 의지를 부각시켜 북한에 협상 재개 '명분'을 제공하려는 의도다.

외교의 기본인 '주고 받기'를 감안할 때 미국의 호응 여부는 우리가 제공하는 '반대 급부'에 달렸다. 미중 패권 경쟁 속에 미국은 대중 포위망 구축 전략에서 한국의 참여 수준에 관심이 크다. 이에 정부는 기존의 한미일 3각 공조 강화에다 이제껏 중국을 의식해 거리를 둬온 쿼드(Quad)에 대해 비군사분야에서의 '선택적 참여'를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우리의 현안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조기 수급도 주요 의제다. 이를 위해 민간 기업을 중심으로 미국의 반도체·배터리 공급망 강화에 협력하는 방식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북핵 등 기존의 안보이슈는 물론 방역·경제 등 비전통 안보이슈까지 맞물리면서 의제 조율은 정상회담 직전까지 진행될 전망이다.


바이든 대북 메시지로 北 협상 복귀 유도

16일 핵심 외교 당국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정부는 바이든 대통령이 회담에서 2018년 북미 간 싱가포르 합의와 남북 간 판문점 선언에 대한 관심을 표명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새 대북정책과 관련해 언론을 통해 '싱가포르 합의'의 토대 위에서 북한과의 협상 의지를 드러냈지만, 당국자가 직접 명시적으로 밝힌 적은 없다. 우리 정부로서는 과거 북미·남북 정상 합의에 대한 바이든 행정부의 명시적 지지를 확보해 북한의 재협상 의지를 자극할 기폭제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취임 4주년 특별연설에서 "싱가포르 선언의 토대 위에서 유연하고 점진적·실용적 접근으로 풀어나가겠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환영한다"고 밝힌 배경인 셈이다.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북미·남북 대화를 복원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한 것이다. 정부의 핵심 소식통은 "바이든 대통령이 언급하는 게 여의치 않다면 양국 정상 간 선언문에 합의, 싱가포르 선언 계승 의지를 반영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전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국의 명시적인 싱가포르 합의 계승 의지만으로도 북한에 상당한 의미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싱가포르 합의상의 '한반도 비핵화'를 계승한다는 것인지, '새로운 북미관계'를 계승한다는 것인지는 불확실한 것이 한계"라고 지적했다. 회담 이후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충분히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을 경우 북한이 당장 긍정적으로 반응하기는 쉽지 않다는 뜻이다.


선별적 참여 앞세워 '쿼드'에 유연해진 정부

우리 정부가 미국에 '북미대화 재개'를 강하게 요구할수록 한미일 3각 공조와 쿼드 참여 등 대중국 견제 참여 압박도 강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북핵 문제와 관련해 "동맹 차원의 공조"를 앞세우고 있는데, 미국도 같은 논리로 대중국 견제를 위해 동맹국인 한국의 협력을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우리 정부의 쿼드에 대한 입장은 눈에 띄게 유연해지고 있다. 이제껏 중국을 의식해 "미국의 참여 요청은 없었다"는 입장이었으나, "개방성·포용성이 확보된다면 쿼드 회원국들과의 분야별 협력이 가능하다"는 설명이 부쩍 늘었다. 중국을 고립시키기 위한 배타적 협력체가 아니라는 전제를 확인한다면 쿼드에 전면적인 가입은 아니더라도 △코로나19 △기후변화 △신기술 분야 등의 워킹그룹 참여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연구센터장은 "민주주의 동맹과 중국 견제 등 미국의 동맹주의에 한국도 동의한다는 제스처는 필요하다"며 "반드시 '쿼드'라고 명시하지 않더라도 미국이 주도하는 다자협력체와의 협력에 호응한다는 메시지는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백신·반도체 등 경제안보 협력 가속

비전통 안보분야에선 2분기 백신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정부가 미국으로부터 여유분을 앞당겨 받되, 한국은 반도체·배터리 분야의 대미 투자로 화답하는 주고 받기가 예상된다.

한국 질병관리청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 '백신 스와프' 양해각서(MOU) 체결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계약한 백신이 주로 하반기에 공급될 예정인 가운데 상반기까지 예상되는 백신 보릿고개를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 여유분을 빌리고, 추후 한국이 받을 물량을 미국에 돌려주는 방식으로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성사된다면 국내 백신 공급 불안을 해소하고 접종에 숨통이 트일 수 있다. 아울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모더나 백신을 국내 위탁생산하는 계약 체결은 물론 원천기술 이전까지 추진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미국은 이에 한국에 반도체·배터리 공급망 협력 강화를 내세우고 있다. 문 대통령의 방미에 맞춰 우리 민간 기업들은 40조 원 규모의 미국 투자 계획을 밝힐 예정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이들 품목의 공급망 강화에 나서는 배경에는 해당 품목에 대한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중국과 기술 격차를 벌리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백신과 반도체는 쿼드의 주요 협력 분야인 만큼 이러한 한국의 움직임은 미국의 대중국 견제에 한발짝 다가서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다만 중국 의존도가 여전히 높은 우리 기업들이 향후 미국과의 기술 협력에 얼마큼의 성의를 보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