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재 "ESG, 다음 세대 생각하며 돈도 잘 버는 투자죠"
[편집자주] 지금 대한민국에는 ESG 광풍이 몰아친다. 규모와 업종을 막론하고 어떤 기업도 ESG를 빼고는 쉽게 논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만큼 한편으로는 ESG 변화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머니투데이가 국내에서 ESG 분야에서 오래 몸 담은 전문가들을 만나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 본다.
"15년 전에는 누구도 알아주지 않던 ESG가 이제 완전히 메인 스트림으로 자리 잡았죠. 제가 조그마한 씨를 뿌렸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낍니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61)는 15년 가까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분야에 몸담아온 전문가로 손꼽힌다. 지난해부터 ESG 열풍이 불어닥치면서 그가 느끼는 소회도 남다르다.
국내에서 14년간 증권맨으로 잘 나가던 류 대표는 영국 유학 생활을 통해 새로운 인생이 시작됐다. 당시 영국에서는 연금법 개정이 이뤄지면서 연기금을 운용하는 주체들이 ESG를 얼마나 고려했는지 공시하도록 했다. 당시만 해도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최선의 투자로 여겨지던 국내 풍토에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류 대표는 "그러다 러셀 스팍스의 '사회책임투자 세계적 혁명'이라는 책을 읽고 제 인생 2막이 시작됐다"며 "기업을 친환경, 친사회적으로 바꾸기 위해 투자자들이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국내로 돌아온 그는 ESG를 알려보자는 사명감으로 2006년 서스틴베스트를 설립했지만 첫걸음부터 만만치는 않았다. 당시만 해도 나름 알려진 전문가들조차 "ESG가 뭐냐"고 되묻는 것이 일상이었다.
류 대표는 "나름 잘나가는 증권맨이었는데 서스틴베스트라고 적힌 명함을 들고 다니니 '듣보잡'(듣도 보도 못했다는 뜻의 은어) 취급을 받았다"며 "열심히 자료를 만들어 업계 사람들을 만나러 가도 다들 관심이 없어서 설움을 느꼈다"고 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ESG의 기반을 닦았던 류 대표에게 지금의 변화는 상전벽해 수준이다. 국민연금은 ESG 투자를 전체 자산의 50%까지 늘리겠다고 선언했고, 기업들도 ESG 경영에 너나 할 것 없이 뛰어들고 있다.
직원 두어 명으로 시작했던 서스틴베스트 역시 스무 명이 넘을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류 대표는 보람을 느끼면서도 혹시나 하는 걱정도 뒤따른다.
류 대표는 "ESG가 새로운 자본주의의 패러다임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빠르게 변화할지는 몰랐다"며 "한때 유행했던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처럼 일시적인 유행으로 끝나면 안 된다는 걱정도 함께 든다"고 했다.
실제로 국내 ESG 발전 단계를 보면 이제 걸음마 단계다. 특히 이 분야에서 선도적인 유럽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그는 가장 중요한 키를 연기금이 쥐고 있다고 지적했다.
류 대표는 "유럽을 비롯해 ESG가 발전한 금융선진국을 보면 연기금이 씨를 뿌리면서 시작하는데 국내에서는 단순히 위탁운용사를 선정하고 돈을 뿌리는 것에 그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민연금이 ESG 투자에 나서는 동시에 생태계 구축에도 신경을 쓰면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ESG는 기본적으로 시장 메커니즘으로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자는 것인데 우리는 단순히 펀드 규모만 늘리면 된다는 식"이라며 "블랙록이 ESG를 강조하는 이유도 전주(錢主)인 연기금이 앞장서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류 대표는 그동안 화석연료 기반 경제의 성공 신화에서 벗어나 사고방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산업화 시대에 한국 경제를 일으켰던 과거의 문법을 버리고 ESG라는 새로운 성공방정식을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류 대표는 "에너지를 많이 쓰는 중후장대(重厚長大) 산업을 기반으로 하는 우리나라는 탄소중립 시대에 상당히 불리하다"면서도 "해방 이후 서구를 따라 고속성장에 성공한 만큼 이제 시작 단계인 ESG 역시 빨리 받아들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MZ세대(밀레니엄 세대와 Z세대의 합성어)의 출현 역시 변화를 이끌어갈 주요한 동력이라고 했다.
지금 ESG는 전 세계를 뒤흔드는 가장 뜨거운 주제지만, 여전히 ESG에 익숙하지 않거나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들을 위해 ESG를 한 문장으로 정리해달라고 요청하자 류 대표는 'Making more money by doing good'이라고 대답했다.
현 세대뿐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투자를 하면서도 기존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의미다. 두 딸을 둔 류 대표가 인생 2막을 ESG로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류 대표는 "그동안 현세대의 이익만을 위해 투자한 결과 환경이 훼손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 세대는 느낄 것"이라며 "우리 아들딸들을 생각하면서도 돈을 더 잘 버는, 두 마리 토끼를 쫓는 것이 바로 ESG"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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