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불붙인 원격의료… 세계는 뛰는데 한국은 잠잠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2021. 5. 17.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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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중의 아웃룩]
스마트폰으로 심전도 재고, 천식·당뇨도 원격 모니터링 시대
세계 원격의료 시장, 연 25%씩 커져 2027년 627조원 규모로
한국은 규제에 ‘발목’… “안전성 높이고 활성화 방안 마련할 때”

심장병 진료를 받으러 온 환자가 가방에서 종이 한 뭉치를 꺼내 의사에게 내려놓는다. 스마트폰으로 측정한 자신의 심전도 데이터를 출력하여 가지고 온 것이다. 심전도 기록이 빼곡하다. 가슴이 두근거릴 때마다 스마트폰으로 심전도를 찍었으니, 자신에게 부정맥은 없는지 해석해 달라는 요구다. 최근 대학병원 심장내과 진료실 풍경이다.

◇의료 규제 풀었더니 심장병 진단 기여

요즘 스마트폰으로 심전도를 재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지난해부터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스마트폰 심전도 측정을 의료기기로 승인한 이후다. 현재 애플과 삼성 갤럭시 워치뿐만 아니라, 다양한 시계형 웨어러블 장치로 심전도 측정이 가능하다. 그렇게 찍은 심전도 데이터는 스마트폰 앱과 연동돼 기록된다. 알람 기능을 통해 왼쪽 심방이 ‘파르르~’ 떠는 심방세동 발생 경고도 받을 수 있다. 이는 좌심방에서 정상적인 박동이 이뤄지지 못하는 상태다. 뇌경색의 주요 원인이다.

웨어러블 심전도의 부정맥 진단 효과는 심장학계에서도 인정하고 있다. 애플 워치가 부정맥으로 판단됐던 사람의 34%에서 실제 심방세동으로 진단됐다는 조사가 나왔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심장내과 연구팀은 심장시술을 받은 환자 50명을 대상으로 애플 워치를 채우고 경과를 살폈다. 그 결과, 25명에게서 한 번 이상의 심방세동을 스마트폰이 잡아냈다. 심장내과 전문의가 스마트폰 심전도를 판독한 결과, 24명에게서 최종 심방세동 발생을 확인했다. 스마트폰을 심장 시술 후 효과 모니터링용으로 쓸 수 있다는 의미다.

최기준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간단한 방법으로 심방세동 진단율을 높이고, 이를 통해 항응고제 같은 치료제 효율을 올릴 수 있다”며 “규제를 풀어주니 웨어러블 장치 활용이 늘면서 실제로 환자의 질병 관리에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안과 환자가 원격진료를통해 검진을 받는 모습./한국U헬스협회제공

◇쏟아지는 24시간 원격 모니터링 기기

가정주부 60세 배모씨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반복적인 실신으로 고생했다. 병원에 와서 검사를 받으면 정상이었고, 심전도도 멀쩡했다. 정신질환으로 오인받기도 했다. 이에 의료진은 최씨에게 실시간으로 정밀 심전도를 측정할 수 있는 기기를 몸 안에 심었다. 거기서 반복적 실신에 대한 중요한 단서가 잡혔다. 심장 박동이 잠시 멈추는 이른바 ‘포즈 에피소드(pause episode)’가 수시로 발견된 것이다. 이런 경우 심장 피가 뇌 쪽으로 돌지 않아 실신할 수 있다. 24시간 원격 모니터링이 배씨 생명을 건진 셈이다.

환자 몸에 붙이거나 몸 안에 심어서 지속적으로 데이터를 얻고 환자에게 필요한 조치를 원격으로 취하는 의료기기들이 활발히 도입되고 있다. 심전도를 심장 주변 피부 안에 심거나, 심장 박동기를 심장 옆에 심어서 부정맥을 감지하고 치료 목적의 전기 충격도 쏠 수도 있다.

이는 증상이 있을 때마다 병원에 직접 방문해서 검사를 받는 전통적인 방식을 바꿔 놓고 있다. 집에서 자면서도 측정된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병원으로 보내질 수 있기에 즉각적인 조치가 가능하다. 이 같은 원격 모니터링은 부정맥뿐만 아니라, 만성 신부전증을 앓는 환자들이 복막 투석을 받는 경우, 천식 등 호흡기 질환, 수면무호흡증, 당뇨병 혈당 관리, 신경계 정신질환까지 적용된다. 웨어러블 장비 형태도 스마트폰, 붙이는 패치, 반지, 안경, 헤어밴드, 목걸이, 조끼 등 다양해지고 있다.

하지만 국내서는 원격 모니터링만 가능하지, 원격으로 처방을 바꾸거나, 기기에 조치를 가하는 행위는 원격 진료에 해당돼 하지 못 하고 있다. 해당 환자는 병원에 나와야 한다. 선진국서 100% 활용되는 기술이 우리나라 환자에게 소외된다. 코로나 사태로 비대면 전화 진료만 한시적으로 허용되고 있을 뿐이다.

심재민 고려대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원격 모니터링과 진료가 활성화되면 환자들의 응급실, 외래 방문을 줄이고, 입원 빈도도 감소시킬 수 있다”며 “병원과 먼 곳에 사는 환자들 삶의 질도 좋아지고, 궁극적으로 의료비도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 원격의료 시장 급성장

우리나라가 규제에 묶여 원격의료 갈라파고스섬이 돼가는 사이, 전 세계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비대면 진료가 활성화되면서 원격의료가 급속히 팽창하고 있다. 글로벌 원격의료 시장은 2019년 614억달러(약 69조원)에서 2027년 5595억2000만달러(약 627조원)로 성장할 것으로 평가됐다. 각 분야 시장 전망을 내놓는 포천 비즈니스 인사이트는 ‘코로나가 원격의료에 불을 붙였다’고 평하며, 연평균 25%씩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미국 시애틀 어린이병원은 전체 진료의 80%를 비대면 원격으로 했다. 소아 환자의 증상을 스마트폰 동영상으로 찍어 의사에게 보내 진료에 쓰기도 한다. 워싱턴대학병원은 임산부에게 태아 심장음을 청취하는 도플러 기기를 나눠 주고, 집에서 녹음해서 전송시켜 태아 진료에도 쓴다.

미국 정부는 원격과 대면 진료를 같은 치료비로 인정하고, 거주지와 상관없이 연방정부 건강보험서 원격 진료를 지원한다. 중국은 전체 진료의 절반 이상을 원격으로 할 것을 권장하며, 원격의료에 네트워크 요금제를 우대한다. 환자의 의료 정보를 어디서나 접근할 수 있는 클라우딩 시스템도 구축 중이다. 호주 정부는 원격진료 시스템 ‘헬스 다이렉트’를 개발하여 의료기관에 보급하고 있다. 일본은 초진 환자도 원격진료가 가능하고, 건강보험 적용을 받는다. 프랑스는 원격 간호까지 보험서 100% 지원한다. 노르웨이에서는 전국 보건소 의사가 원격진료를 시행한다.

정용 카이스트(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는 “예전에 모든 금융 거래를 은행을 방문하여 진행했으나 이제는 거의 모두 온라인으로 하듯이 상당수 의료도 앞으로 그렇게 될 것”이라며 “원격의료 안전성을 높이고 남용 방지안을 마련해 가면서 환자에게 필요한 원격의료를 활성해 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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