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투 틀고 끌어안은 맥주병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서양인이 이땅에서 찍은 첫 조선인"
상투를 튼 조선인이 맥주병을 한아름 끌어안고 미소 짓는다. 두 팔 아래로는 미국 주간지를 낀 채, 그 위로 담뱃대를 가로질러 들었다. 1871년 미군 함대가 강화도를 무력 침략한 신미양요 당시 미국 군함에 동승한 종군 사진가 펠리체 베아토(1832~1909)가 찍은 사진. 이경민 사진아카이브연구소 대표는 “서양인이 이 땅에서 촬영한 최초의 한국인 사진”이라고 했다.
촬영 일자는 1871년 5월 30일. 베아토는 군함에 오른 조선인 관리들을 찍었는데, 사진 속 남자는 하급 관리인 인천부 아전 김진성이다. 1882년 윌리엄 그리피스가 펴낸 ‘은자의 나라, 한국’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몇몇 조선 사람들이 주저함 없이 갑판에 올랐다. (중략) 그들은 사진을 찍기 위해 갑판 위에 섰는데, 그중 하나는 다 마신 맥주병 10여개를 보스턴 발행 신문에 싸서 안고 있는 것으로, 사진 설명문에 ‘얼마나 흡족한 표정인가, 이 사진을 보라’ 하였다.”
이에 대해 이경민 대표는 “베아토가 서구인이 원하는 시각에 맞춰 의도적으로 연출한 사진”이라고 주장했다. 신미양요 150주년을 기념해 전쟁기념관과 어재연 장군 추모 및 신미양요 기념사업회 공동 주최로 14일 열린 학술 회의에서다.
이 대표는 ‘제국의 렌즈로 본 신미양요-펠리체 베아토의 종군 사진을 중심으로’라는 발표에서 “아무리 하급 관리라 해도 의관(갓과 두루마기)을 제대로 갖추고 갑판에 올랐을 테지만, 상투를 드러내기 위해 일부러 갓을 벗긴 채 촬영한 것”이라며 “조선의 상투는 중국의 변발, 일본의 존마게(일본식 상투)와 함께 동양의 비위생을 대표하는 코드였다. 담뱃대 역시 서양인들에게는 게으름의 상징으로 여겨졌고, 이 사진을 소비할 서구인들에게 문명과 야만, 근대와 전근대의 대비가 일어나면서 문명화에 대한 사명감을 고취하려는 의도가 배어 있었던 것”이라고 해석했다. 비위생적이고 게으른 조선인이 미 해군이 버린 빈 맥주병과 영자 신문을 주워 들고 좋아하는 모습을 대비해 서양이 우위에 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인 사진이라는 것이다. 이 대표는 “베아토가 발견한 상투와 긴 담뱃대는 개항기를 거쳐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조선인 남성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반복 표상되었다”고 덧붙였다.
베아토는 신미양요의 전 과정을 사진으로 담았고, 시간대별로 편집해 47장의 사진첩으로 펴냈다. 이 대표는 “사진이라는 근대적 매체가 제국주의에 어떻게 봉사해 왔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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