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1297] 하동의 정안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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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안산성(鄭晏山城)에 가 보셨습니까? 산성에 올라가보면 아주 풍광도 좋고 명당인 것 같습니다. 옛날 사람들이 산성 터도 아무 데나 잡은 게 아닌 것 같아요.”
하동에 사는 지인이 자랑하는 ‘풍광이 좋고 명당’이라는 말이 나를 유혹하였다. 이 세상 살면서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게 아름다운 풍광을 많이 보고 명당에 많이 가서 정기를 받는 일이다. 나는 여기에다 우선순위를 두는 인생관이다. 해발 450m. 8부 능선까지는 자동차가 올라갈 수 있었고 나머지는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가야만 하였다.
산성 꼭대기는 정안봉(鄭晏峯)이라고 쓰여진 자그마한 돌비석이 서 있다. 북쪽으로는 어떤 봉우리가 보이는가? 지리산 천왕봉이 보였다. 웅장한 천왕봉뿐만 아니라 1000m가 넘는 지리산 고봉들이 첩첩으로 서 있는 모습들이 바라다보인다. 인공 구조물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지리산의 봉우리들을 바라본다는 게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든다. 이런 풍광을 자주 보는 사람은 복 받은 사람이다.
남쪽에는 남해 바다가 보인다. 섬 사이에 둘러싸인 남해 바다의 관음포와 고현포가 마치 호수처럼 보인다. 서쪽으로는 광양의 백운산이 서 있다. 조선 풍수의 창시자 도선국사가 인생 후반부에 살았던 암자가 바로 이 백운산 밑에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백운산 정상을 바라다 보았다. 남동쪽 방향에는 금오산이 코앞에 보인다. 이 금오산 정상에 가면 남해 바다의 전망이 그렇게 좋다는데 나는 아직 금오산에 가보지 못해서 아쉽다.
정안은 고려 무인 정권 시대의 인물이다. 최고권력자 최이(崔怡)의 처남이었다. 정안은 일급 인물이었다. 학문도 깊고, 풍류도 있고, 재력도 있었다. 당시 불교계의 고승이었던 송광사의 진각혜심, 그리고 삼국유사의 저자인 일연(1206~1289) 스님과도 상당히 깊은 인간관계였다. 송광사의 보조 지눌에 이어 국사가 된 진각혜심(1178~1234)은 보통 승려가 아니었다. 한번 참선을 하면 겨울에 눈이 무릎까지 쌓이더라도 이를 의식하지 못하고 좌선 삼매에 들어갔다는 일화가 전해지는 고승이다. 일연도 후원했던 것 같다. 그가 평소 교류했던 인물들의 수준을 보면 그 사람의 급수를 알 수 있다.
‘정안봉’ ‘정안산성’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이면 정안이 자기 재산을 들여서 이 산성을 축조했다는 의미이다. 유사시에는 하동의 군사 방어시설로도 기능하고 평화 시에는 산성에다 집을 짓고 살면서 봉우리 주변의 이 장엄한 풍광을 즐기지 않았는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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