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발언대]김학의 사건의 '본질'이 사라지고 있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 2021. 5. 17.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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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김학의 사건’을 진짜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은폐되고 있다. 2013년 김학의 성폭력 사건이 알려진 이후 줄곧 드는 생각은 ‘검찰 참 대단하다’이다. 가해자와 조직을 보위하기 위해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철저히 배제하고 활용할 수 있는 모든 권력과 수단을 동원하는 검찰을 보면 ‘대단하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

2020년 11월6일, 검찰은 37개 여성단체가 고발한 김학의 성폭력 사건 수사 부실 은폐 책임자들의 직권남용, 허위공문서 작성에 대해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혐의 없음’을 통지했다. 2019년 12월18일 여성단체들은 김학의와 윤중천을 성폭력 혐의로 재고발하면서 동시에 수사권을 남용하여 김학의·윤중천에 대한 수사를 방해하고 사건을 축소·은폐한 검찰을 직권남용죄로 고발했다. 2020년 7월에는 검찰이 피해자의 진술조서와 다르게 불기소처분 이유서를 작성한 것에 대해 허위공문서 작성으로 추가 고발장도 제출했다. 그런데 1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 공소시효 만료일을, 주말을 제외하고 단 이틀 남겨두고 검찰이 내놓은 결론은 역시나 불기소였다. 이 기막힌 결과를 받은 다음 접하게 된 소식이 지금 한창 시끄러운 ‘김학의 출국금지 사건’이다.

2018년 4월, 7월, 8월6일, 11월9일, 12월7일…. 2019년 3월15일, 5월22일, 5월24일, 5월30일, 6월4일, 6월11일, 7월5일, 7월26일, 8월9일, 12월18일….

이 날짜들은 여성단체들이 피해자와 함께 성명서, 기자회견 등을 통해 김학의 성폭력 사건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한 날들 중 일부를 기록한 것이다. 진상조사단이 김학의를 소환해 조사한다는 날도, 1033개 단체가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 활동 종료 시한이 얼마 남지 않은 당시까지 의혹들만 계속 불거져 나올 뿐 아무것도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는 상황을 규탄하며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당일 김학의는 소환에 응하지 않았고 7일 후 몰래 출국을 시도하다 실패했다.

김학의 성폭력 사건은 2013년 경찰이 동영상 증거를 확보하고 김학의에 대한 출국금지, 체포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이 기각해 조사를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사건이다. 2014년 피해자들이 나서 고소했지만 역시 검찰이 무혐의 처분으로 2013년에 이어 사건을 덮은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2017년 말 검찰의 과거 인권침해, 검찰권 남용 의혹 등이 제기된 사건들을 조사하고 유사 사례 재발 방지와 피해 회복을 위해 출범한 검찰과거사위의 대상 사건에 포함시켜 다시 조사했지만, 결국 공소시효 등을 핑계로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김학의 성폭력 사건은 과정마다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한 발짝도 나가지 않은, ‘검찰 참 대단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한 사건이다. 그런데 갑자기 사건의 본질이 사라지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있다. 실제 책임질 사람들이 또다시 은폐되고 있다. 이를 보는 피해자의 심정이 어떨지 정말 가슴이 저리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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