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전문가 3人, 고교학점제를 논하다] "고교학점제 안착하려면 입시제도 바뀌어야, 교원·학습 공간 확보가 최우선 과제"

신영경 조선에듀 기자 2021. 5. 17.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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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대전환을 맞이할 날이 멀지 않았다. 고교학점제가 전국 고등학교에 도입되는 2025년이 그 기점이다. 이때부터 학교의 모습이 크게 달라지고, 교육체제의 환골탈태가 이뤄지게 된다. 고교학점제는 고등학생이 진로와 적성에 따라 원하는 과목을 골라 듣고 기준 학점을 취득하면 졸업하는 제도다. 그러나 제도 시행에 앞서 해결해야 할 과제도 산적해 있다. 이에 교육계 전문가들이 고교학점제를 주제로 한자리에 마주 앉았다. 본지는 특별 좌담회를 열고 유기홍 국회교육위원장, 하윤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성기선 전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원장과 함께 고교학점제 현장 안착을 위한 과제를 짚어봤다.

유기홍 국회교육위원장

참석자들이 가장 먼저 강조한 것은 바로 ‘입시제도 개편’이다. 기존의 오지선다형 수능 체제가 아닌 ‘미래형 입시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고교에서 수업 운영 방식이 변화하더라도 이것이 대입에 반영되지 않으면 또 문제풀이식 교육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정부도 고교학점제와 맞물려 2028학년도 대입에 논서술형 평가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유 위원장은 “학생 개개인의 진로와 적성을 존중한다는 고교학점제의 취지에 맞게 미래형 대입제도가 뒤따라야 한다”며 “일률적인 수능 문제로 학생을 평가할 것이 아니라 선택과목에 맞는 역량·창의성을 검증하기 위한 방식으로 논서술형 평가가 진지하게 논의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윤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

좌담회에서는 이상적인 평가 방식으로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논술형 대입자격시험) 사례가 거론됐다. 일정 점수를 기준으로 합격, 불합격을 나누는 ‘자격고사화’를 통해 대학에서 공부할 능력이 되는지를 검증하는 방향으로 입시가 개편돼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하지만 이 같은 사례가 국내 교육 현장에 그대로 적용되긴 어렵다고 예측했다. 프랑스의 경우 대학들이 서열화 없이 모두 평준화돼 있다는 점이 우리와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하 회장은 “대부분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학습의 목표인 상황에서 무턱대고 수능이 자격고사화되면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성기선 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

그럼에도 수능이 지금과는 전혀 달라야 한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었다. 성 전 원장은 “수능은 학생들이 교육과정을 잘 이행했는지 평가하는 역할만 맡아야 한다”면서 “이와 함께 대학들의 학생 선발 자율권을 키워 진로와 적성에 맞게 노력한 학생들을 대학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선발하도록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밝혔다.

수능 개편뿐만 아니라 내신 성취평가제(절대평가) 적용 문제도 숙제다. 하 회장은 “정부가 고 1을 제외한 나머지 학년에 대해 절대평가를 도입한다고 밝힌 상황”이라며 “학생 변별력 확보나 내신 성적 부풀리기와 같은 부작용을 막을 수 있는 장치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유 위원장은 “지금은 학교알리미를 통해 각 학교의 성적 산출 결과가 공개되기 때문에 내신 부풀리기 현상을 억제할 수 있다”며 “성취평가제 방식의 경우 교사가 임의로 성적을 부여해서는 안 되고, ‘과목마다 도달해야 할 성취 수준’이 합당하게 정해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고교학점제의 긍정적 취지를 살리기 위해선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일각에서는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면 지역별·학교별 격차와 사교육 문제가 심화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유 위원장은 “상대적으로 교육 여건이 열악한 농산어촌 학교에 더 특별한 배려가 필요한 건 사실”이라면서도 “고교학점제가 지역 공동체 내 작은 학교 살리기의 방편이 될 수 있다”는 견해를 내비쳤다.

사교육 문제에 대한 현장의 의견도 엇갈린다. 고교학점제가 사교육을 억제할 것이란 기대와 오히려 사교육의 수요가 커질 것이란 우려가 공존하는 상황이다. 성 전 원장은 “어떤 측면에서는 심화과목을 더 듣기 위해 사교육에 의존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겠지만, 전반적으로는 학부모들의 사교육 부담이 완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학생들이 학교에서 다양한 수업과 체험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적어도 지금처럼 국영수 중심의 사교육이 끼어들지는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 위원장은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의 선택권을 존중하면서 유연하게 과목을 개설하고 가르칠 수 있는 제도”라며 “아직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중이라서 공간이 많지만 충분한 가능성을 지닌 제도”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빈 공간을 채우는 건 정부와 국회의 역할이지만, 교원단체와 전문가의 의견이 중요하다”며 “교육계 전체 역량이 모아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장은주 기자

특히 좌담회 참석자들은 교육 인프라 확충 정책에 깊이 공감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 회장은 “최근 발표된 한국교육개발원 보고서에서도 교원 확보가 고교학점제 도입의 최우선 과제로 꼽혔다”며 “학생들이 희망하는 교과목을 제공하면서 수업의 질을 관리하는 학점제 취지를 달성하려면 지금보다 8800여 명의 교사가 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학습 공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대규모 교실 신·증축이 불가피한 상황인 만큼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다”며 “교육 여건을 개선하는 일을 정부가 학교 현실을 외면한 채 과속하거나 일방적으로 추진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고교학점제의 취지를 잘 살리기 위해선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학생 수가 줄어든다고 해서 단순히 교원과 교육 예산을 줄여야 한다는 태도는 지양해야 합니다.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면 교육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도 큰 변화가 불가피합니다. 중요한 것은 정부와 관련 기관, 교육 현장의 긴밀한 협력체제가 구축돼야 하며 고교학점제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해야 합니다. 학생들의 역량을 키우면서 정책이 잘 시행될 수 있도록 정부가 지금보다 더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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