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석의 건강 칼럼] 오랜 연구와 준비가 쌓여.. 결실은 불현듯 찾아온다
필자는 태어나면서부터 편도선염을 천형(天刑)처럼 지니고 있었다. 한의사가 되고 나서도 수시로 부어오르는 편도선 때문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이를 치료하기 위한 처방 개발과 연구에 10여 년간 온 힘을 기울인 끝에 비로소 처방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처방은 편도선염뿐만 아니라 심한 감기에도 잘 들었다.
처방을 완성한 지 2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운명의 순간이 찾아왔다. 아주 심한 비염을 앓고 있는 한 여중생이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한의원을 찾아왔다. 모든 생활이 불편해 안 가본 병원이 없었지만, 치료가 되지 않아 큰 고통을 겪고 있었다. 이야기를 듣자마자 처음에는 한방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비염약인 소청룡탕(小靑龍湯)을 처방하려고 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비염도 감기에서 발병해 고질병이 되어버리는 호흡기 질환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심한 감기에 잘 듣는 처방이 비염에는 듣지 말라는 법이 있겠는가. 실제로 감기와 비염은 사촌지간이다. 감기는 전염성이 있으며 열이 나고, 비염은 열이 없으며 전염성이 없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약 처방 후 사흘이 지난 아침 출근길에 나를 깜짝 놀라게 한 사람이 있었다. 그 여중생의 아버지가 병원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사무실로 들어온 그 아버지는 내 손을 붙잡으며 하염없이 감사 인사를 전했다. 알고 보니 그 여중생이 내 약을 먹은 지 사흘 만에 호전 반응을 보인 것이다.
필자의 처방으로 비염에 호전 반응이 오는 경우는 세 그룹이 있다. 호전 반응이 가장 빠른 상위 그룹은 그 효과가 한 달 이내로 나타난다. 아주 빠른 사람은 일주일 이내에도 반응이 온다. 전체 환자의 15% 정도가 여기에 속한다. 그다음 중위 그룹은 통상 3개월을 복용해야 호전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가장 많은 70%의 환자가 여기에 속한다. 마지막 하위 그룹은 3개월 이상을 복용해야 반응이 온다. 최장 1년 이상 복용해야 반응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이 그룹은 전체 환자의 20%를 차지한다. 이러한 데이터는 수많은 환자의 임상 사례가 쌓이면서 밝혀진 것이기 때문에 당시에는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만약 그 여중생이 통상적인 상위 그룹에만 속했어도 최소 1개월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이 약도 아니구나’ 하면서 약의 복용을 중단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정말 놀랍게도 가장 빠른 호전 반응을 보여서 사흘 만에 효과가 나타났다. 그 아버지도 비염을 앓던 사람이어서 처방의 효능에 대한 입증이 신속하게 이뤄졌다. 편강의학이 세상으로 나서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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