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종 불문 월 소득 일률 적용..학습지 교사 등에겐 여전히 '높은 문턱'
사각지대 얼마나 줄일까
[경향신문]
허이재씨는 강원도의 버스회사에 소속된 지입 전세버스 운전자다. 지입 전세버스는 ‘자영업자와 임금노동자’ 경계에 있는 대표적 업종이다. 차 할부값은 자신이 내지만 차량 명의는 회사에 있고, 일감은 회사에서 받으면서 임금은 회사가 아닌 계약 상대방이 지급한다. 전국 3만5000명 전세버스 운전자 중 이 같은 지입 기사는 60%가 넘지만, 이들은 아직 고용보험 대상이 아니다. 허씨는 “평일 야유회, 주말 결혼식 일정이 코로나19 이후 거의 사라지면서 수입이 반토막 났고, 일을 그만둔 동료가 많다”며 “보험료를 전적으로 개인이 부담해 보험에 가입된 경우가 아니라면 지입 운전자들은 일을 그만둬도 구직급여를 받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 여전히 ‘종사자’ 성격 중시
전 국민 고용보험 로드맵에 따라
보험설계사·방문판매원 등에 적용
여전히 사업장 종속성 따져 가입
다양한 근로 형태 아우르기 한계
정부의 ‘2025년 전 국민 고용보험 가입’ 로드맵에 따라 오는 7월부터 기존에 고용보험 미적용 대상이었던 보험설계사, 학습지노동자, 방문판매원 등 일부 특수고용노동자(특고)는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된다.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은 7월 시행을 앞두고 일용근로자, 인적용역형 사업자 등에 대한 실시간 소득 파악 시스템을 정비 중이다. 사업자가 특고의 소득을 월 단위로 제출하고 보험 가입을 신청하면 향후 이 소득을 기준으로 구직급여가 산정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관련 시행령 개정안이 의결된 지난달 27일 국무회의에서 새로운 고용보험 체계를 두고 “(고용보험을) 소득 기반으로 전환하려는 노력”이라고 평가했다.
현 제도는 ‘소득기반’ 고용보험과는 아직 거리가 멀다. 정부가 고용보험 가입 시 ‘종사자’인지 여부를 따지기 때문에 사각지대 업종이 발생해왔다. 정부는 피보험자격 신고 및 관리 책임, 보험료 분담 납부 책임, 소득 신고를 모두 고용주에 둔 기존 임금근로자 보험 기준을 특고 등에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누가 사업주이고 종사자인지 애매한 업종일수록 현행 고용보험 체계에 편입되기가 까다롭다. 7월에 고용보험 가입 적용이 되지 않는 전세버스·셔틀버스운전사, 화물차주 등은 올해 실태조사를 거쳐 내년 하반기쯤 고용보험 적용 여부가 결정된다.
고용노동부는 실태조사에서 ‘사업주-종사자’ 관계를 전제로 노무 제공 대가가 이뤄지는지 여부를 살필 예정이다. 홍민기 한국노동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정부는 여전히 고용보험 가입 시 사업장에 대한 종속성을 따지기 때문에 다양한 근로 형태를 고용보험에 전부 포괄하기에는 어려운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 영세사업자들, 신청 기피 우려도
사업주가 신청, 가입률 저조 우려
월 소득 파악 즉시 원천징수해야
기준 80만원 안 되는 직종도 많아
고용보험 가입을 당사자가 아닌 사업주가 맡으면서 고용보험 가입률이 저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고용보험료(1.4%)는 고용주와 절반씩 부담하기 때문에 월 200만원을 버는 사람 기준 1만4000원만 내면 된다. 개별 노동자 입장에선 크지 않은 금액이지만 영세사업자는 다르다. 노동자 여러명의 보험료가 합산되는 데다가 고용보험뿐 아니라 국민연금·건강보험까지 연계돼 가입되는 상황을 우려하며 보험 가입을 꺼릴 수 있다. 기존 고용보험 가입 대상이었던 임금근로 사업장 중에서도 이런 사례는 흔했다.
서울 종로의 보석세공사인 김정봉씨는 “4대 보험에 가입해달라고 해도 사업주가 ‘안 된다, 기다리라’며 거부한다. 업계에서 4대 보험 가입은 10명 중 2명꼴에 그친다”고 말했다. 정부는 영세사업자와 노동자에게 고용보험 및 국민연금 보험료를 지원하는 두루누리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대상이 제한적이다. 올해 고용보험 가입 대상은 크게 늘어나지만 두루누리 사업 예산은 지난해보다 32.9% 줄었다.
전문가들은 종사자 지위를 묻지 말고, 벌어들인 소득만을 기준으로 고용보험에 자동 가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최현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국세청이 월별 단위로 소득을 파악하는 즉시 고용보험료를 원천징수해야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소득 기준으로 바뀌면, 기존에 특정 근로자의 임금 수준을 기반으로 보험료 절반을 부담했던 고용주의 보험료 기여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지난해 보고서에서 전체 사업장 매출이나 이윤에 비례해서 고용주가 보험료를 내는 방식을 제안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업종이 아닌 소득 종류별로 소득을 파악하는 세법상으로는 향후 새로운 유형의 특고가 고용보험에 추가되는 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대신 보험료 분납 방법 등 달라지는 보험 설계는 노동부가 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소득 기반의 고용보험 관리 체계로 전환하는 것은 궁극적 목표”라며 “일단 내년까지는 현행 체계 안에 적용할 수 있는 가입 대상을 최대한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 가입 기준 ‘80만원’
한편 7월 고용보험이 적용되는 일부 업종에서는 가입 기준인 ‘월소득 80만원’(경비 제외)을 놓고 불만이 나온다. 업종별 소득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액수를 정한 것이 문제다. 울산 학습지 교사 A씨는 “가뜩이나 코로나19로 가정방문이 어려워지고 수업이 줄어든 상황에서 학습지 교사는 늘어나 개인 수입이 줄었다”며 “경비율을 포함하면 월 110만원을 벌어야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데 지금으로썬 기준에 못 미친다”고 말했다. 보험설계사 중에서도 월 소득이 평균 80만원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할 것으로 추산된다. 국세통계연보를 보면 2019년 연말정산 소득신고 기준 전체 보험설계사 50만명 중 43.4%가 연소득 500만원 이하에 속한다.
윤지원 기자 yj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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