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툰베리'들이 묻는다, 불타는 집을 바라만 보고 있나요?
툰베리가 불붙인 '기후행동' 106개국 청소년 연대
SNS 시위에 학교 파업까지..'기후투사'가 된 그들
기후운동은 환경운동과 다르다. 기후변화라는 압도적 힘에 대응하려면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 산업과 금융의 선제적 대응이 뒷받침돼야 한다.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잘 타고 넘을 수 있도록 노동과 복지정책 전환도 필요하다. 이미 삶의 변화를 알아챈 예술가들은 기후위기 시대를 노래하고 글을 쓰고 있다. 기후운동은 강력한 사회변혁 운동이다.
세계 각지에서 기후운동을 ‘하드캐리’ 하는 이들은 기후위기를 직면하게 될 미래세대들이다. 이들은 “지금 기후위기에 맞서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는 절박함으로 거리에서, 에스엔에스(SNS)에서 기성세대를 향해 시위하고 있다.
기후위기에 맞서는 청소년들은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18)만이 아니다. 2018년 8월 툰베리가 스웨덴 의회 앞에서 ‘기후를 위한 학교 파업’ 팻말 한 장을 들고 시위를 시작한 뒤 전세계 청소년들의 마음에도 불을 붙였다. 툰베리의 학교 파업은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전세계로 퍼졌고, 2019년 3월15일 90여개 나라에서 청소년 수천명이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 for Future) 캠페인에 동참하며 공동시위에 나섰다.
현재 미래를 위한 금요일에는 미국, 인도, 러시아, 우간다, 오스트레일리아(호주), 한국 등 106개 나라 청소년 기후활동가들이 연대하고 있다. 2019년에는 국제앰네스티 양심대사상을 받기도 했다. 올해 하반기 글로벌 공동 기후행동을 진행하기 위해 온라인으로 정기적 회의를 하고 있다.
기후변화에서 기후위기로 취재·보도 중심을 옮긴 <한겨레>는 창간 33주년을 맞아 세계 각지 기후세대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미래를 위한 금요일 등 세계 청소년 기후활동가들과 연결돼 있는 한국 청소년기후행동 에스엔에스를 통해 각 나라에서 활동하는 기후세대를 인터뷰했다. 그들은 자신들과 함께할 준비가 되었는지 우리에게 묻고 있다. / 기후변화팀 climate@hani.co.kr
방글라데시 22살, 파르자나 파루크 주무
“이대로 가면 미래는 없다”
“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기후에 취약한 나라 중 하나로서, 기후변화가 우리의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파르자나 파루크 주무(22)는 최근 자신이 가장 집중하고 있는 일을 이렇게 소개했다. 파르자나는 방글라데시에 사는 청년 기후운동가다. 그는 지난해 7월 트위터 첫 게시물로 “플라스틱을 덜 쓰자”(Let’s use less plastic)고 독려하는 사진을 올린 뒤, 현재까지 온·오프라인 시위와 국제 연대, 학교 파업 등의 기후운동을 해왔다.
파르자나는 조국인 방글라데시 자연이 기후변화로 망가져가는 것을 보며 운동에 나섰다고 한다. “어렸을 때 우리나라가 6개의 계절을 가진 유일한 나라라고 배웠다. 그 계절의 차이가 정말 아름다웠는데, 최근 1년간 그 차이를 보지 못했다. 주된 이유는 기후변화였다.”
그의 말처럼 방글라데시는 여름, 우기, 가을, 늦가을, 겨울, 봄을 가진 6계절의 땅(사다르투)이라고 불렸다. 기후위기로 다채로운 계절이 흐릿해져간다.
나아가 극한 기상현상은 방글라데시 생활환경을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특히 지난해 여름엔 22년 만에 닥친 최장 기간 홍수로 국토의 3분의 1이 침수되기도 했다. 파르자나는 “지금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는 위기감을 느낀다.
파르자나는 세계 지도자들이 기후위기 대응과 기후정의 실현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했다. “탄소배출에 전적으로 책임 있는 회사들에 탄소세를 부과해야 한다. 기후정책에 경제적, 인종적, 성별의 정의가 필요하다.” /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말레이시아 13살, 파라흐 마흐무드
“지도자들은 공허한 약속뿐”
“그들이 하는 것은 큰 회의에서 공허한 약속을 한 다음에 늘 하던 대로 되돌아가는 것이 전부예요.”
말레이시아에서 활동하는 파라흐 마흐무드(13)는 전세계 정부와 지도자들이 어떤 변화를 이끌었냐는 질문에 “아무것도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라크 출신 부모를 둔 마흐무드는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나 자랐다. 세계자원연구소(WRI) 집계를 보면, 말레이시아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8년 기준 3억8811만t이다. 순위로 보면 세계 22위로 상위권에 속하지만,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돼 기후변화 문제에는 피해자라는 인식이 강한 나라다.
그런 환경 속에서 13살인 그가 기후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은 단 하나뿐인 지구가 기후변화 때문에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기 때문이다. “적어도 극한적인 기후재난만은 없는 미래를 위해서도 기후행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시스템 전환이 필요하다.”
이런 생각을 확산시키기 위해 그는 학교에서 기후변화를 주제로 ‘기후 카니발’을 조직하고, 트위터를 통해 주변 사람들이 기후위기를 더 잘 이해하게 만드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기후위기에 주의하지 않는 지도자들 손에 달려 있는 것은 우리들의 미래다. 청소년들이 그들에 맞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후운동을 펼칠수록 기후위기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 그는, 기후위기를 ‘공부’하는 데도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고 했다. /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캐나다 16살, 모하브 셰리프
“기회의 창 닫히기 전 행동을”
캐나다 청소년 모하브 셰리프(16)가 세계 지도자들에게 일관되게 요구하는 것은 더는 지체되지 않는 기후위기 대응이다.
그는 에스엔에스(SNS)에서 스스로를 무슬림이자 16살인 기후운동가라고 소개했다. 지난해 7월부터 열대우림 파괴와 해수면 상승, 기온 상승 문제를 지적하는 에스엔에스 게시글을 올리며 온라인 기후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셰리프는 “과학은 화석연료 산업은 중단돼야 하며 즉각적인 배출 감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세계 정상들은 기회의 창이 매우 빠르게 닫히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기후운동에 뛰어든 이유 역시 더는 기후위기가 해결되길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셰리프는 “위기의 최전선에 서 있는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으로서 세계 정상들이 한 공허한 약속을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전했다. 그는 또 “청년은 미래이자 위기를 직접 경험하는 이들이기 때문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셰리프의 말처럼, 그의 터전인 캐나다도 기후변화로 극단적인 기후를 경험하고 있다. 2019년 나온 캐나다 기후변화 리포트(CCCR)에 따르면, 캐나다 연평균 기온은 1948년 이래로 70년간 1.7도 올라갔다. 또 탄소배출 저감이 ‘중간 수준’ 성과만 달성할 경우, 이번 세기 말 캐나다 서부지역 빙하가 75~96%까지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다. /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호주 14살, 에밀리아 머리티
“온실가스 뿜는 가스발전 그만”
“천연가스 발전도 온실가스를 배출합니다. 스콧 모리슨이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될 만한 일에 공공지출을 하길 원합니다.”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남쪽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에 사는 에밀리아 머리티(14)는 호주 총리인 스콧 모리슨에게 가스발전 개발을 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호주도 한국처럼 ‘기후악당’으로 손꼽혀온 국가다. 지난해 유럽 연구기관이 세계 61개국 ‘기후변화대응지수’ 순위를 따져본 결과 한국이 53위, 호주가 54위였다. 오세아니아 대륙의 대자연으로부터 풍력, 태양광, 양수발전 등 다양한 재생에너지를 활용해 기후위기 대응을 선도할 것 같지만, 호주 연방정부는 가스 개발을 석탄 발전을 대체하는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활용한다. 에스케이(SK) 그룹 자회사인 에스케이이엔에스(E&S)가 호주 북부 해상에 있는 바로사 가스전에서 천연가스를 정제해 액화천연가스(LNG)를 생산하고 있다.
기후운동가들의 전투력을 자극하는 호주 정부 덕분에 ‘기후를 위한 학교 파업’(School Strike For Climate)에서 활동하는 그의 일상은 바삐 돌아간다. 인스타그램과 트위터에 글을 적으며 기후 파업을 조직하고, 성인 노동자들이 가입한 노동조합에도 기후 파업 지지를 요청하며 연대를 이끌어냈다. 그는 오는 21일 호주 주요 도시에서의 기후 파업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와 동료들은 호주 정부를 향해 “가스가 아닌 우리의 미래에 투자하라”고 주장한다.
그는 제트(Z) 세대 기후운동가답게 지지 않았다.
“나의 아이들이 싸우지 않아도 될 미래를 넘겨주고 싶어요. 이전 세대는 기후변화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우리를 어둠 속에 남겨두었어요. 나보다 뒤에 오는 사람들이 나와 같은 싸움을 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 청소년들이 투표를 하지 못한다 해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더 크게 목소리를 낼 수 있어요.” /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덴마크 15살, 마리루이세 스폰스
“대기업에 탄소세를 물려라”
덴마크 기후운동가 마리루이세 스폰스(15)는 “우리 모두에게 기후정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기후변화에 영향을 받는 것은 우리 청소년들일 것이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기후정의를 바라고 필요로 하는 이유”라 했다.
스폰스가 미래를 위한 금요일(FFF)에 참여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는 지난달 사회관계망서비스에 “나는 15살이고 8학년으로, 페미니스트이자 기후운동가이다. (덴마크) 리베에 살고 있고, 리베지부의 일원이다. 아직 미래를 위한 금요일이 낯설지만 모임이 개방적이어서 좋다”는 글을 올렸다. 기후운동은 스폰스에게 삶의 태도에 변화를 일으켰다. 그는 “나는 늘 기후위기를 걱정하면서 항상 무력하다고 느껴왔는데, 기후운동에 동참함으로써 내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스폰스의 기후운동은 학교 파업에 참여하고, 인터뷰를 하고, 기후 중요성에 대해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는 일이다. 또 다른 학교를 방문해 기후위기 정보를 알리고 있다. 그는 “기후운동도 하지만 영화를 좋아해 친구들과 극장에 가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고 말했다.
덴마크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1990년 대비 70%까지 줄이고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스폰스는 세계 지도자들과 정부들이 해야 할 일에 대해 “그들은 대기업들에 책임을 물어 이산화탄소를 감축하도록 해야 한다. 또 탄소세를 물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기후위기를 말하는 것이 정치적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것은 정치적인 게 아니라 사람들을 죽이는 위기다. 사람들은 기후재난으로 죽어갈 것이다”라고 했다. /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
한국 17살, 윤현정
“내년 대선은 모든 후보가 기후공약 토론하길”
한국의 환경단체 ‘청소년기후행동’(청기행) 활동가 윤현정(17)양은 지난해를 매우 알차게 보냈다. 윤 양 등 19명의 청소년은 지난해 3월 헌법재판소에 한국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기후위기에 대응하지 않는 것은 기본권 침해이기 때문에 기존의 기후위기 대응법인 저탄소녹색성장법은 위헌이라고 헌법소원을 했다. 청소년과 정부 양쪽 모두 의견서를 제출했고 공개변론을 요구한 상황이다. 헌재는 유사한 외국 소송을 참고해 심리 중이다.
윤 양은 이후 <한겨레>와 <조선일보> 등 여러 언론과 인터뷰를 하며 청기행 활동을 알렸고, 10월에는 20여명의 국회의원들에게 기후위기 대응에 나설 것을 요구하는 ‘행운의 편지’도 썼고, 11월말에는 기후운동단체가 마련한 ‘기후위기 증언대회’에 참석해 미래가 불안한 청소년들을 대표해 발언을 했다.
청소년 150여 명이 활동 중인 청기행은 기존의 투쟁 일변도의 환경운동을 새롭게 바꾸는 역할도 하고 있다. 지난달 미국 주도의 기후정상회의에서 다른 나라들이 일제히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상향한다고 발표했지만 한국 정부만 해외 신규 석탄 투자를 중단하겠다는 싱거운 약속만 하자, 다음날 바로 청와대 앞으로 향했다. 학교 폭력을 멈추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손바닥을 앞으로 펴고 ‘멈춰’라고 크게 외치차고 한 교육부의 캠페인을 패러디해 정부를 비판한 포스터는 엠제트(MZ)세대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린 온실가스 감축 상향 촉구 글은 20일이 지난 지금도 1천명 수준의 응답만을 기록하고 있지만, 청기행은 지치지 않는다. 이달 중에 당근 퍼포먼스를 진행할 예정이다. ‘부정한 일을 겪으면 당근을 흔든다’는 당근밈을 이용한 퍼포먼스다. 시민들의 성인지 감수성 늘리는 인권운동이 수년간 이어져왔듯이 기후위기 문제를 이해하는 시민들과 국회의원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 기후 문해력 높이기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고, 다음달에 개봉하는 그레타 툰베리의 다큐멘터리를 교육 콘텐츠로 활용하는 활동을 구상 중이다.
윤 양은 “기후위기는 이제 막 시작되는 문제라 젠더·인종차별 등 역사가 깊은 다른 사회 운동보다는 아직 관심이 적다. 누구나 산사태를 겪지 않고 폭염때문에 죽어가지 않기 때문에 나의 문제라고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면서도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다른 사회 운동이 그랬듯 기후세대의 목소리는 더욱 커질 거에요. 내년 대선에서는 모든 후보들의 기후 공약이 토론 주제가 될 거에요.” /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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