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소설가 현기영이 말하는 '순이 삼촌'
현기영/소설가
Q. '순이 삼촌'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이유는?
옆 사람의 피를 묻혀서 그 시체 속에서 일어나는 거예요. 그게 순이 삼촌인데, 그런 사람들뿐만 아니라 4.3에서 살아남은 자는 요즘 말하는 '트라우마'라는 것이 심해요. '가해자가 어떤 사람이고 그 사람들 벌줘야 한다'는 말을 한마디도 못하는 상태니까 병든 사람들이에요. 생존자들은 정신적으로 병든 사람이에요. 트라우마를 앓고 있는 사람들이지요. 그게 순이 삼촌이에요. 사실 그대로죠. 사실 그대로지 4.3의 생존자 중에 특이한 사람을 내가 묘사한 것이 아니에요. 4.3 생존자는 대부분 그런 트라우마를 앓고 있는 거예요.
Q.학살의 주역 '서북청년단'을 등장시킨 이유는?
서북청년단이라고 다 악랄한 건 아니에요. 그중에 선한 사람도 있고. 선한 사람들 골라서 결혼을 한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그 가족은 무사히 살아남은 거죠. 순이 삼촌에 등장하는 그 고모부가 바로 그런 서북청년단이었어요. 그 사람을 통해서 학살자의 입장도 드러내 보였던 거예요.
Q. 제주 풍경에 대한 묘사가 자주 나오는데.
제주도 풍광은 남다른 아름다움을 갖고 있죠. 독특한 풍광을 갖고 있는데, 그것을 묘사해보자는 거예요. 그 아름다운 풍광 뒤에 그늘, 그 배후에 처참한 4.3이란 사건이 존재하지만, 그 비극과 아름다움을 조화시키겠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아요.
Q. 소설의 무대 '북촌리'에서의 취재 과정은 어땠나?
어느 할머니는 내 손 부여잡고 '그 당시 내 아들이 자네 나이였네'하고 울기만 하시는 거예요. 나도 울기만 하고 돌아가고 그랬다가. 내가 울면서 꾸중했어요. 한 젊은 작가가 북촌이 겪었던 대참사를 뭔가 좀 이야기하고 싶어서 찾아왔는데 말씀을 안 하시면, 증언을 안 하시면 나중에 돌아가셔서 저승에서, 하늘에서 가족들을 만날 것이 아닙니까. 가족들 만나서 뭐라고 답변하시겠습니까. '그때 젊은 작가가 왔을 때 그 참상, 그 억울함을 호소했어야 되지 않겠느냐, 근데 왜 말하지 않았느냐'하고 꾸중을 듣고 노여움을 받지 않겠느냐, 이런 식으로 제가 울면서 설득을 했죠. 그래서 겨우 그 얼어붙은 입이 트이면서 말씀을 하시더라고.
Q. '순이 삼촌'이 꿈에도 나왔다던데.
도저히 더 이상 4.3에 대해 쓸 용기도 없고. 쓸 수 없게 되니까 절망하게 되고, 절망하게 되니까, 내 속을 달래기 위해 술을 먹게 되고. 대낮에 술을 먹었죠. 대낮에 술 먹고 집에 쓰러져 있었는데 갑자기 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이 나타난 거예요. 말하자면 백일몽을 꾼 거죠. 그런데 하얀 소복의 여인이 딱 보니까 순이 삼촌인 거예요.
꿈속에 나타난 순이삼촌이 '허구한 날 그렇게 술이나 처먹고 절망에 빠져있느냐, 일어나거라 어서 일어나거라' 내 손을 잡아 이끄는 거예요. 1년 만에 글을 못 쓰고 절망에 빠진 지 1년 만에, 그 암담한 시절, 전두환의 군사정권 때 1년 동안 절망에 빠졌다가 다시 일어나게 된 것이 내가 창조한 순이 삼촌이 일으켜 줬기 때문에 일어난 거죠.
홍기돈/문학평론가·가톨릭대 교수
Q. 4.3을 다룬 소설은 '순이 삼촌' 뿐만이 아닌데.
그 전에 발표된 경우는 제주 출신이 아닌 외부인의 시선으로 본 것이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극우 반공주의 작품도 있었고, 제주도를 낭만화시켜서 삽입하는 형태로 4.3이 들어가기도 했고. 이런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4.3이란 비극성을 전면에 내세워서 진상이 어떠했는가, 이것을 처음 이야기한 것이 순이 삼촌이기 때문이 많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Q. '순이 삼촌'의 문학적 가치는?
4.3의 참상을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제기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는데 모든 논의가 거기에 맞춰져 있거든요. 저는 그것이 불만이고. 거기 보면 작가의식은 2가지 정도로 접근이 가능합니다. 첫 번째가 4.3의 참상을 알리겠다, 이게 있고 두 번째는 제주인으로서의 정체성 찾기가 있습니다. 왜 하필 제주에서 이런 비극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가. 이것이 제주도를 향한 편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라는 것이 작품에도 나옵니다. 이 편견이란 것은 상당히 역사적인 축적이 있었거든요.
현기영/소설가
Q. 왜 4·3을 꼭 다뤄야만 했나?
4.3 이야기를 안 하고는 문학적으로 한 발짝도 떼어 놓을 수가 없다는 압박감을 느꼈어요. 왜냐하면, 늘 제주도는 웅성웅성하는 소리로 '그때 누가 죽었고, 그 밭에는 누구누구가 있었는데 다 죽었고' 이런 소리가 뒤에서 늘 이야기하는 거예요. 웅얼거리는 소리가. 큰소리로 외치지도 못하고 분노의 목소리도 없이 웅얼웅얼. 내가 막상 펜대를 쥐었는데, 아름다움을 위해서 이 펜대를 사용할 수도 있지만, 미학을 위해서 펜대를 사용할 수 있지만...내면의 억압, 이것을 털어버리기 위해서라도 4.3에 대해서 쓰고 넘어가야겠다, 중단편 3편만 쓰고 넘어가자 했는데...나를 체포해서 무지하게 고문하고 말이지. 감옥살이하고. 그때부터 4.3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 겁니다.
Q. '4·3 작가'라는 인식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4·3에서 벗어나서 다른 이야기도 쓸 수 있고 다른 문학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었는데 북촌 마을과 북촌 마을이 겪었던 대참사를 간접 체험함으로써 4·3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런 인생이 돼 버렸어요, 지금도.
정연욱 기자 (donke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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