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윤 공소장 유출 논란..원칙이 안 보인다
[경향신문]
대검찰청이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공소장 내용 유출에 대한 진상조사에 착수하면서 유출자에 대한 관심이 쏠린다. 정해진 절차를 거치지 않고 검찰 내부자가 유출한 것이라면 징계 등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수사내용 공개에 관한 원칙 적용이 여전히 불분명하다는 점은 문제여서 차제에 분명한 공소장 공개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16일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 관리본부장은 변호인을 통해 “긴급출금 관련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에게 허위 보고를 한 적 없다”며 “(검찰 조사를 받은) 여러 사람들 중 딱 한 사람의 기억에 따른 진술을 검찰이 공소장에 그대로 인용했다”고 말했다. 유출된 공소장을 토대로 작성된 언론보도에 반박하는 내용이다. 수원지검 형사3부(부장검사 이정섭)가 작성한 공소장의 유출본은 누군가 검찰 내부망에 접속해 별도 문서를 만들어 유출한 것으로 추정된다. 기소된 사건은 검찰 내부망에 자동 등록되는데 보안이 걸려 있지 않으면 검사라면 누구나 조회할 수 있다.
대검, 유출 과정 조사 착수
내부자일 경우 징계 불가피
‘중대한 사안일 땐 공표 가능’
법무부 훈령 적용 기준 모호
‘울산시장 선거 개입’ 공소장
추미애 전 장관은 제출 거부
2019년 12월 마련된 법무부 훈령 ‘형사사건 공개 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보면 원칙적으로 수사 시작 단계부터 재판 확정까지 수사 내용 공개를 금지하지만 중대한 사안이라면 형사사건공개심의위원회를 거쳐 공개할 수 있다. 공소사실은 기소 후 같은 절차를 거쳐 보도자료 형식으로 공개 가능하다. 이번 건은 이 같은 훈령을 어긴 것으로 징계 대상이라는 의견이 법조계 내에 많다. “검찰의 기강해이”란 말도 나왔다.
이 지검장이 기소돼 피고인 신분이 된 만큼 피의자일 때 수사 내용을 공개하지 말 것을 규정하는 피의사실공표죄는 적용하기 어렵다. 한 고법 부장판사는 “기소된 이상 피의자 신분으로 볼 수 없다”면서 “기소 후에는 공소사실 공개가 원칙이다. 한 달 후에나 열리는 첫 재판 이후 공개한다는 것은 알 권리 제약”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2월에도 공소장 공개 방식과 시점을 둘러싼 논란이 있었다.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의 주요 피의자들을 기소할 때 관행을 깨고 국회의 공소장 제출 요구를 거부했다. 추 전 장관은 공소장은 재판 시작 후 공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령상의 근거 규정은 없다.
혐의 무관 내용 서술도 문제
“기자회견 등 형식 가지면
피의자 반론권도 보장될 것”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추 장관은 재판 전 공소장을 공개하지 않으며 공소장 일본(一本)주의를 철저히 지키도록 하겠다는 두 가지 약속을 했는데, 공소장 일본주의 원칙이 지켜지면 수사기관이 기자회견 등의 방식으로 스스로 공개하는 것이 ‘흘려주기’보다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공소장 일본주의는 기소할 때 공소장 외에 판사에게 피고인에 대한 예단을 갖도록 하는 별도 서류를 제출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공소장에 혐의와 무관한 내용을 서술하는 것도 공소장 일본주의의 취지를 위배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 지검장 공소장의 경우 윤대진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이 조국 당시 민정수석으로부터 “이모 검사 유학을 위해 사건 수사를 중단해달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부분이 문제가 됐다. 이러한 내용은 법정에서 주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공소장에는 죄의 큰 줄기만 적어 기소 직후 공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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