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철의 까칠하게 세상읽기] 검찰, '개와 늑대의 시간'

2021. 5. 16.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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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대통령의 임기 5년을 하루 24시간으로 치환하면, 문재인 대통령의 남은 임기는 1주일 빠진 1년으로 4시간 45분쯤에 해당된다. 말하자면 문 대통령은 요즘 오후 7시 15분쯤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오후 7시 30분인 요즘 일몰시간을 고려하면 이때는 해가 지면서 어스름해질 무렵이다. 프랑스에서 이 시간을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멀리 보이는 동물이 개인지 늑대인지 구분이 되지않기 때문이란다. 혹자는 평소에 친숙했던 개가 늑대처럼 낯설게 느껴지는 시간이라고 평가한다.

검찰은 '권력의 주구(走狗)'로 흔히들 표현돼 왔다. 주구는 '달리는 개', '사냥개'라는 의미다. 그동안 법과 국민의 인권을 무시한 채 권력의 입맛에 따라 수사를 해왔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검찰은 범여권 및 진보세력에는 관대하고, 야당에는 엄격한 잣대를 갖고 있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아들 휴가 미복귀 의혹 수사, 라임·옵티머스 자산운용 관계자들의 정·관계 로비 의혹 수사에서는 봐주기식 수사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반면, 신라젠의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로비설을 보도한 채널A 기자와 한동훈 검사장과의 유착(검언유착) 의혹에서는 과도한 압수수색으로 논란을 빚기도 했다. 당시 검찰이 청와대와 여권의 뜻에 따라 과잉수사한다는 말이 널리 퍼지기도 했다. 이를 반영하듯 정치적 사건에서 검찰 수사의 공정성과 정당성을 믿지 않는 국민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

검찰의 편파적 수사논란에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등 친여 성향의 검사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들은 그동안 권력 핵심층의 의중에 따라 수사를 하거나 방해해온 것으로 지목되었다. 특히 문 대통령의 대학 후배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은 대검 형사부장, 반부패·강력부장, 법무부 감찰국장 등 핵심 요직을 잇달아 맡아오면서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도 이름을 올렸다.

그렇기에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불법 출국 금지 수사와 관련해 외압을 행사한 혐의로 그에 대한 지난 12일 수원지검의 기소는 뜻밖이었다. 4년 동안 침묵했던 검찰이 권력에 부응했던 내부 부역자들에 이제야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더구나 공소장에는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과 조국 전 민정수석이 수사 무마에 관여한 정황이 담겨있다. 권력의 주구 역할을 더 하지 않겠다는 의지와 함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검찰 내부인사도 예외 없다는 단호함이 읽힌다.

청와대와 여권은 그동안 검찰개혁이라는 명목으로 검찰 수사권의 제한을 추진해왔다.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직접 수사권이 축소됐다. 또 지난 1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출범하면서 권력 비리에 대한 무게추가 공수처로 옮겨졌다. 하지만 출범 직후, 공수처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한 황제 에스코트 논란에 이어 '1호 수사' 사건으로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의 해직교사 특별채용 사건을 선정했다.

권력과 권력인 수사를 기대했던 국민의 실망도 커졌다. 반대로 "권력 수사는 검찰만이 할 수 있다"며 검찰에 대한 기대감은 커지기 시작했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월성원전의 경제 타당성 조작 의혹 등에서 청와대와 각을 세우면서 수사를 했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효과도 있어 보인다. 청와대도 이제 과거의 검찰이 아니라고 인식한 듯 싶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재임 4년 기자회견에서 "원전수사 등을 보면 검찰은 청와대 권력을 겁내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은 권력으로부터 독립되어야 하고 권력수사에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는 당연함이 다소 낯설게 여겨지는 것은 과거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깨끗한 정부를 표방해왔다. 실제 그러하길 믿는다. 하지만 4년이라는 시간은 권력 속에 부패가 침윤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검찰도 나름대로 자료를 수집해왔을 것이다.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검찰에게도 1년이란 시간만이 주어졌다. 이제 멈칫했던 권력 수사를 본격적으로 재개해야 한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고공 행진할 때에는 침묵하다가 이제야 칼날을 세우는 것은 비겁한 면도 있다.

하지만 검찰의 권력 수사 의지는 역대 정권에서도 대통령의 레임덕 시기에 유독 강해지는 경향을 보여왔다. 국민은 검찰에게 권력자의 검찰에서 국민의 검찰로 거듭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다만 청와대의 코드인사로 꼽히는 김오수 검찰총장 시대에도 그러한 결기를 지속될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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