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섭 칼럼] '억대연봉' 경쟁에 새우등 터지는 중소벤처
"요즘은 직원들 눈치보며 피해다니는 게 일입니다. 혹시 핵심 개발자가 예정에 없던 면담이라도 요청하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습니다. 회사를 옮기겠다고 하는 건 아닌지, 연봉을 인상해 달라는 건 아닌지 하고요."
최근에 만난 벤처기업 사장은 요즘 더 좋은 조건의 연봉과 복지시설을 찾아 회사를 옮기겠다는 직원들을 만류하느라 거의 '패닉' 상태다. 이직 희망 대상군도 이제 막 실무를 익히기 시작한 2~3년차에서, 회사 내 핵심 요직에 있는 간부에 이르기 까지 다양하다. 특히 핵심인력들이 이탈하면서, 회사에 남아 있는 직원들의 사기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 직원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수당 인상 등의 지원책도 내놓고 있지만, 연봉 1000만원, 스톡옵션 1000만원 이상을 '쏘아대는' 업체가 늘면서 오히려 상실감만 부추기는 것 아닌가 걱정이 앞선다.
판교발(發) 연봉인상, 개발자 모시기 경쟁이 인터넷, 게임업계는 물론 전체 업계로 확산되고 있다. 대기업 종사자들이 주요 IT 기업으로 이직하고 있고, 특히 임금이나 근로조건이 취약한 중소벤처의 개발자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가고 있다. 인력 이동 현상은 중소벤처에서 중견기업기업, 중견기업에서 다시 대기업으로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있어 웬만한 탑기어 기업이 아니면 다 겪는 일이다.
연초 성과급 논란으로 촉발된 연봉인상 경쟁은 이미 위험수위를 넘었다. 게임업계, 인터넷 업계를 중심으로 이미 1000만원, 2000만원 성과급 인상은 기본이 됐고, 전 직원에 수천 만원 상당의 스톡옵션을 부여하는 기업들도 잇따르고 있다. 게임을 비롯해 일부 업종에서는 핵심 개발자 유치를 위해 경쟁업체가 제시한 연봉에 추가로 금액을 더하는 '받고 더' 패턴까지 도입되고 있다. 특히 쿠팡, 네이버, 카카오, 엔씨소프트 등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비대면 소비의 수혜를 입은 업체들은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워 역대 최대 규모인 수백 명의 경력직들을 '싹쓸이' 하고 있다.
연봉인상 경쟁이 이처럼 출혈경쟁으로 변질되면서, 판교 일대에서는 발 끝에 걸리는 게 '억대 연봉자' '자고 나면 연봉이 1000만원씩 오른다'는 말이 유행어 처럼 번지고 있다.
'억대연봉 경쟁'은 이처럼 노동자들이 이전보다 더 높은 대우에, 더 좋은 기회를 찾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는 점에서 분명 긍정적인 부문이 크다. 그러나 과도한 연봉인상 경쟁이 대한민국 IT 기업의 강점인 생산성을 떨어 뜨리고, 성장을 저해시킨다는 목소리도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인건비 부담을 높여 성장력 축적을 위한 R&D 투자를 줄이는 부작용도 우려된다.
실제 1분기 실적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19 한파에도 '어닝 서프라이즈' 실적을 기록한 네이버, 카카오, 엔씨소프트 등이 약속이나 한 듯이 급전직하 했다. 연초 성과급, 연봉 인상, 스톡옵션 등이 급격한 인건비 상승으로 이어졌고, 결국 급격한 실적둔화로 연결된 것이다. 임금인상은 한두 해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연봉인상 경쟁은 앞으로 당분간 이들 기업의 발목을 잡을 전망이다.
업종별, 규모별로 개발자 쏠림 현상이 심화되는 것도 문제다. 특히 사업기반이 취약한 국내 중소벤처들은 핵심 개발자 인력 이탈로 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 중소기업은 이미 2018년부터 본격화되고 있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여파로 큰 고충을 겪어왔다. 최저임금 인상, 주52시간제 도입으로 인건비는 천정부지로 높아졌고, 가용한 인원은 점점 더 줄어들어 기업경영을 어렵게 해왔다.
설상가상 올초부터 판교발 연봉인상 경쟁까지 더해지면서 중기벤처기업들은 심각한 후폭풍에 직면하고 있다. 핵심 인력들이 대거 빠져 나가고 있고, 판교의 몇몇 업체들이 올려 놓은 연봉 때문에 일선 개발자들의 인건비는 덩달아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최근에는 '힘의 우위'를 확보한 IT기업 직원들이 속속 노동조합을 설립하면서, 기업경영에 큰 변수가 되고 있다. 과도한 연봉인상 경쟁으로 글로벌 기업과 경쟁해야 하는 국내 IT기업들의 경쟁력이 쪼그라들지 않을까 걱정이다.
최경섭 ICT과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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