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은 각자도생 시대에 공동체 감각 회복하게 해"

박성준 2021. 5. 16.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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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2:어디에나, 어디에도' 극작가·연출가 김재엽
코로나 시대 사회 양극화 더 심해져
대중이 진실 모르면 민주주의 멈춰
상위 1% 세계 파헤치기 위해 도전
시리아 난민과 조세도피처 실태 등
실제 소재 가져와 드라마로 재구성
연습하며 대본 바로 수정하니 좋아
신작 ‘자본2: 어디에나, 어디에도’를 통해 조세회피처에서 벌어지는 검은돈의 탈세 행태와 이를 돕는 전문가 집단을 고발하는 극작가이자 연출가 김재엽. 세계일보 자료사진
‘알리바이 연대기’에서 현대사 굴곡을 공감할 수 있는 가족 이야기로 풀어냈던 극작가이자 연출가 김재엽. 그의 신작은 ‘자본2: 어디에나, 어디에도’다. 조세도피처로 흘러드는 검은돈 비밀을 파헤치는 ‘다큐 드라마’다. 등장인물이 18명인데, 유럽 언론인과 조세회피처의 자산관리사·변호사 등에 수단 난민 이야기까지 더해진다. 우리나라 사람은 ‘탐사보도 매체 기자 강소은’ 단 한 명인 ‘글로벌’한 작품이다.

자신이 이끄는 ‘드림플레이 테제21’ 연습실에서 지난 12일 세계일보와 만난 김재엽은 “보통 ‘웰메이드 연극’은 문학을 드라마로 만드는데 테제21의 화두는 ‘역사’와 ‘경제’다. ‘알리바이 연대기’는 역사에 초점을 맞췄고 경제에 관한 건 ‘자본1: We are the 99%!(2018)’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라고 말했다. “사실 경제는 현대인에게 제일 중요한 분야입니다. ‘자본1’은 제조업 시대 이야기로 마르크스 자본론에 나오는 상품과 노동을 배우들이 자기들 삶에서 경험한 이야기로 소개했다면 이번 작품은 시리아 난민과 조세도피처 실태, 그리고 국제 탐사보도 협업 프로젝트 등 금융자본 관련 실제 소재를 가져와서 드라마로 재구성했습니다.”

그의 설명대로 2016년 세계를 뒤흔들었던 조세회피처 파나마의 로펌 ‘모색 폰세카’ 기밀 문건(파나마 페이퍼스) 폭로 사건을 다룬 ‘자본2’는 독일 신문 ‘쥐트도이체 차이퉁’의 두 기자에게 익명의 공익제보자가 온라인으로 접근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그 결과 세계 상위 1% 부자들의 불법 거래와 거대 탈세를 조장하는 악명 높은 로펌 내부 문건이 대량으로 유출된다. 여기에 맞물려 코펜하겐 경영대학원에서 경제사회학을 전공하는 로사 교수와 그의 조교는 ‘세계 경제 불평등’을 연구하기 위해 갑부들을 돕는 자산관리사들을 인터뷰한다. 각종 자격증으로 무장한 자산관리사와 변호사, 회계사 등이 어떻게 세계 부를 독차지한 이들의 재산 증식을 도와주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다.
극 초점은 몰타와 버진아일랜드, 파나마, 버뮤다 등 조세도피처를 따라서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글로벌 금융자본 실체에 맞춰진다. 어두운 자본은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데 인간은 국경선을 넘지 못하고 떠돌다 죽는 비극이 펼쳐진다. 김재엽은 “현재 진행형인 사건이고 관련 저작물도 많아 연구를 많이 했다. 처음 나온 대본은 100페이지 정도였는데 지금은 70페이지까지 줄었다. (이야기가 많아) 열다섯 명이 출연하는데 분장실에 모두 들어설 수도 없을 정도”라고 극작 과정을 설명했다.
“극작과 연출을 함께 하니깐 연습하면서 바로바로 대본을 고칠 수가 있습니다. 대본 쓸 때는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집어넣었는데 배우들 대사로 들으면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구나’ 싶어서 줄이게 돼요. 배우들 언어로 듣다 보면 극에 필요한 언어로 재구성됩니다.”
문서 분량이 2테라바이트에 달하는 ‘파나마 페이퍼스’ 사태는 아직 진행형이다. 금융정보 공개에 따른 엉뚱한 피해자가 나오는 걸 막기 위해 방대한 문서에서 검은 자본 흐름을 찾는 작업은 더디지만 신중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처럼 두꺼운 책으로나 어울릴 법한 소재를 연극으로 만든 이유는 무얼까. 김재엽은 ‘진실의 힘’을 강조한다. 코로나 시대에 사회 양극화는 더욱 심해졌다. 공동체는 붕괴하고 연대하지 못한 개인은 각자 알아서 살아남아야 하는 시대가 됐다. “대중이 진실을 알지 못하면, 민주주의는 결코 작동할 수 없을 것이다. 연극은 각자도생의 시대에 여전히 공동체를 꿈꾸게 하고, 공동체의 감각을 회복하게 하는 마지막 보루일지도 모른다”라고 테제 21은 ‘자본2’를 만든 이유를 설명한다.
“사람들 인식이 ‘상위 1%’의 세계를 그들만의 세계로 여겨요. 그게 우리 삶과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모르는데, 그들은 세금도 제대로 안 내고 회사는 망했는데 사장은 자금을 숨겨 잘살고…. 다른 나라 정부는 폭로 문건을 조사해서 국고로 회수한 돈이 거의 조 단위에 이르는 경우도 있는데 우리나라는 당국이 좀처럼 수사를 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김재엽은 “상위 1%가 세계 부의 절반 이상을 가지고 있으면서 세금을 제대로 안 내는데 대중은 이 문제를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이들은 ‘정부’라는 개념 위에서 사는데 보통사람은 ‘국가’라는 틀 안에 갇혀있다. 이 역시 양극화이고 국가에 얽힌 금융자본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검은 금융자본을 고발하는 극에 수단 난민 이야기가 들어간 것도 같은 맥락이다. “폭로된 조세회피처 문건을 통해 시리아 아사드 정권 군자금이 엄청난 규모로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돌고 있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페이퍼컴퍼니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서 난민이 발생하는데 자본은 국가를 넘나들어도 사람은 넘나들지 못합니다. 자본가에게는 여권도 팔고 국적도 만들어주는데 이들 때문에 만들어진 난민은 국경에 갇혀있는 거예요.”

‘상위 1%’를 다루지만 정작 이들은 극에 나오지 않는다. 김재엽은 “상위 1% 자본가들은 바뀔 것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들을 위해 일하면서 수수료를 받는 사람들은 다르다. 전문가 집단은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 국가가 자격증을 보증해주고 국민이 믿어줘서 ‘선생님’ 소리 듣고 사는데 이런 이들이 국가나 국민을 배신하면서 1%를 위해 일해서 되겠는가. 그런 부분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5월 20일부터 6월 6일까지 서울 대학로 선돌극장에서.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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