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판사들, 대형로펌 가서 법원행정처 경력 대놓고 홍보
양승태 사법부 심의관 시절에 특정 재판 개입 등으로 징계 받아
사법행정권 남용으로 인한 ‘사법농단’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전직 판사들이 대형로펌에 취업한 뒤 과거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 근무 경력을 공개적으로 홍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6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법무법인 광장으로 옮긴 정다주 전 의정부지법 부장판사는 법무법인 누리집에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에서 심의관으로 근무하면서 사법행정 업무, 대(對)국회 업무, 국제 업무에 관해 풍부하고 폭넓은 경험을 쌓았다”며 법원행정처 근무 경험을 강조했다. 법무법인 태평양으로 옮긴 문성호 전 대구지법·대구가정법원 경주지원 부장판사도 법무법인 누리집에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심의관으로 근무하면서 행정소송 지원 업무 등 공법소송 전반을 담당했다”고 홍보했다. 김앤장 법률사무소로 옮긴 김민수 전 창원지법 마산지원 부장판사는 법무법인 누리집 경력란에 기획조정실 기획제2심의관과 기획제1심의관 근무 경력을 나란히 올렸다.
앞서 세 사람은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에서 심의관으로 일하며, 특정 재판에 개입하거나 법관의 재판 독립을 침해할 수 있는 위법·부당한 지시를 따른 사법농단 연루자로 지목된 바 있다. 이에 대법원 법관징계위원회는 2018년 12월 품위손상 등을 이유로 정다주 전 부장판사에게 감봉 5월, 김민수 전 부장판사에게 감봉 4월, 문성호 전 부장판사에게 견책의 징계 처분을 내렸다. 세 사람은 2019년 2월 정의당이 탄핵당해야 한다고 주장한 법관 10명에도 포함됐다.
정다주 전 부장판사는 사법행정권 남용 등의 혐의로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재판의 첫 증인으로 소환된 핵심 증인이기도 했다. 법원행정처 역점사업이던 상고법원 도입 등을 위해 청와대 협조를 얻으려던 임 전 차장 등의 지시에 따라 국가정보원 대선개입·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통보처분 사건 등에 대한 각종 보고서를 썼기 때문이다. 정다주 전 부장판사는 당시 법정에서 “사법부 권한을 남용하는 내용이 많았고 비밀스럽게 문건을 작성해야 해 부담이 됐다”, “정무적 보고서들은 내용이 민감해 다른 심의관과는 공유하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김민수 전 부장판사는 검찰 조사 당시 자신이 법원행정처에서 작성한 여러 문건에 대해 “평소 (내가) 사용하는 워딩으로 쓴 것이 아니다”, “임 전 차장에게 빙의”해서 쓴 것이라는 취지로 진술하기도 했다. ‘국제인권법연구회’ 등 판사들의 소모임 와해 등을 노린 보고서를 쓰기도 했던 김 전 판사는 양 전 대법원장 등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임 전 차장이 ‘좋아할 만한’ 내용을 넣어 보고서를 썼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헌법재판소장을 비난하는 내용의 기사 초안을 대신 작성해 <법률신문>에 보도한 문성호 전 부장판사는 임 전 차장의 재판에서 “내키지 않았기 때문에 자료 제공 정도로 무마하고 싶었는데 (임 전 차장이) 크게 소리를 지르고 강압적으로 지시해 거역하지 못하고 알겠다고 했다”, “거절하지 못한 게 후회도 된다”며 반성하기도 했다.
법조계 일부에서는 사법농단 관련 재판 증인석에서 거듭 고개를 숙였던 세 사람이 지난 2월 퇴직 직후 대형로펌에 취직하고, 법원행정처 경력을 공개적으로 홍보하며 변호사 활동에 나선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변호사법에는 공무원 재직 중 위법행위로 징계 처분을 받거나 위법행위와 관련해 퇴직하면 대한변호사협회(변협)가 등록을 거부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하지만 변협은 징계 처분 직후 김민수 전 부장판사와 문성호 전 부장판사가 법원행정처장을 상대로 대법원에 낸 징계 처분 취소 소송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 등으로 이들의 변호사 등록신청은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서선영 변호사는 “법복을 벗자마자 대형로펌으로 가서 법원행정처 근무 경력을 버젓이 홍보하는 건 문제가 있다”라며 “사법농단 연루 경력이 변호사 업무와 별다른 관련이 없다는 것이고, 법원행정처에서 일한 경험을 단순히 유능하다고만 평가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윤영 기자 jy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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