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해고' 당해도..플랫폼 노동자는 '노동자'가 아닌가요

신다은 2021. 5. 16.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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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랑 언쟁했다고 '계약 해지' 여당 발의 보호법안도 '사각지대'
약관 따르면 부당해고 못막아.. "계약변경·해지사유 제한해야"
플랫폼 청소업체 ‘당신의집사’ 화면과 플랫폼 노동자의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ㄱ씨는 지난 2월 플랫폼 청소업체 ‘당신의집사’를 통해 ‘청소 전문가’(클리너)로 일을 시작했다. 코로나19로 본업이 어려워지면서 여러 플랫폼 노동을 전전하다 당신의집사를 알게 됐다. 간단한 심사를 거쳐 애플리케이션(앱)에 가입하자 간단한 방 청소 순서와 청소도구 정리 지침 등이 안내사항으로 떴다. 등록한 뒤 이틀이 채 지나지 않아 카카오톡 알림이 울렸다. ‘업무가 들어 왔습니다. 고객님께 방문 인사를 해 주세요.’ 그에게 주어진 첫 번째 일이었다.

일은 어렵지 않았다. 청소에 자신이 있었고 짧은 시간 안에 고객들에게 좋은 평가도 받았다. ㄱ씨를 환영하는 단골도 생겼다. 다만 ㄱ씨는 일할수록 자신이 자영업자가 아니라 당신의집사에 소속된 ‘노동자’라고 생각하게 됐다. 당신의집사는 청소 한 건당 수입 3만5천원(정기고객은 3만2천원)의 18∼25%(6천∼9천원)를 수수료로 가져갔고, 일주일 동안 일한 돈을 합쳐 주급으로 지급했으며, 이따금 전화를 걸어와 업무를 추천했다. 플랫폼의 지침을 따르지 않으면 불이익도 받을 수 있었다. 당신의집사는 클리너와 맺는 ‘근무 정책 서약서’에 ‘배정된 예약을 일방적으로 취소하거나 결근하면 소득에서 차감될 수 있다’고 적었다. 클리너가 업무를 시작하거나 종료할 땐 회사로 알림이 가도록 앱 버튼을 눌러야 했다. 조금이라도 예정 시각보다 이르거나 늦게 도착하면 ‘고객님께 연락하셨나요?’와 같은 경고 메시지가 왔다. ㄱ씨는 “1분이라도 예정 시각보다 이르거나 늦게 도착하면 ‘고객님께 연락하셨나요?’와 같은 경고 메시지가 왔다”고 말했다.

돌발 상황이 생긴 건 지난달이었다. ㄱ씨가 회사 쪽에 일감 조정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상담사와 언쟁이 붙자 상담사가 “함께 일할 수 없으니 오늘까지만 근무하는 걸로 하겠다”며 전화를 끊은 것이다. ㄱ씨가 휴대전화를 열자 예약돼 있던 청소 업무가 모두 해지돼 있었다. ㄱ씨는 배정돼 있던 고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된 것이다.

하루 아침에 일자리 잃은 ‘청소 전문가’

더불어민주당이 정부의 정책을 반영해 지난 3월 ‘플랫폼 종사자 보호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플랫폼 종사자 보호법안)을 발의했지만, 이 법안이 플랫폼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는 사각지대가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플랫폼으로부터 사실상 지휘·감독을 받는 노동자인데도 플랫폼 기업이 일방적으로 정하는 약관에 따라 계약 해지 등을 하면 노동자가 이에 대응할 수단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ㄱ씨의 경우 업무 형태를 봤을 때 자영업자가 아닌 당신의집사로부터 지휘·감독을 받는 노동자라고 볼 여지가 있다. 타다 기사의 부당 해고 사건을 대리한 신인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는 “프리랜서인지 노동자인지 판단하는 기준은 계약의 형식이 아니라 사용자가 실질적으로 노동자를 감독했다고 볼 정황이 있는 지인데 ㄱ씨의 경우 업체의 업무 지시와 서약서상에 적은 불이익 규정, 수수료 비율 등을 봤을 때 노동자로 볼 여지가 있다”고 봤다. 윤애림 서울대 고용복지법센터 연구위원도 “자영업자의 가장 큰 특징이 ‘일을 스스로 선택하고 시장을 개척할 재량이 있는지’인데 이 업체의 경우 클리너가 고객을 직접 선택할 수도 없고 불이익 때문에 일을 거절하기도 어려워 자영업자가 아닌 노동자로 볼 여지가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ㄱ씨가 실제로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인정받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ㄱ씨가 상담사와 언쟁이 있었던 이튿날 로그인을 시도하니 애플리케이션이 처음 깔았던 상태로 초기화돼 있었고 계정도 삭제됐다. 두어달동안 했던 ㄱ씨의 모든 업무기록과 회사와 나눈 대화도 모두 사라졌다. 업무기록을 확보하기 어려우니 노동위원회에 부당 해고 구제를 신청하더라도 노동자성을 입증하기가 만만치 않다. 윤 연구위원은 “노동위원회 단계에선 구제를 신청한 노동자가 부당 해고를 입증하게 돼 있다”며 “동료의 업무기록을 대신 제출하는 등의 조처를 취할 순 있겠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자료를 제출할 수 없다는 점은 불리한 요소”라고 말했다.

당신의집사 쪽은 “ㄱ씨가 통화하는 중에 화를 많이 내서 회사 상담사가 원론적으로 경고한 것일 뿐 실제로 계약을 해지하려 한 것은 아니었다”며 “그런데 ㄱ씨가 ‘그럼 나도 일 안 하겠다’고 답하길래 상담사는 계약이 종료된 줄 알고 해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ㄱ씨에게 출퇴근을 알림으로 보고하도록 한 데 대해선 “청소가 제대로 되는지 확인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법일 뿐”이라며 ㄱ씨가 노동자가 아닌 자영업자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ㄱ씨는 “회사가 대체자를 찾기 어려운 당일 업무만 남기고 해지했길래 그럴거면 남은 것도 해지하라고 항의한 것”이라며 계약 해지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사를 회사 쪽에 여러 차례 전달했다고 반박했다.

플랫폼 종사자 보호법안이 제정되면 ㄱ씨처럼 불씨에 자신의 기록이 사라지는 경우는 막을 수 있다. 플랫폼 기업이 계약을 변경하거나 해지하려면 미리 약관에 정한 사유에 한해 최소 15일 전에 종사자에게 통지하도록 법이 정하고 있어서다. 플랫폼 기업이 이를 지키지 않으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린다. 종사자는 보름 남짓한 시간 동안 계약 해지에 대응해 관련 자료를 모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셈이다.

그러나 플랫폼 기업이 계약 해지를 남발하는 것 자체는 막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법은 약관에 정한 사유라면 자유로운 계약 변경·해지가 가능하다고 보는데 이 사유를 정할 때 여전히 플랫폼이 힘의 우위에 서 있다. 현재도 형식만 갖춘 채 계약을 변경하거나 해지하는 경우는 많다. 배달기사를 쓰는 쿠팡이츠는 배달 콜을 자주 거절하는 배달원에 며칠간 일감을 주지 않거나 아예 계약을 해지할 때 자사 약관 3조5항을 근거로 든다. 이는 ‘회사가 정한 배달 절차를 고의적으로 위반하는 경우’나 ‘서비스품질 유지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등 10가지 시정조치 및 계약해지 사유를 정한 조항이다. ‘과도한 콜 거절’의 기준이 뭔지, 계약 해지 사유로 볼 수 있는지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일단 회사가 앱 접속을 막으면 쿠팡이츠 기사들은 대응할 방법이 없다. 박경수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법률원장(노무사)은 “플랫폼 노동은 일을 하려는 사람이 앱에 가입해 일감을 맡는 형태라 종사자가 플랫폼 계약에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운 구조”며 “법이 시행돼도 사실상 앱에 약관이 이미 나와 있고 그에 맞춰 일할 사람은 가입하고 아니면 안 하는 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위가 적극 개입할 가능성도 작아

노동자가 약관을 확보해 공정거래위원회를 찾아가는 방법도 있지만 노동계는 이 역시 쉽지 않다고 본다. 독과점 등 시장 구조 개선에 초점을 맞추는 공정위가 개별 계약서의 약관 관련 분쟁에 주도적으로 개입할 가능성이 작아서다. 공정위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민원이 들어와야 판단할 수 있겠지만 사적 자치를 규율하는 약관을 공정위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약관법을 적용하는 덴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플랫폼 기업들이 일단 계약 해지를 통보하면 노동자는 ‘복직’을 위한 기나긴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대리기사 ㅈ씨는 2011년부터 약 9년 동안 대리기사 애플리케이션 ‘핸들포유’에 소속돼 일했지만 2019년 3월 내부 규정 위반을 이유로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고 더 이상 앱에 접속할 수 없었다. 회사를 거치지 않고 고객 접수 건을 동료 기사에게서 직접 넘겨받았다는 이유에서였다. ㅈ씨는 곧바로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2년 넘는 시간 동안 소송비를 감당해야 했고 업계에 좋지 않은 소문도 퍼지면서 구직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이 때문에 노동계와 전문가들은 기존의 노동법을 확장해 플랫폼 노동자를 보호하거나 최소한 플랫폼 종사자 보호법안의 사각지대를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흥준 서울과기대 교수(경영학)는 “아무런 생산기반 없이 노무만을 제공해 보수를 받는 사람들은 기존의 민법상의 권리로는 불충분하고 일정 부분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호해야 하는 게 맞다”며 “국회에 발의된 플랫폼 종사자 보호법안이 이런 점을 반영해 계약 변경·해지의 사유를 제한하거나 사회보험을 플랫폼 기업 쪽이 일정 부분 책임지게 하는 등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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