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프리즘] '백래시'의 올바른 정의를 위해 / 이정연

이정연 2021. 5. 16.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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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오후부터 세찬 비가 내려 시원한 공기가 세상을 채운 5월15일이었다.

이날은 <한겨레> 가 33돌을 맞은 날이다.

창간 뒤 얼마 되지 않은 1988년 9월1일, 한겨레는 박완서 작가가 쓴 '거짓 해방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글로 시작해 특집 '여성, 오늘과 내일'을 9회에 걸쳐 싣는다.

33년이 지나도록 오늘에도 비슷한 실태를 지적하고, 같은 문제의식을 담은 글을 담기에 바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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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1988년 9월11일 <한겨레신문> 8면에 실린 특집 ‘여성, 오늘과 내일’.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갈무리

[한겨레 프리즘] 이정연 | 젠더데스크 겸 젠더팀장

“한국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세계에서 44등이라고 한다. 워싱턴에 있는 ‘인구 위기문제 위원회’가 세계 99개국을 대상으로 여성의 취업, 사회적 평등, 결혼, 교육, 건강 등 다섯 분야로 점검해서 나온 결과이다. 조사분야 가운데 여성취업과 사회적 평등 분야는 낙제점수였다.(100점 만점에 35점과 50점).”(1988년 9월11일 <한겨레신문> 8면)

“이러한 법률 규정들을 보면, 우리나라의 여성은 남성과 같은 지위를 누리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다른 하위법에는 차별조항이 많을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 근로기준법 등에 보장된 권리조차 지켜지지 않음으로써 여성의 법적 지위는 아주 낮은 수준에 있다.”(1988년 9월7일 <한겨레신문> 8면)

늦은 오후부터 세찬 비가 내려 시원한 공기가 세상을 채운 5월15일이었다. 이날은 <한겨레>가 33돌을 맞은 날이다. 33년 전의 신문을 뒤졌다. 창간 뒤 얼마 되지 않은 1988년 9월1일, 한겨레는 박완서 작가가 쓴 ‘거짓 해방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글로 시작해 특집 ‘여성, 오늘과 내일’을 9회에 걸쳐 싣는다. 9회 분량의 글을 모두 읽었다. 글을 모두 읽은 뒤엔 시원하지 않은, 서늘한 기운이 들었다. 습기가 가득 찬 공기가 답답해졌다.

글 곳곳에서 각종 통계와 사실로 드러낸 당시 한국 사회의 성차별 실태, 차별을 없애 성평등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답답한 건 공기 중 습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33년이 지나도록 오늘에도 비슷한 실태를 지적하고, 같은 문제의식을 담은 글을 담기에 바쁘기 때문이었다.

2021년. 성차별은 없고, 역차별만 남았다고 한다. 한겨레가 발견한 현실은 여전히 그렇지 못하다. 세계은행은 지난 3월 초 ‘2021 여성의 일과 법’ 보고서를 냈다. 여성의 경제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법과 제도를 조사해 여성의 권리를 점수화(190개 나라, 남성 100점 기준)해 발표했다. 한국은 종합 85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95점보다 10점 낮다. 여러 부문 점수 가운데 임금 부문은 25점을 받았다. 최하위 그룹에 속한다.

‘효능감’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퍼진다. 특정 성별이 사회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행위를 하는 데 성공하고, 실제 정부나 기업이 이들의 비상식적인 요구를 들어준다. 기업과 정부의 조치가 특정 성별에게 ‘하면 된다’라는 승리의 경험, ‘효능감’을 주는 행위라는 비판이 나온다. 그러나 ‘승리의 경험’을 준다는 평가 앞에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무엇으로부터의 승리인가? 한국 사회가 성평등한 사회로 나아가는 걸 방해하는 싸움에서 이긴 것인가? 동시에 최근 가장 자주 듣는 말 중 하나인 ‘백래시’(반발성 공격) 역시 무엇에 대한 백래시인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페미니즘 백래시, 적절하다. 더 많은 사람의 이해를 돕기 위해 보다 명확하게 쓰도록 해야겠다. 표준국어대사전은 페미니즘을 “성별로 인해 발생하는 정치·경제·사회 문화적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견해”라고 정의한다. 성차별을 없애야 한다, 성평등을 추구해야 한다는 견해다. 그래서 꾹꾹 눌러 적는다. ‘성평등한 사회로 변화하는 데 반발하는 백래시’라고.

한국 사회가 성평등한 사회로 바뀌길 바라는 사람들이 ‘효능감’을 느낄 기회가 적었다. 33년 전 1988년의 글을 다 읽고 난 뒤 문제제기한 사실들에 대한 그 뒤의 흔적을 톺아보니, 꼭 그럴 일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33년 전 남성 중심의 법체계를 지적하는 글엔 ‘호주제’의 문제를 짚었다. 지금은 ‘호주제’가 사라졌고, 민법 등에서 성차별 조항으로 꼽히는 ‘부성 우선주의’(자녀에게 아버지 성을 따르도록 하는 것) 폐기가 본격적으로 논의되어 가는 중이다.

33년이 지났지만, 한국 사회는 아직 성평등하지 않다. 그러니 한겨레의 미래 역할은 지난 33년과 같다. 성평등 가치 실현에 물러섬 없는 언론, 제 역할을 다할 뿐이다.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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