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의료 등 혁신 14년째 제자리..'제2 제3의 타다' 계속될 판
변협, 규정 바꿔 '리걸테크' 태클
감평협도 빅데이터 플랫폼 고발
정부는 이해충돌 중재 없이 방관
기득권 거센 반발·정부 뒷짐에
네이버는 日서 원격진료 서비스
"당국 나서 신산업 안착 유도해야"
최근 국내 한 유명 벤처캐피털(VC)은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던 리걸테크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서비스 확산과 리걸테크 기업의 미래 성장성을 높이 평가하고 적극적인 투자를 고민했지만 예상하지 못한 복병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지난 3일 이사회를 열고 법률 서비스 플랫폼에 변호사들이 참여하지 못하도록 ‘변호사 광고에 관한 규정’을 개정한 여파다.
개정안에는 변호사가 광고에 타인이나 타 법인의 이름과 상호 등을 표시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개정안은 법률 플랫폼에 유료 광고하는 변호사들을 징계할 수 있다는 규정도 포함시켰다. 사실상 리걸테크를 정면으로 겨냥한 이 같은 변호사 단체의 압박에 스타트업 투자 시장이 크게 동요하고 있는 것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로톡(LAWTALK)’ 등 리걸테크 기업들은 예고했던 헌법소원을 청구하기로 결정하고 로펌 선임까지 끝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최대 법률 서비스 플랫폼인 로톡을 포함한 스타트업계에서는 변협의 이 같은 움직임을 기득권 유지를 위한 신산업 압박으로 보고 있다.
시장에서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비대면 서비스의 성장 속도가 빨라지면서 신산업과 전통 산업의 이 같은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질 것으로 관측한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대면 서비스 산업은 위축되고 비대면 서비스 매출이 증가하면서 전통 산업의 반발은 더 거세질 수 있다. 문제는 전통 산업과 신산업의 갈등 속에서 정부가 양측의 공방전을 방치하거나 번번이 기득권 세력의 손을 들어주면서 신산업 혁신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데 있다. 정부는 2008년 서비스수지 개선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서비스산업 선진화 방안’을 마련했지만 10년 넘게 관련 법안 통과는 제자리걸음이다. 영리병원 도입 논의는 김대중 전 대통령 재임시절이던 2001년 처음 공론화됐다.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의료산업 선진화 전략’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서비스산업 선진화 방안’이라는 이름으로 추진했지만 경제자유구역 등 이외에서는 아직도 허용되지 않고 있다.
‘타다 사태’에서 보듯 정부는 전통 산업 및 기존 이익집단의 이해관계를 의식해 적극적인 조정에 나서기보다는 뒷짐만 지면서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신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지원책을 마련하는 데 주저하면서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 발생 가능성은 더 커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리걸테크의 이번 헌법소원 결정도 결국 정부의 방치 속에 전통 산업과 신산업 간 갈등이 사회적 비용을 통해 봉합되는 양상으로 이어진 사례라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자본력이 부족한 스타트업의 경우 거액의 소송전 부담으로 사업을 포기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신산업 발전이 발목을 잡힐 수 있다고 우려한다.
네이버가 자회사인 라인을 통해 일본에서 원격 의료 서비스를 시작한 것도 국내 의료계의 반발과 정부의 눈치 보기 행보 탓이라는 목소리가 크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원격 의료 도입 필요성이 높지만 업계 반발에 결국 해외 진출로 눈을 돌린 사례다.
정부 당국의 대응이 늦어지면서 사회적 비용이 커지거나 스타트업이 사업을 접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타다의 경우 지난해 5월 ‘타다 금지법’에 대해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헌법소원을 냈지만 1년이 넘게 판결이 나지 않고 있다.
신규 비대면 서비스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정부 당국이 제때에 나서지 않을 경우 미래 신산업 시장의 싹이 제대로 트지 못할 수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연말정산 시기 미환급금을 찾아주는 서비스로 인기를 끌어던 ‘삼쩜삼’은 한국세무사고시회로부터 지난달 불법 세무 대리 혐의로 고소당했다. 빅데이터·인공지능(AI) 부동산 담보 가치를 평가해주는 ‘빅밸류’도 지난해 감정평가사협회로부터 감정평가법 위반을 이유로 고발당했다. 미용·의료 의료 정보 플랫폼 ‘강남언니’와 ‘바비톡’도 대한의사협회로부터 의료법을 준수하라는 경고를 받았다. 이 밖에도 부동산 중개 플랫폼 ‘직방’은 공인중개사협회와, 전문의약품 배송 서비스 ‘닥터나우’는 대한약사회와 업역을 둘러싸고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신산업 시장이 점차 확산되고 있는 만큼 정부와 정치권이 적극적으로 집단 간 이해 충돌을 중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유병준 서울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산업은 경쟁을 통해 발전하는 게 기본인데 표심을 의식하는 정치권은 신산업과 기존 산업의 갈등을 지켜보다가 비효율적인 기존 사업자 손을 들어주는 책임 회피를 지속하고 있다”며 “국민 전체가 발전된 서비스를 누리지 못하게 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명확한 비전을 가지고 신산업이 발전하는 방향에서 협상을 적극 중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곽노성 혁신과규제연구소 소장은 “위험 정도를 관리하면서 결국 산업에 혁신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정부와 정치권이 할 일”이라며 “코로나19 이후 더 빨리 달라진 4차 산업혁명의 변화를 효율적으로 안착시키려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재명 기자 nowlight@sedaily.com, 세종=박효정 기자 jpark@sedaily.com, 김정욱 기자 myk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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