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근거' 내세운 CDC 마스크 착용 완화 새 지침에 미 과학계·의료·노동계 비판 쏟아져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이달 중순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 코로나19) 대응 수단이던 마스크 착용 규제를 완화한 것과 관련해 논란이 일고 있다. CDC는 백신 접종 완료자가 코로나19를 전파할 가능성이 작다는 과학적 연구 결과를 근거로 내놨지만 의료 현장을 대표하는 보건단체들은 새 지침이 백신 접종자에 의한 감염 추적이 중단될 수 있고 일선 의료계와 현장 노동자들, 대중의 건강을 위협하는 조치라며 비판했다.
CNN과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CDC는 이달 14일(현지시간) 질병 발병·사망률 주간 보고서'(MMWR)에 백신 접종 완료자가 코로나19에 걸리더라도 이를 전파할 가능성은 작다는 연구 결과를 실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 백신 접종 초기에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을 맞은 치료 현장의 의료 종사자의 94%가 백신의 면역 효과로 보호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1회 접종만 한 사람들에게서도 82%의 보호 효과가 나타났다.
CDC는 앞서 이달 13일 백신 접종을 마친 지 2주를 넘은 이를 대상으로 대중교통 이용할 때와 학교를 제외하고 마스크를 쓰지 않고 활동해도 된다고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이를 과학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CDC의 이번 마스크 착용 완화 결정에는 백신 접종자는 코로나19에 걸려도 바이러스 부하량이 훨씬 적다는 연구 결과도 이번 완화 결정에 핵심적 근거가 됐다. 바이러스 부하량은 감염자의 혈액 속에 있는 바이러스양으로 혈액 1㎖당 바이러스 개체 수로 표현된다. 수치가 높을수록 감염 정도가 크고 전염성이 높다는 뜻이다.
CNN에 따르면 지난 3월 발표된 연구에서 의료 종사자 약 4000명을 대상으로 매주 코로나19 검사를 했는데 이 중 63%가 백신을 맞았고 이중 11%가 무증상 감염을 보였다.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을 두 번 다 맞은 사람은 양성 판정이 나올 가능성이 90% 낮았고, 한 번만 맞은 사람도 이 가능성이 80%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미국 내 의료 종사자 1800여 명을 대상으로 수행된 연구에서도 백신을 한번 맞은 사람은 82% 효과가 있었고, 2회 맞은 사람은 94% 효과가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CDC는 “최근 이런 연구 결과들이 CDC가 권고를 변경하는 데 중심축이 됐다"고 설명했다. 로셸 월렌스키 CDC 국장도 “이 연구 결과가 누가, 언제 마스크를 써야 하는지에 대한 권고를 완화하도록 유도했다”며 이를 뒷받침했다.
CDC는 일부 변이에 대해서는 효과가 덜할 수 있다고 단서를 달았지만 전염성이 높고 치명률도 높은 것으로 알려진 변이 바이러스에 대해서도 일단 현재로선 백신이 매우 효과가 있다고 평가했다.
CDC의 새 지침이 나온 뒤 미국 일부 주들은 마스크 의무화를 없애고 있다. 마스크 착용 규제를 완화한 뒤 이를 수용하는 기업도 점점 늘고 있다.
대형 유통업체 월마트와 트레이더 조스, 샘스클럽, 코스트코도 14일 백신 접종자에 대해서는 마스크 착용 의무를 면제하겠다고 발표한 데 이어 커피 체인점 스타벅스와 테마파크 디즈니월드, 식료품 체인 퍼블릭스도 15일 자사 매장이나 놀이공원에서 개정된 CDC의 마스크 권고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부 기업들은 매장 내에서 여전히 마스크 착용을 권하고 있다. 애플은 애플 스토어를 찾는 고객들에게 계속 마스크 의무착용 지침을 적용하기로 했다. 메이시스 백화점, 대형 약국체인 CVS와 월그린스, 슈퍼마켓체인 앨버스톤스 등 소매업장을 운영하는 기업들은 당분간 계속해서 마스크 착용을 요구하기로 했다. 매장을 찾는 소비자 가운데 백신 접종자와 미접종자를 따로 구분하기 보다는 일괄적으로 마스크를 쓰도록 하는 것이 더 쉽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물론이고 미국 국내 감염병 전문가들과 의료 단체, 노동 단체들은 CDC 완화 조치에 부정적인 견해를 내놓고 있다.
WHO는 14일 백신 접종자에 대한 마스크 착용 의무를 해제하려는 CDC 조치에 대해 주의를 촉구했다. 마이클 라이언 WHO 긴급대응팀장은 화상 언론 브리핑에서 "마스크 의무를 해제하기를 원하는 국가의 경우 해당 지역의 전염 강도와 백신의 보급 정도를 모두 고려하는 맥락 안에서만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 감염병 전문가들도 부정적이긴 마찬가지다. 뉴욕타임스는 이달 13일 미국 내 전염병학자 723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28일부터 지난 10일까지 마스크 착용 문제를 놓고 설문 조사한 결과 80%가 불특정 다수와 함께 있는 실내에서는 앞으로 적어도 1년간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나타냈다고 전했다. 이는 백신 접종 완료자는 마스크를 대부분 쓰지 않아도 된다고 권고한 미국 보건 당국과는 차이가 나는 견해다.
감염병 학자들은 앞으로 얼마나 오랜 기간 마스크를 착용할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에 26%가 '특정 환경에서 계속'이라고 답했다. '1년 이상'이라는 응답자는 26%, '1년'은 29%를 차지했다. 최소 '6개월'간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는 응답자도 15%나 됐다.
미국 최대 간호사 노동조합인 전미간호사노조(NNU)는 15일 성명을 내고 “CDC의 새 지침은 그간의 예방 조치를 역행하는 조치”라며 “이번 조치는 바이러스와 전염병에 맞서기 위한 그간 노력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비판했다.
단체는 성명에서 “백신 접종은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는 데 매우 중요하지만 여전히 수천만 명의 미국인이 아직 예방 접종을 받지 않았다며 “이번 조치가 과학에 근거한 것이 아니며 일선 근로자와 일반 대중의 건강을 위협하고 유색인종에게 차별적인 요소가 있다”고 지적했다. 단체는 “마스크는 노동자와 또 다른 생명을 구하는 보호막"이라며 ”여전히 우리는 100년 만에 가장 심각한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의 한가운데에 있으며 지금은 방역 지침을 완화할 때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전미식품·상업노동자노조(UFCW)는 CDC의 새 지침이 백신을 맞지 않았지만 마스크 쓰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빈번하게 노출되는 필수 노동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려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이런 가운데 존스홉킨스대가 운영하는 코로나19 상황판에 따르면 13일 미국 내 신규 확진자는 이날 3만8108명, 하루 사망자는 476명으로 나타났다.
현장에선 일일이 접종자와 비접종자를 신속히 가려내는 방법이 마땅치 않아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개인의 양심과 자율에 맡기는 자율 시행 방식으로 하겠다”며 "우리는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을 체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태 기자 kun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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