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고혈압이 남성보다 더 위험하다?

권대익 2021. 5. 16.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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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경 후 여성 고혈압 급증..조절률 낮고 합병증 많아
여성은 폐경이 되면 혈압이 올라가면서 65세를 넘기면 남성보다 고혈압 유병률이 훨씬 높아진다. 게티이미지뱅크

'여성에게 나타나는 고혈압이 남성보다 더 위험하다'는 말이 있다. 고혈압은 남성에게 많이 나타나지만, 65세 이상에서는 여성 고혈압이 급격히 늘어나는 데다 합병증 위험도 더 높기 때문이다.

대한고혈압학회의 ‘2020 고혈압 팩트 시트’에 따르면, 국내 20세 이상에서 29%인 1,200만 명이 고혈압을 앓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고혈압은 뇌졸중ㆍ심부전 등 합병증을 일으키는 만성질환이다. 수축기(최고) 혈압이 140㎜Hg 이상이거나 이완기(최저) 혈압이 90㎜Hg 이상일 때 진단된다. 성별 유병률(2018년 기준)은 남성 28%, 여성은 18.6%로 남성 환자 비율이 대체로 높은 편이다.

그런데 연령별로 살펴보면 65세 이후에는 여성 환자가 남성보다 많아진다. 2020년 국내 고혈압 진료 환자 성ㆍ연령 자료를 보면 60대 이전에는 남성이 여성보다 많았지만 65세를 기점으로 남성 환자는 비교적 줄고, 여성 환자는 급증했다. 특히 80대 이상에서는 여성 환자가 470만891명으로 남성(186만1,507명)보다 2배 이상 많아졌다.

5월 17일은 ‘세계 고혈압의 날’이다. 대한고혈압학회(이사장 편욱범 이대서울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올해에는 ‘여성 고혈압’을 주제로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여성이 나이가 들면서 혈압이 남성보다 높아지는 것은 폐경이 되면서 혈압을 지켜주는 여성호르몬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여성 고혈압, 폐경이 주원인

여성 고혈압의 주원인으로는 ‘폐경’이 꼽힌다. 여성은 폐경 이전엔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이 혈관을 보호해 고혈압 위험을 낮춘다. 그런데 폐경이 되면 여성호르몬이 부족해져 혈관 내피 세포 기능 저하, 교감신경 활성화, 레닌 분비 및 앤지오텐신 II 증가로 이어지고, 이로 인해 혈관이 경직되면서 고혈압에 노출될 위험이 커진다.

조은주 대한고혈압학회 교육이사(여의도성모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여성은 월경ㆍ임신ㆍ폐경 등 전 생애에 걸쳐 급격한 호르몬 변화를 자주 겪는다”며 “이러한 호르몬 변화가 조금씩 혈관을 딱딱하게 만들 수 있는데 폐경 후에는 혈관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던 여성호르몬이 급격히 줄면서 고혈압 위험이 크게 높아지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했다.

여성의 경우 고혈압 치료 순응도가 비교적 낮고, 남성보다 좌심실 비대, 심부전 등 심혈관 질환 발생 위험을 비롯해 동맥경화, 당뇨병, 만성콩팥병 등 합병증 위험이 더 높다. 본인에 맞는 치료법을 찾기 위해서는 의사와 꾸준히 소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조명찬 충북대병원 심장내과 교수(전 대한고혈압학회 이사장)는 “65세가 넘으면 여성이 남성보다 고혈압 유병률이 높지만 조절률은 50%를 겨우 넘는 수준”이라며 “고혈압 조절률을 높이려면 치료 순응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여성 고혈압 환자는 남성과 달리 우울 증세와 의료진과 관계 설정이 고혈압 치료 순응도에 영향을 미친다. 심혈관계 약물 부작용도 여성이 남성보다 1.5~1.7배나 많이 생겨 더 주의해야 한다.

조명찬 교수는 “이런 모든 특이점에도 불구하고 고혈압 치료는 심혈관 질환 예방과 사망률 감소에 매우 중요하다”며 “여성 고혈압은 합병증 위험이 더 크므로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혈압은 뇌졸중ㆍ심부전 등 생명을 위협하는 합병증을 일으킬 수 있지만, 뚜렷한 자각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손일석 대한고혈압학회 홍보이사(강동경희대병원 심장혈관내과 교수)는 "따라서 평소 혈압을 자주 측정하고, 관리하는 습관을 들여야만 고혈압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증상도 거의 나타나지 않는 고혈압이 위험한 것은 합병증 때문이다. 높은 혈압은 심장에 부담을 주고 이를 견디기 위해 심장 벽이 두꺼워지고 커져 목숨을 앗아가는 심부전으로 악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고혈압으로 혈관이 손상되면 동맥경화가 된다. 국내의 3대 사망 원인인 암ㆍ심장ㆍ뇌혈관 질환 가운데 두 가지가 고혈압 때문에 생길 수 있다.


◇덜 짜게 먹고, 적절한 유산소 운동해야

세계보건기구(WHO)의 하루 소금 섭취 권고량이 5g인데 한국인은 하루 10g 정도의 소금을 섭취한다. 고혈압 환자가 소금 섭취를 절반만 줄여도 수축기 혈압이 4∼6㎜Hg 떨어지는 효과가 있다.

체중 감량도 고혈압 관리에 중요하다. 특히 복부 비만은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당뇨병, 관상동맥 질환으로 인한 사망과 매우 밀접하다. 표준 체중의 10%를 초과하는 고혈압 환자가 5㎏만 체중을 줄여도 혈압이 눈에 띄게 떨어진다.

손일석 교수는 “고혈압이라고 해도 고혈압 약을 반드시 먹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정상 혈압(120/80㎜Hg 미만)과 고혈압(140/90㎜Hg 이상)의 중간 단계에 있으면 소금 섭취를 줄이고 적절한 유산소 운동을 통한 체중 조절과 금연ㆍ절주 등 생활 습관을 잘 관리해 혈압을 조절해야 한다”고 했다.

물론 심장 비대나 심부전ㆍ만성콩팥병처럼 고혈압으로 인한 합병증이 심각하다면 고혈압 약을 먹어야 한다. 생활 요법을 잘하면 혈압을 더 떨어뜨릴 수 있기에 약 복용량을 줄일 수 있다.

고혈압을 치료하자면 먼저 자신이 고혈압(수축기/이완기 혈압 140/90㎜Hg 이상)인지 알기 위해 평소 혈압을 측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가정용 혈압계를 이용해 아침에 일어났을 때와 잠자기 전 등 하루 2회씩 혈압을 측정하는 게 좋다.

손일석 교수는 “고혈압 환자 가운데 진료실과 가정에서 재는 혈압 차이가 클 때가 많으므로 가정 혈압을 잘 측정해야 한다”고 했다. 최근 일정한 간격으로 측정한 혈압이 꾸준히 135/8㎜5Hg를 넘는다면 진료를 받는 것이 좋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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