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24시] 쿼드, '홍길동식 외교'로는 안 된다

여론독자부 2021. 5. 16.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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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천 서강대 국제정치학 교수
다양한 소규모 협의체서 이미 활동
中 정부가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美濠 군사훈련도 올 7월 참가 예정
'안한 척' 대응 더 이상 고집 말아야
김재천 서강대 교수
[서울경제]

“한국이 쿼드(Quad)에 가입해야 하나요?” 며칠 전 기업인들과 함께한 워크숍에서 받은 질문이다. 예기치 못한 질문보다 필자를 더 당혹스럽게 한 것은 ‘가입’이라는 단어의 선택이었다. 지금 쿼드를 둘러싼 한국 사회의 담론은 쿼드가 마치 한국이 원하면 가입할 수 있는 기구 또는 제도로 다루는 경향이 있다. 일부 언론과 학자들의 책임이다. 이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정치인들의 책임이기도 하다. 야당의 한 전직 대표는 쿼드 4국(미국·일본·인도·호주)에 한국을 더해 “5각 동맹 체제 ‘펜타(Penta)’로의 전환을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가능성이 희박한 정치적 발언이다.

첫째, 쿼드는 느슨한 형태의 안보 협의체다. 지난 2004년 동남아 쓰나미 피해 복구를 위해 4국이 쓰나미 코어그룹을 발족했는데, 이 그룹이 우여곡절 끝에 안보 협의체로 진화했다. 제도화가 거의 돼 있지 않고 이제 처음 ‘말라바르’ 해상 훈련과 온라인 정상회의를 같이했을 뿐이다. 쿼드가 중국 견제의 성격을 띠고 있음은 분명하다. 한때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는 쿼드를 지역 동맹으로 발전시키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하기도 했다. 강력한 위협 인식의 공유는 동맹 체결의 필수 조건이다. 하지만 중국에 대한 4국의 인식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쿼드가 동맹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낮다.

둘째, 그럼에도 4국은 근 20년 동안 상호 교류를 통해 체득한 쿼드의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다. 필자가 속한 ‘84·5’는 다양한 전공의 84학번 교수 5인의 모임이다. 6인 또는 7인이 모일 때도 있지만 10년 된 이 모임이 ‘84·6’이나 ‘84·7’로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친목 단체에 가입하는 데도 구성원의 동의가 필요하고 한 명의 비토만 있어도 불가능한데, 쿼드가 느슨한 안보 협의체지만 가입이 한국의 뜻대로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셋째, 그렇다면 결국 문제의 핵심은 한국이 쿼드와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협력’할 것이냐다. 조 바이든 행정부의 신(新)인도태평양전략이 쿼드를 중심으로 전개될 것임은 확실하다. 하지만 쿼드를 ‘펜타’나 ‘헥사(Hexa)’로 확장하기보다는 쿼드 국가 일부와 비(非)쿼드 국가들이 협력하는 다양한 소(小)다자주의 협의체 활동을 증진·유도·강화하는 보다 현실적인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박재적 한국외대 교수의 지적대로 바이든의 쿼드 전략은 ‘쿼드 플러스 알파’보다는 ‘쿼드 마이너스 앤드 플러스 알파’ 형식을 띠고 있다. 실제로 쿼드 국가와 비쿼드 국가는 자국의 특장(特長)과 이익을 고려해 이슈별로 다양한 조합의 소다자주의 협의체를 창출해 협력하고 있고 ‘쿼드 플러스’는 이러한 다양한 소다자주의 협력을 지칭하는 용어로 통용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한국은 이미 쿼드에 참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다양한 조합의 소다자주의 활동, 즉 쿼드 플러스에는 분명히 참여하고 있다. 중국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군사 분야에서도 한국은 미국 외에 호주·인도와 외교·국방장관 2+2 채널을 가동해왔고 호주와는 ‘해돌이-왈라비’ 연합 군사훈련을 진행해왔다. ‘탈리스만 세이버’는 미국과 호주가 주도해온 대규모 정례 연합 군사훈련이다. 일본과 뉴질랜드도 참여한 적이 있는데, 국방연구원의 한 연구원에 의하면 한국도 올해 7월 이 훈련에 참여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한국이 이미 참여하고 있는 다양한 분야의 쿼드 소다자주의 협의체 활동은 찾아보면 꽤 많다. 바이든 행정부가 한국에 쿼드 가입을 종용했을 리는 만무하지만 이러한 소다자주의 협의체에 더 적극적으로 협력해달라고 권유했을 것임은 자명하다.

진짜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미국으로부터 쿼드 참여에 대한 공식 요청을 받은 적도 없고, 따라서 협의한 적도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며 용어의 혼란 뒤에 비겁하게 숨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이미 쿼드에 참여하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이런 홍길동식 외교로는 미중 경쟁의 거친 파고를 헤쳐나갈 수 없다.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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