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중앙은행 물가 정책은 실패한 것일까

한겨레 2021. 5. 16.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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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4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2008년 이후 최고치이자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전년동월 대비 4.2%로 발표되자, 글로벌 증시가 충격을 받고 있다. 발표 며칠 전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시장금리가 현재 경제 상황에 비해 낮은 것 같다는 언급을 하면서 물가가 높을 것이라는 우려가 미리 반영되기 시작했지만, 막상 수치를 보고 난 이후에도 증시는 더 떨어지고 있다. 금리 움직임에 민감한 기술주 위주의 미국 나스닥 지수는 최근 사흘간 5% 하락했고, 우리나라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도 같은 기간 4% 남짓 떨어졌다.

이처럼 증시가 물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코로나19 이후 시작된 주가 상승의 주된 이유 중 하나가 중앙은행의 초저금리 정책과 유동성 공급이었기 때문이다.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은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줬고, 코로나19의 충격에 대응한 재정정책의 부담을 덜어줬으며, 증시로의 자금 이동을 부추겼다. 그런데 물가가 오르면 금리가 같이 오르면서 이러한 효과들이 되돌려질 수 있으니, 투자자들의 불안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물론 미국 중앙은행은 최근까지도 이번 물가 상승이 단기적인 것이며, 시간에 걸쳐 안정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기존의 완화적 정책을 유지할 것이라 주장해 왔다. 당장 이번 4월 소비자물가 발표 이후에도 미 연준 부의장은 높은 수치이긴 하지만 일시적일 것이라고 밝혔다. 입장의 변화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증시가 영향을 받은 것을 보면 투자자들은 이제 미국 중앙은행이 잘못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듯하다. 말하자면 정책 실패에 대한 우려다. 정말 미국 중앙은행은 실패한 것일까?

사실 중앙은행의 성공과 실패를 평가하는 일은 쉽지 않다. 실패라고 평가되는 경우에도 ‘그렇게 대응하지 않았으면 더 나빠졌을 것’이라거나, ‘그 당시의 상황은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가와 고용, 나아가 금융시장의 안정을 중앙은행의 목표라고 보면,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던 경우를 여러 번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2008년 금융위기는 낮은 물가를 이유로 장기간 유지한 저금리로 인해 부동산 시장에 큰 거품이 생겼고, 이것이 터지면서 발생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중앙은행만의 실패였다고 볼 순 없지만, 전혀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긴 어렵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미국 중앙은행의 실패를 논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결과적으로는 그들의 판단이 더 옳았던 것으로 판명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최근 높은 물가 상승률에도 불구하고 향후 물가 궤적에 대한 판단이 타당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분명 현재의 물가는 높고 2분기 중 이보다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기저효과가 작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코로나19에 따라 일부 원자재나 제품에서 수급 불일치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집단 면역이 진행됨에 따라 이러한 효과는 점차 수그러들 가능성이 크다. 즉, 코로나19에 따른 이동 제한과 소득 상위 계층의 내구재 소비 증가, 재고 확보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은 반대로 전염병으로부터 벗어나면 잦아들 것으로 보인다.

현재 증시와 부동산 시장 등 자산시장에, 터지면 큰 충격을 줄 만한 거품이 끼어 있다고도 생각되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큰 거품이 존재하며 곧 터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미국 부동산 가격상승률이 빨라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과거 2008년 금융위기 전 상승과 비교해 보면 지금은 부동산 가격상승의 초기 단계 수준일 뿐이다.

백신 접종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가운데 올해 중 집단 면역이 형성되면, 작년 이후 계속되어 온 불균형적이고 정부 의존적인 경제는 정상화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비정상적인 정책도 되돌려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정상화가 되었을 때도 지금과 같은 통화, 재정정책을 지속하면 미국 중앙은행의 실패 가능성은 당연히 커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완화적 정책하에서도 높은 물가나 자산가격 급락이 경제와 금융시스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투자자들도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미국 중앙은행의 실패 위험을 너무 앞서서 생각하는 것은 투자의사 결정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최석원 ㅣ SK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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