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그룹, 美 40조 투자 초읽기..정치 논리 vs 장기적 시너지

주명호 기자 2021. 5. 16.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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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현대차, SK, LG 등 4대 그룹이 대대적인 미국 투자를 준비한다. 계획하거나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 투자 규모가 총 40조원에 육박한다. 반도체, 배터리 등의 현지 생산에 나서겠겠다는 방침이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 수요를 잡겠다는 이유가 크지만 반도체·배터리 공급망 강화를 내세운 조 바이든 행정부의 이른바 '바이 아메리칸' 정책에 대한 선제 대응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역대 최대 수준의 투자 발표는 미중 패권경쟁의 틈바구니에 낀 대한민국의 정치역학 구도를 드러내는 상징적인 장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 20조원 규모 파운드리 공장 증설 검토…20일 반도체 회의 주목
(서울=뉴스1) 황기선 기자 = 삼성전자가 연결재무제표 기준으로 2021년 1분기 매출액이 65조388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8.19% 증가했다고 지난달 29일 공시했다. 이는 역대 삼성전자의 1분기 매출액 기준으로 사상 최대치에 해당된다. 사진은 이날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의 모습. /뉴스1

16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오는 20일(현지시간) 미국 상무부 장관이 주재하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부족 대책회의에 참석한다. 삼성전자는 한미정상회담 하루 전날 열리는 이날 회의에서 170억(약 20조원) 규모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 증설 계획을 밝힐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의 투자 선물이 다음날 예정된 한미정상회담에서 윤활유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다.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회담에서 백신 공급을 포함해 북미대화, 한일 관계 등에 대한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지난달 미국 백악관이 주재한 반도체 화상 회의에 참석한 기업들이 미국 현지 투자 계획을 잇따라 내놨다는 점에서도 삼성전자가 투자 발표를 더 이상 미루긴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파운드리 업계 1위인 대만 TSMC는 360억원(약 40조원) 규모의 첨단 반도체 공장 6곳을 설립하기로 했다. 인텔은 200억원(약 22조원) 규모의 애리조나주 파운드리 공장 증설 계획을 내놨다.

SK·LG은 美현지 배터리 생산 확대…현대차그룹도 전기차 현지 생산 등 추진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지난 3월29일 서울 중구 상의회관에서 취임식을 대신해 열린 '비대면 타운홀 미팅'을 마친 뒤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SK와 LG 역시 미국 현지 배터리 공급망 확충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SK이노베이션은 미국 조지아주에 배터리 3·4공장 추가 건설을 검토하고 있다. 추가 건설이 결정될 경우 관련 투자금은 앞서 완공된 1공장과 현재 건설 중인 2공장을 포함해 총 5조원 이상이 될 전망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한미정상회담 경제사절단으로 방미길에 오른다는 사실이 발표되면서 업계에서는 추가 투자계획이 발표될 가능성이 더 커졌다고 본다. 최 회장은 미국 조지아주 배터리공장에도 들릴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쟁사인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달에 이미 미국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2025년까지 미국내 2곳에 5조원 이상을 투자해 배터리공장을 신설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별도로 미국 완성차업체 GM(제네럴모터스)과 미국 오하이오주에 총 2조7000억원 규모(LG 투자액 1조원)의 전기차 배터리 합작공장 설립 계획도 발표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지난 3월22일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사옥 로비에서 개막한 아산 정주영 20주기 추모 '청년 정주영, 시대를 통하다' 추모사진전에 나란히 전시된 포니 자동차와 포니 출시 45주년 기념 컨셉카인 45EV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현대자동차그룹도 이달 13일 미국 내 전기차 생산 및 설비확충에 총 74억달러(약 8조원)을 투자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투자 대상에는 전기차 분야 외에도 수소 인프라 구축과 도심항공교통(UAM) 연구개발, 로보틱스, 자율주행 등 미래 성장 동력 관련 분야 등이 포함됐다. 미국 앨래배마 공장 증설로 아이오닉5의 현지생산이 이뤄진 이후 다른 전기차 모델들도 차례로 생산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자발적 판단보다는 美정치논리 압박 영향 커…장기적으로 시너지 효과 기대감도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줄줄이 미국 투자에 나서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중장기 사업전략에 따른 결정으로 풀이된다. 다만 재계 안팎에서는 정치논리가 적잖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선언하면서 기업들 입장에선 이런 기조에 맞출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가 반도체나 배터리를 단순히 산업이 아닌 경제패권, 안보 등과 직결되는 산업전략으로 다루면서 기업들이 비즈니스 현안 차원에서 대응하기 어려워졌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2월 배터리, 반도체 등의 공급망에 대한 행정조사를 지시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재계 한 인사는 "미국이 자국내 공급망 안정을 이유로 투자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는 것"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기술무역 장벽 등 보이지 않는 불이익을 가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다만 미국 자체가 대형 시장인만큼 기업들이 이번 투자를 향후 시장점유율 확대 등 글로벌 사업전략 강화의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지원정책도 절실하다는 진단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관계자는 "핵심은 R&D(연구개발)인만큼 국내에서 연구·개발하고 해외공장에서 생산하는 이원화 체제를 갖출 필요가 있다"며 "정부도 국내 인력 확충 등을 지원할 수 있는 정책 마련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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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명호 기자 serene84@mt.co.kr, 오문영 기자 omy0722@mt.co.kr, 최민경 기자 eyes00@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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