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제국 시절 유대인이 산 땅이니 나가라"..이-팔 갈등 뒤에는 유대인 정착촌 확장 정책

정유진 기자 2021. 5. 16.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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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7년 만에 또 다시 대규모 사상자를 낳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충돌은 더 이상 놀랍거나 새로운 사태가 아니다. 이번 전쟁은 하마스의 로켓으로 시작됐지만, 그 원인에는 최근 들어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이스라엘의 공격적인 유대인 정착촌 확장 문제가 있다.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았을 갈등이 동예루살렘의 셰이크 자라에 세워진 유대인 정착촌에서 팔레스타인인 수십명을 강제 퇴거 시키겠다는 결정이 내려지자 이를 계기로 폭발한 것 뿐이다.

가자지구 도심 건물에서 화염이 치솟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이스라엘의 공습 후 가자지구의 구조대원들이 무너진 건물 아래 깔린 생존자와 시신들을 끌어 올리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3월 유럽연합(EU)이 발표한 보고서와 알자지라 등에 따르면, 2020년 현재 이스라엘 유대인 인구의 약 10%에 달하는 65만~75만명 가량이 국제법 상 팔레스타인의 영토에 해당하는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의 유대인 정착촌에서 살고 있다.

정착촌은 이스라엘 정부 혹은 정부의 지원을 받은 우파 단체들이 팔레스타인 마을과 사유지에 지은 마을을 말한다. 서안지구에서 가장 큰 유대인 정착촌은 인구가 무려 7만명에 달한다. 유대인 병원과 대학까지 갖추고 자신들끼리 시장까지 선출한다.

이번 사태의 화약고가 된 동예루살렘에는 22만명의 유대인이 살고 있다. 유대인이 장악한 면적은 동예루살렘의 86% 가량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34만명에 달하는 동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인들은 나머지 좁은 공간에 몰려 살 수밖에 없다.

이는 국제법 상 엄연한 불법이다. 1967년 3차 중동전쟁을 일으킨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영토였던 서안지구와 가자지구, 동예루살렘을 모두 점령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점령지에서 철수하라는 결의문을 발표했지만, 이스라엘은 아직도 동예루살렘을 돌려주지 않고 불법 점령한 상태다. 무력으로 점령한 곳에 정착촌을 짓고 자국민을 이주시키는 것은 제네바 협정 위반이다.


이스라엘은 서안지구에 있는 팔레스타인 사유지를 빼앗기 위해 군사력을 동원하는 것은 물론 오스만 제국을 비롯해 과거 영국·요르단 식민지법까지 끌어들여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은 이번 사태를 촉발시킨 셰이크 자라의 유대인 정착촌 땅이 19세기 오스만 제국 시절 유대인들이 지주에게 돈을 주고 사들인 땅이었다는 등의 근거를 들며 점령지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건국되기도 전인 오스만 제국 시절에는 토지 소유 관계가 제대로 등록되지 않은 땅이 대부분이었다. 팔레스타인과 예루살렘 지리 전문가인 칼리 토파지는 “터키 앙카라에 가서 오스만제국 시절의 자료를 뒤져 동예루살렘 정착촌 땅의 소유권이 이스라엘에 없음을 증명하는 문서를 찾았지만, 이스라엘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알자지라에 말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은 셰이크 자라 유대인 정착촌을 토지 분쟁 문제처럼 보이게 하려 하지만, 이것은 명백한 약탈”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미국에 도널드 트럼프 정권이 들어선 후부터 더욱 공격적인 정착촌 확장 계획을 추진해 오고 있다. 2017년에는 신규 정착촌 건설 사업을 20여년 만에 재개했다. 1993년 오슬로 협정에 서명한 후에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신규 건설을 중단하고 기존 정착촌을 확장하는 방식을 택해왔지만, 이제는 아예 노골적인 확장 정책에 나선 것이다. EU 보고서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에 5500여가구, 다른 서안 지구에 9200여 가구를 정착촌에 입주시키겠다는 계획을 지난해 상반기에 발표했다.

붉은 선이 팔레스타인의 영토를 가리키는 국경선이고, 보라색은 그 안에 지어진 유대인 정착촌을 가리킨다. 노란 색은 팔레스타인 마을 지역이다. |자료: 유엔·알자지라


유대인 정착촌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일상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 무장경비대의 감시와 호위를 받는 유대인 정착촌은 팔레스타인 마을의 연결을 끊어 놓는 위치에 지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에 사는 팔레스타인인들은 곳곳에 들어선 정착촌과 검문소 때문에 자신의 올리브 농장이나 경작지에 가는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대인 정착민들의 폭력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팔레스타인 마을의 주택과 자동차 등에 돌을 던지거나 팔레스타인인들의 주요 생계 수단인 올리브나무를 뽑는 일도 흔하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1967년 이후 250만 그루의 올리브나무가 정착민의 공격으로 뽑혀나갔다.

반복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충돌을 막기 위해서는 국제사회가 이스라엘의 불법적인 유대인 정착촌 확장에 제동을 거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번에도 “양측은 공격을 중단하라”고 촉구하기만 했을 뿐, 이번 사태의 원인이 된 셰이크 자라의 유대인 정착촌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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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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