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세 가지 모습의 실리콘밸리

김한식 2021. 5. 16.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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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는 미국 첨단산업, 특히 정보기술(IT)과 벤처기업이 모여 있는 곳이다. 반도체와 소프트웨어(SW) 등 수많은 벤처기업이 탄생한 실리콘밸리는 그 자체가 하나의 대명사처럼 돼 있다. 필자는 '기술혁신 도시' 실리콘밸리를 떠올리는 세 가지 각기 다른 경험을 했다.

첫 번째는 2018년에 주마간산이지만 직접 본 실리콘밸리다. 기술 발표 차 실리콘밸리를 방문했다가 스탠퍼드대 인근 스타트업 지원기관에 잠시 들렀다. 내부가 잘 들여다보이는 20여개 회의실에서 기술 소개와 투자설명회(IR) 등이 바쁘게 진행되고 있었다. 북적대면서도 조용하고 차분하면서도 역동적인 인상을 받았다.

두 번째는 2019년에 서울 모처에 신설된 실리콘밸리형 창업 및 기업 지원기관 설명회다. 이 설명회에는 지방 10여개 기업이 참석했다. 지원사업 소개를 듣고 잘 꾸며진 회의실과 소파, 커피 추출기 등 편의시설을 둘러봤다. 정부의 많은 예산이 투입됐다는 담당자 인사말과 함께 지원사업 소개를 포함해 채 30분도 걸리지 않은 시간이었다. 행사를 마치고 광주로 내려오는 기차 안에서 1년 전인 2018년에 잠깐 스친 북적거림과 역동성으로 대변되는 실리콘밸리가 떠올랐다. 물론 서울의 건물과 공간, 편의시설은 좋았지만 너무 외형에 집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는 광주시에서 실리콘밸리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 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 투자설명회(IR)에 참여한 2019년 때다. 10여개 기업이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가운데 절반 정도가 수도권 소재 인공지능(AI), 핀테크 등 첨단기술 기업이었다. 실리콘밸리처럼 국내 IT 기업이 대거 몰려 있는 경기 성남시 판교에나 있을 것 같은 기업들이 광주라는 '지역'에서 열리는 IR에 참석한 것이 좀 의아했다. 지원기관의 지속적인 노력 덕분인지 수도권 소재 40여명의 투자심사역이 참석했고, 꽤 높은 열기가 느껴졌다. 수도권 기업들이 대거 참여한 광주 IR 행사에서는 2018년에 본 실리콘밸리의 역동성을 경험할 수 있었다.

광주지역에서 이러한 투자 환경을 조성하기까지 다양한 지원기관의 구성원들이 오랜 시간과 함께 노력을 많이 했을 것이다. 결국 실리콘밸리도 판교도, 광주를 포함한 지역도 중요한 것은 투자와 기업 육성을 위한 기업 지원기관의 열정이라고 깨달았다.

그해 서울에서 10여명의 벤처캐피털 심사역 등을 대상으로 회사 보유 기술 발표회가 있었다. 기술 발표를 마치자마자 한 참석자가 “그것이 광주에서, 지역에서 가능해요”라고 반문했다. 만약 “대표님 회사에서 그것이 가능해요”라고 물었다면 '지역 중소기업 연구개발(R&D) 인력이 대단하지 않을 텐데 그것이 가능해요'라는 뜻일 수도 있겠지만 분명 '광주'에서, '지방'이어서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 담긴 질문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자체 보유한 연구 인력풀은 여전히 부족합니다만 광주R&D특구에는 광주과학기술원(GIST),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한국전자기술연구원(KETI) 등 전문 연구기관이 중소기업의 부족한 기술적인 부분을 많이 채워 주고 있습니다”라고 답변했다. 그럼에도 지방보다는 더 좋은 인력과 기술이 여전히 서울 등 수도권에 집중돼 있으니 더 이상 장황하게 설명하기 어려웠음을 솔직히 인정한다.

1990년 후반의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2008년 외환위기 등 위기 때마다 지역산업이 붕괴하면서 많은 가장과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났다. 이제는 아무도 경험해 보지 못한 코로나19 시대에 또다시 많은 지역산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망을 찾아 수도권으로 떠나게 될지, 묵묵히 견디고 있는 지역 기업들은 여전히 “그게 지방에서 그게 가능해요”라는 질문을 받아야 할지 걱정이 앞선다.

수도권 과밀화를 막고 균형 발전을 위해서라도 지역산업에 좀 더 많은 R&D 예산이 투입되길 희망한다.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역 산업과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애쓰고 있는 지역의 기업지원기관 모든 분께 감사하다는 말씀도 드리고 싶다.

최용원 링크옵틱스 대표 won@linkoptic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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