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파 우짜냐, 밥 해줄게"..소원 이룬 5·18 주먹밥 어머니들
"빨갱이 도왔다 손가락질도" 눈시울 붉혀
(광주=뉴스1) 이수민 기자 = "하이고, 오늘 소원이 다 이뤄졌어요. 잘해 놓고도 평생을 무서워서 꽁꽁 숨어 있었당께…."
제41주년 5·18민주화운동을 이틀 앞둔 16일 오후 2시쯤 광주 서구 양동행정복지센터에는 70·80대 노인 9명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1980년 5월 당시 양동 노점상인으로 일한 일명 '주먹밥 어머니들'.
당차고 강인했던 41년 전 우리네 어머니들은 눈가에 주름이 깊게 파인 할머니로, 처음으로 주먹밥을 만들었던 이름없는 방앗간 터는 양동행정복지센터로 변해 있었다.
41년 전 그날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빨간 양동이를 꺼내 온 이영애 어머니(79)의 코 끝이 붉어진다. "참 많이도 변했네, 그제?"
당시 30대였던 이 어머니는 양동 길가에서 과일 노점을 했다. 그는 어느 날 한 시민군을 만난 뒤로 자신들의 삶이 바뀌었다고 했다.
날이 덥던 1980년 5월 어느 날. 장사를 게시하려는데 도로 위 한 차량 위에 올라 탄 시민군이 "독재 타도! 전두환 물러가라!"를 외쳤다.
눈이 딱 마주쳤을 때 그가 차에서 뛰어 내려 자신에게 다가왔다. 그는 "어머니 물 좀 갖다주소. 배고파 죽겄소"라고 말했다.
자식같이 안쓰러운 모습에 "전두환이가 누구당가?"하고 물었더니 "아니 그노마가 공수부대를 들여 갖고 광주 사람들을 다 죽여불라고 한당께요"하고 대답했다.
"오메, 우짰을까… 여까지도 오고 그려? 그려도 밥은 먹고 해야제" 걱정이 앞선 이영애 어머니는 그날부터 주변 노점상인들과 함께 돈을 한 푼씩 걷어 쌀을 사 주먹밥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어머니는 당시를 회상하며 "우리는 이러고 살지만 학생들은 민주화를 이룬 세상에서 편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 하나로 겁도 없이 돕게됐다"고 설명했다.
양동 어머니들은 방앗간에 함께 모여 밥을 찌고 주먹밥을 만들어 리어카에 실었다. 한 가마는 도청으로, 반 가마는 전남대학교로…, 밥을 해주고 나면 다음날 "감사하다" 인사하는 시민군의 모습에 뭉클했다.
어제 봤던 그 얼굴이 오늘 인사를 하러 오지 않으면 '혹시나' 무슨 일이 생겼을까 늘 전전긍긍하기도 했다. 그렇게 41년이 지났다.
그러나 어머니들은 이 뿌듯한 사연을 입 꾹 닫고 수십 년간 혼자서만 간직했다.
5월 항쟁기간이 끝나고도 몇 년간 공수부대가 주먹밥 어머니들을 찾아 응징할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 어머니는 "빨갱이한테 밥 해준 년들을 찾아 때려 잡는다고 했어. 어디가서 말도 못하고 쭉 숨기고 살았어"라며 "해코지하겠다는 말이 파다하게 돌았어.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도 빨갱이라고 했다지"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이제야 사람들이 알어. 우리가 빨갱이 도운 거 아니고, 의로운 일 했단 거. 그때는 아무도 몰랐어. 근데도 자식새끼 지킬 생각에 어디가서 고함도 못 치고, 부정도 못 하고 눈 뒤집혀서 답답한 속으로 살았제"하고 토로했다.
이 어머니의 회상이 끝나고 오월 어머니들은 주먹밥 만들기 재현에 나섰다. 빨간 가마니에 밥을 넣고 소금을 친 뒤 둥글게 말아 사과 상자에 담는다.
어머니들의 손길이 하나같이 빠르다. "어머니, 왜 이렇게 급하셔. 앉아서 천천히 보여주세요"했더니 "그때는 다 이랬어, 급하게. 한시가 다 급하니께 그렇제"라고 대답한다.
주먹밥이 한 상자를 가득 채웠을 때 쯤. 한숨을 돌린 어머니들의 팔과 머리카락에는 밥풀이 하나씩 붙어 있다. 그날의 다급함이 절로 느껴진다. "아이고, 우리는 아직도 이러네" 밥풀을 손으로 떼어먹는 어머니들이 이제야 껄껄 웃는다.
김정애 어머니는 "그때의 우리를 기억해주고 하니 소원을 다 이룬 것 같제. 오늘이 평생에 가장 기쁘다"며 "늘 숨어있고 말도 못하고 했는데 빨갱이 아니고, 나쁜 사람 아니고… 우리도 우리 자리에서 민주화운동 애썼단 거. 그거 하나만 알아줘"하고 울먹였다.
41주년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 관계자는 "1980년 당시 가장 먼저 주먹밥을 나누며 민중정신을 실행하신 어머니들을 기억하고자 행사를 추진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오늘의 행사를 계기로 어머니들 각각의 스토리텔링을 담아 앞으로 42주년, 43주년 등 매년 주먹밥 어머니를 초청하고 싶다"며 "이들의 사연을 모아 '광주주먹밥기념관'을 건립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breat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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