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1분만에 MRI 뇌구조 분석, 치매 등 뇌질환에 도전
[경향신문]
“치매를 앓는 할머니를 보살피려고 가족이 귀농했다. 사랑하는 가족의 건강이 점점 나빠지는 걸 눈으로 봐야 하는데 손 쓸 방법이 얼마 없는 것이 힘들다. 치매는 결국 인격의 변화를 수반하기 때문에 가족이 겪는 정신적 고통도 상당하다.”(빈준길 뉴로핏 대표)
대학원에 진학해 기술창업을 준비하던 빈준길 대표가 뇌과학과 치매와 뇌졸중 등 뇌질환 치료 연구에 관심을 두게 된 건 할머니의 영향이 컸다. 지난 4월 26일 서울 강남구 역삼로에 있는 뉴로핏 사무실에서 만난 빈 대표는 “치매로 고통받는 할머니를 보면서 치매를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로 여겼고, 이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으면 사업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광주과학기술원(GIST) 바이오컴퓨팅랩에서 뇌과학을 함께 연구하던 선배였던 김동현 박사(CTO·최고기술책임자)와 함께 2016년 3월 뉴로핏을 창업했다. 창업가의 꿈을 갖고 있던 빈 대표와 뇌 연구를 계속하고 싶었던 김 CTO의 합이 맞았다.
치매 앓는 할머니 보며 창업 목표 세워
뇌 신경과 예언자라는 뜻이 합해진 사명은 지금까지 눈으로 볼 수 없었던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보여주고, 뇌질환 치료를 안내해주는 길라잡이가 되자는 의미에서 지었다. 인공지능을 이용해 자기공명영상(MRI)에서 뇌 구조 정보를 추출하고 이를 컴퓨터 뇌모델로 복원해 전기자극 치료의 효과를 분석하는 기술을 연구해온 창업자들은 이 역량을 토대로 핵심 기술인 ‘뉴로핏 세그엔진(Neurophet SegEngine)’을 개발했다.
딥러닝에 기반해 뇌영역을 97개로 구획화하고 영역별 구조 정보를 분석해 퇴행성 뇌질환과 관련한 비정상적인 위축, 구조 변화와 해부학적 비대칭성을 분석할 수 있는 제품이다. 뇌 구조 분석에 수시간이 걸리던 기존 제품에 비해 1분이라는 초단시간에 구획화하고, 20% 넘던 결과 오류율도 1.3%대로 크게 줄였다. 이 엔진을 토대로 뇌영상 분석 소프트웨어 ‘아쿠아’, 뇌전기 자극효과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 ‘테스랩’, 미세 직류 전류로 뇌를 자극해 비정상적 뇌기능을 조절하는 뇌자극 기기인 경두개직류자극기기 ‘잉크’ 등을 개발했다. 이제 만 5년을 맞아 글로벌 진출과 기업 상장까지 내다보고 있다.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2019년 65세 이상 인구 중 추정 치매환자는 84만명으로 치매 유병률은 10.33%이다. 65세 노인인구 10명 중 1명은 치매를 앓고 있다는 뜻이다. 빈 대표의 할머니 역시 여기에 포함된다. 빈 대표의 할머니는 치매 증상이 10년 넘게 진행된 상황이라 새로운 치료법을 적용하기엔 이미 시간이 많이 늦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대신 할머니를 진료한 서울 여의도성모병원의 임현국 교수와 치매·뇌졸중 치료 가이드 소프트웨어를 적용하는 연구를 지금껏 함께하고 있다.
치매는 의학적으로 병이 아니라 증상의 상태를 설명하는 포괄적인 단어이다. 치매에 걸리면 건망증이 심해지거나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는 등 일반적으로 인지기능에 문제가 생긴다. 치매 진단은 이런 인지기능 검사에서 시작한다. 병원을 찾아 언어능력과 기억력, 지각력을 측정하는 검사를 시험문제 풀 듯 본 후에 인지기능에서 한 항목이라도 동일 연령대에 미달하면 ‘경도인지장애’ 판정을 받는다. 경도인지장애는 아직 치매는 아니지만 치매로 발전할 고위험군으로 간주된다.
인지기능 저하의 원인은 다양한데 치매일 수도, 우울증이 원인일 수도 있다. 뇌전증이나 파킨슨의 초기증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지기능 저하의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려면 반드시 MRI를 촬영해 의사의 눈으로 감별검사를 해야 한다. 치매의 경우 해마와 내측측두엽의 위축이 도드라진다. 빈 대표는 “특히 전체 치매환자의 70~80%를 차지하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리면 기억과 사고가 점진적으로 위축되는데 100%의 확률로 해마 위축이 일어난다”며 “반면 인지기능에 문제가 있어 MRI를 찍었는데 해마와 내측측두엽이 정상 범위에 있다면 알츠하이머병보다 다른 종류의 치매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인지기능 검사 결과가 좀더 인격과 성격의 변화를 보여준다면 전두측두엽성 치매일 가능성이 높은 식이다.
이때 뇌 신경퇴화를 분석하는 뉴로핏 아쿠아를 이용하면 MRI 감별진단을 의사의 시각에만 의존할 경우에 비해 신속하고 정확한 진단이 가능하다. 인공지능으로 뇌를 구획화해 영역별 부피를 정확히 수치화하고 어느 영역이 어느 정도 위축이 됐는지를 빠른 시간에 보여주기 때문이다. 빈 대표는 “기존에는 인지기능 검사를 한 후 진료를 보기 전 약 5분 정도 영상을 봤다고 한다. 우리가 산출한 결과를 의사에게 제공하면 눈으로 보지 않아도 실제 부피가 얼마이고, 동일한 연령과 성별의 정상 범위에 들어가는지 안 들어가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냥 정상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왜 정상이고, 문제가 있다면 어디가 문제가 있는지 시각적으로도, 수치로도 정확히 표현하기 때문에 훨씬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설명할 수 있다. 그래서 의사도 편하지만 환자의 만족도도 높다. 초기 위축이 아주 경미한 수준부터 다양한 치매 패턴을 분석할 수 있어 위험 징후를 조기에 찾을 수 있다. 이런 장점 때문에 현재 여의도성모병원, 은평성모병원 등 12개 의료기관에서 아쿠아를 도입했고, 한국의료재단의 검진센터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뇌구조 분석기술, 다양한 뇌질환에 응용
뇌구조를 수치화하는 기술은 뇌위축과 관련한 모든 질환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빈 대표는 “뇌가 딱딱해지면서 쪼그라드는 다발성 뇌경화증을 비롯한 다양한 병변 분석기술로 확장하고 있다”면서 “뇌혈관 퇴화가 되면 MRI 영상에서 밝게 나타나는데 이를 분석하거나 뇌 미세출혈이나 뇌졸중 관련한 분석기술도 개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그엔진을 이용할 경우 단순 흑백 사진인 MRI를 디지털 정보로 변환해 3차원(3D) 모델로 복원할 수 있고, 뇌과학적 모델링이 가능해진다. 이를 이용해 뇌의 어느 부위에 전기나 자기 자극을 가하면 가장 좋은 치료 효과를 낼지 안내할 수 있다. 뉴로핏 잉크와 테스랩, 뇌 자기자극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인 뉴로핏 티엠에스랩이 하는 역할이다. 뇌는 뉴런이 전기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작동하는데 전기신호 전달이 너무 활성화되면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같은 문제가 생기고, 너무 비활성화되면 우울증 같은 증상들이 나타난다. ‘전자약’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경두개 직류자극술은 두피로부터 약한 전류(2㎃)를 두뇌에 전달해 뇌기능을 조절하는 치료법이다. 우울증, ADHD 등 다양한 뇌질환을 치료하거나 개선하고, 뇌졸중 재활 시 운동능력 회복에 도움을 주는 등 안정성과 효과를 인정받고 있다. 약물 내성이 있는 환자에게도 효과를 보이고, 기존 치료와 병행했을 때 치료효과가 증가하는 장점이 있어 GSK나 존슨앤드존슨 등 관련 기업이 주목하고 있다.
뉴로핏의 뇌 정밀자극 플랫폼은 해당 질환과 관련된 뇌의 영역에 적절한 전류를 흘려보내거나 전기나 자기 자극을 가해 치료효과를 보는 것이다. 빈 대표는 “실제 전기자극을 했을 때 뇌에 전류가 어떻게 퍼져 자극 효과를 만들어내는지 눈으로 볼 수 있고 내가 원하는 영역이 잘 자극이 됐는지 확인할 수 있다. 반대로 자극하길 원하는 영역을 선택하면 알고리즘이 알아서 그 영역을 잘 자극할 수 있는 전극 부착 위치를 찾아준다”고 설명했다. 전기자극 치료를 좀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고, 임상치료의 효과를 해석할 때도 도움을 줄 수 있다. 테스랩은 2019년 의료기기 허가·출시가 이뤄졌고, 잉크는 임상연구를 진행 중이다. 티엠에스랩은 현재 연구용으로 출시됐다.
안정적 매출과 연구개발 선순환 만들고파
의료분야는 제품 인허가, 평가 절차와 관련한 규제가 까다롭다. 환자의 생명과 관련되기 때문에 엄격한 기준으로 개발돼야 하고, 임상시험을 통해 효과를 입증해 인허가를 받고 시장에 판매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하지만 빈 대표는 “이건 해결해야 할 과제가 아니라 의료분야의 특수성이고, 이 단계를 넘어서면 경쟁자를 방어할 수 있는 좋은 진입장벽이 될 수도 있다”면서 “다만 제품의 연구개발부터 판매까지의 기간을 잘 버티는 게 중요한데 쉽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스타트업 창업 환경은 굉장히 좋아졌다고 평가했다. 창업할 당시에도 자금 지원 사업은 많았는데 지금은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의 숫자나 투자금액 면에서 그때보다 풍성해졌다는 것이다. 의료분야도 데이터 활용과 관련한 규제가 융통성 있게 바뀌었다. 빈 대표는 “정부와 여러 의료기관이 동참해 데이터를 모아 가공하고, 이를 바탕으로 2차 생산을 할 수 있도록 했다”며 “데이터를 확실하게 가명화할 수 있다면 이를 활용한 연구개발도 가능해 규제 안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충분히 많다”고 말했다.
제품 출시가 속속 이뤄지면서 매출도 증가 추세이다. 올해 매출은 15억원 이상을 예상하고 있다. 현재 뉴로핏은 200억원 규모의 시리즈 B 투자 유치를 진행 중이다. 2020년 1월 마감한 시리즈 A 90억원을 포함해 누적 106억원의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확보 자금은 ATNV(아밀로이드·타우·신경 퇴행·혈관성 신경병리) 시스템 구축 및 글로벌 임상실험 진행에 쓸 예정이다. 빈 대표는 “치매는 현재까지 완벽한 치료방법이 없어 최대한 조기에 진단해 예방적 치료를 하는 게 최선의 접근 방법이다. 그래서 우리도 조기 진단을 목표로 하고 있고 이를 위해 미국 국립노화연구소와 국제 알츠하이머협회에서 제안한 치매 진단 가이드라인인 ATN에 혈관병리를 추가한 ATNV 영상 기반 치매 진단·예후 예측 기술 고도화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뉴로핏은 여의도성모병원과 함께 치매극복연구개발사업단 수행기관으로 선정돼 5년간 15억원의 국가지원을 받고 있다.
내년 말 이후를 목표로 기업공개도 추진할 계획이다. 빈 대표는 “상장은 회사를 글로벌 레벨로 키우기 위한 하나의 시금석으로 보고 있다”면서 “무엇보다 지속가능한 회사, 즉 강력한 기술로 안정적인 매출을 확보하고, 이를 토대로 지속적으로 연구개발을 하는 회사를 만드는 것을 뉴로핏 대표로서의 1단계 목표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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