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톤 코일에 고려인 하청노동자가 짓눌렸다

김원진 기자 2021. 5. 16.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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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대단한 꿈을 품었던 것은 아니었다. 큰돈을 쥐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러시아보다 나은 급여 수준을 보고 아버지가 있는 한국에 왔다. 2016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넘어왔다. 경기도 광주와 평택, 충남 논산에서 다시 아산 둔포면으로 일자리를 찾아 거주지를 옮겼다. 알루미늄과 고무공장을 주로 다녔다. 주말에는 지인들과 태안 만리포에 놀러가는 게 낙이었다.

김올레그씨(25)는 “그냥 작은 가게 하나 차릴 정도만 벌고 싶었어요”라고 했다. 그는 고려인 4세다. 러시아 연해주에서 나고 자랐다. 김올레그씨는 충남 천안의 한 대학병원에 5개월째 입원해 있다. 중환자실, 일반병동, 격리병동을 오가며 지낸다. 여자친구인 정안젤리카씨(24)가 다니던 공장을 그만두고 24시간 간병인 역할을 한다. 정안젤리카씨는 우크라이나 크리비리흐에서 건너온 고려인 4세다. 정안젤리카씨는 지난 5월11일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우리 둘의 삶이 함께 일시정지된 느낌”이라고 했다.

사고가 일어난 건 지난해 12월15일이었다. 오전 11시40분쯤, 7t 지게차 운전자가 “악” 소리를 질렀다. 근로복지공단에 제출된 문건에는 ‘코일을 지게차로 이동 적재하던 중 지게차에서 코일이 떨어졌다’고 쓰여 있다. 코일은 둘둘 말린 철강재다. “지게차가 규정을 지키지 않고 코일 4개를 동시에 끌어올리며 무리하게 작업을 했다고 해요” 김올레그씨가 당시 사건 목격자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떨어진 코일이 또 다른 코일을 치면서 도미노처럼 쓰러졌다. 앉아서 완제품을 포장하고 있던 김올레그씨의 허리 아래를 코일이 덮쳤다. 옆에 있던 고려인 동료가 순간 김올레그씨의 상체를 잡아끌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사람들이 모여 코일을 밀었지만 꿈적도 안 했다. 크레인으로 코일을 걷어내기까지 5분이 걸렸다. 4만991㎡(약 1만2500평) 규모 대창스틸 아산공장에서 일어난 사고였다. 출근한 지 이틀 만이었다. 하루하고 반나절밖에 일을 못 해 손에 쥔 급여는 13만3145원뿐이었다.

사고 소식을 유일하게 전한 기사(대창스틸 아산지사서 20대 근로자 작업 중 5t 철판 코일에 깔려, 뉴스프리존)는 ‘생사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썼다. 피해를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사고는 컸다. 김올레그씨는 하반신에 다발성 골절을 입었다. 하반신 마비와 같은 후유장애를 걱정해야했다. 방광 등 내부 장기도 일부 파열됐다. 권역외상센터에서 응급수술만 4번 했다. 염증 감염 때문에 본격적인 재활도 아직 들어가지 못했다. 김올레그씨는 지난 5월11일 경향신문과 화상통화에서 “미래에 대한 두려움, 병원에 있어야 하는 답답함과 지겨움이 커요”라고 말했다. 김올레그씨는 현재 격리병동에 있어 직접 만날 수 없었다.

충남 천안의 한 대학병원 격리병동에 입원해 있는 김올레그씨. | 김올레그씨 측 제공


■곳곳에 법 위반

산재를 낸 대창스틸은 코스닥 상장사다. 포스크의 냉·열연 철강제품 지정판매업체다. 포스크에서 받은 철강 원자재를 가공해 국내 자동차회사나 건설사에 판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올라온 2020년 사업보고서를 보면, 매출은 1710억원이다. 매출액 규모가 커 관계 법령상 중소기업이 아니다. 정규직 직원은 75명이다. 기간제 노동자 9명을 합쳐도 직원이 84명이다. 매출액 규모에 비하면 적은 직원 숫자다. 하청노동자 사용을 늘리면서 직접 고용은 최소화한 것으로 보인다.

김올레그씨는 하청노동자이자 이주노동자다. 그는 원청업체 대창스틸과 도급계약을 맺은 하청업체 거창테크 소속이다. 코일을 자르는 슬리팅 작업을 거들었다. 거창테크 측과 따로 근로계약서는 쓰지 않았다. 시급 8590원에 하루 11시간 일하는 하청업체의 ‘무늬만’ 정규직이었다. 김올레그씨는 “저처럼 인력소개소(하청업체)에서 온 사람들이 10명 넘게 있었어요”라고 했다.

하청노동자와 이주노동자 모두 산재에 취약하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지난 2월 공개한 2016~2020년 포스코건설·GS건설 등 9개 기업별 중대재해사고 발생 현황을 보면, 산재 사망자 103명 중 85명(82.5%)이 하청노동자였다. 국내 노동자 중 이주노동자 비율은 3% 미만으로 추산되는데, 이주노동자의 산재 비율은 올 들어서도 10%를 넘는다.

5t 코일을 옮기다 사고를 낸 대창스틸 소유의 7t 지게차. | 김올레그씨 측 제공


“한국에서 여러 공장을 다녔지만 FM(에프엠·Field Manual)대로 했던 곳은 없었어요” 김올레그씨가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창스틸 아산공장은 산재 발생 가능성을 높이는 여러 조건을 갖췄다. 원청·하청 모두 안전에 무감했다. 근로복지공단에 제출된 ‘재해사실 확인서’를 보면 사고 당시 신호수는 없었다. 어느 누구도 사전 안전교육을 하지 않았다. 김올레그씨는 하청업체의 주의 사항 몇 가지만 구두로 안내받았다. 사고 이후에는 원청·하청업체에서 한달에 한 번꼴로 조회시간이나 교대시간에 안전교육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하청업체가 쓴 ‘산업재해 조사표’ 중 재방방지 계획에는 ‘안전교육 등’이라고만 쓰였다.

대창스틸은 지게차 안전 관리도 소홀했다. 사고 당일 7t 지게차를 운전한 대창스틸 직원은 면허가 없었다. 건설기계관리법 위반이다. 이 직원은 대창스틸 소속으로 근무하다 정년퇴직한 뒤 촉탁직으로 재고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이전부터 무면허로 지게차를 운전했을 가능성이 크다. 대창스틸은 회사 소유인 7t 지게차에 보험을 들지 않았다. 7t 지게차는 의무 보험가입 대상이 아니어서 보험을 들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대창스틸이 거창테크와 맺은 도급계약을 지키지 않은 정황도 확인됐다. ‘생산라인 도급계약서’에는 ‘거창테크(을)가 소속작업자에 대해 업무지휘권을 가지며, 현장 책임자를 반드시 을 소속 관리책임자가 수행하도록 한다”고 쓰여 있다. 현장은 계약서대로 움직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현장 노동자들과 하청업체 관계자는 모두 “일상적으로 대창스틸의 업무 지시를 받았다”고 했다. 도급계약을 벗어나 원청업체가 하청업체 노동자에게 직접 지시를 내리면 위장도급으로 법령 위반 소지가 있다. 김올레그씨의 먼 친척 김알렉산더씨(39)는 “우리끼리는 하청업체보단 ’인력소개소’로 불러요. 그냥 고려인들 큰 공장에 소개해주면 그걸로 끝이니까요”라고 했다. 김올레그씨도 인터뷰 내내 ‘인력소개소 소개’라는 표현을 썼다.

사고 전 김올레그씨. | 김올레그씨 측 제공


■원청은 ‘애매모호’ 답변만

“상해보험이라도 하나 가입해줬어야 했는데…” 김알렉산더씨가 말했다. 그도 고려인 4세다. 코로나19 여파로 하던 사업을 접고 지난해부턴 보험설계사로 일한다. 보험 일을 한 뒤부터 고려인 이주노동자들이 “깔렸다. 잘렸다. 뚫렸다. 절단됐다”는 이야기를 수시로 듣는다. “앞으로가 문제죠. 올레그가 멘탈이 튼튼한 편인데도 요새 우울증 같은 게 오는 것 같아요. 재활이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고, 밥벌이 할 수 있는 몸상태로 돌아올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인데…”

김올레그씨의 산재 피해는 인정됐다. 산재가 승인됐다 하더라도 경제적 부담은 발생한다. 산재보험의 보장 범위를 벗어난 비급여 의료비, 간병비 등은 큰 부담이다. 김올레그씨는 병원에 있는 5개월여 동안 비급여 비용만 1000만원 넘게 발생했다. 간병비도 산재보험에선 보통 70~80%만 지급된다. 김올레그씨 가족은 대창스틸에 향후 발생하는 비급여 비용과 간병비 지급을 서면으로 약정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사측은 답변을 피하고 있다.

김올레그씨 측 대리인인 정해명 노무법인 상상 노무사는 “원청에서는 계속 구두로만 비급여 비용을 지급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고 했다. 원청인 대창스틸이 법적 구속력이 있는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의미다. 정해명 노무사는 “하청업체는 4~5년에 한 번씩 사회보험 미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인을 말소하고 새로 등록해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지는 부분도 있다. 아직까진 원청·하청이 비급여 부분을 부담해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돈이 아까운 게 사람 마음이라 언제든 나몰라라 할 수 있다. 실질적인 사용자인 대창스틸이 명확하게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산재에 따른 비급여 의료비는 근로복지공단에서 개별요양급여제도로 청구할 순 있지만, 보장 폭이 크지 않고 지급까지 시간도 오래 걸린다. 정해명 노무사는 또 다른 고려인 이주노동자 산재 사례를 들었다. 지난해 10월 경기도 안산의 한 공장에서는 고려인 이주노동자의 손가락이 일부 절단된 사고가 일어났다. 치료하면서 발생한 비급여 370만원을 개별요양급여제로 신청하려 했지만, 근로복지공단에서 보장 범위가 크지 않다는 답변을 들었다. 이 노동자도 하청업체 소속이었고, 원청은 비급여 비용 지급을 거부하고 있다. 정해명 노무사는 “공단에선 비급여 비용을 청구해도 지급에는 6개월까지 걸린다고도 했다. 제도가 아직 자리잡지 않아 공단의 비급여 비용 지급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대창스틸에 수차례 연락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대창스틸 아산공장 담당 고문은 “제가 오기 전 있었던 일이라 알지 못한다”고 했다. 대창스틸 본사 관계자는 지난 5월12일 “담당자가 자리가 없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5월13일 “저희가 질문에 답변할 의무는 없지 않느냐. 담당자에게 보고는 하겠다”고 말했다.

대창스틸 측은 5월17일 뒤늦게 “저희는 직원 한 명이 발생시키는 매출액 규모가 20억원 정도인데, 이 정도면 동종업계에서도 매출액 대비 고용인원이 많은 편에 속한다”며 “지금까지 발생한 김올레그씨 비급여 비용은 지난 5월10일 지불했다. 앞으로 발생하는 추가 의료비용 지급을 서면으로 약정하는 부분도 적극적으로 검토해보겠다”고 밝혔다.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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