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 시대의 종언: 그럼에도 왜 사회민주당은 쇠락했는가

한겨레 2021. 5. 16.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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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창]

[세계의 창]티모 플렉켄슈타인 ㅣ 런던정경대 사회정책학과 부교수

독일이 오는 9월26일 연방총리를 뽑는 독일 연방의회를 선출한다. 16년 동안 재임한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이름은 이번 투표용지에는 오르지 않는다. 한 시대가 끝나는 것이다! 메르켈은 독일 정치뿐만 아니라 유럽연합(EU)을 지배했다. 많은 사람들이 루터교 사제의 딸인 메르켈을 유럽의 실질적인 지도자로 여긴다. 그는 유럽 부채 위기와 인도주의적 도전이었던 시리아 난민 위기,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드라마’ 등 격동의 시기에 안정적으로 대처했다.

2018년 10월 퇴진 의사를 밝혔던 메르켈 총리는 독일이 코로나19 위기로 고전할 때 퇴임하게 된다. 애초 독일은 대다수 이웃 나라보다 코로나19 사태에 상당히 잘 대처했지만, 느린 백신 접종 속도와 세번째 유행에 대한 논쟁은 메르켈의 중도우파 기독교민주당(CDU·기민당)에 타격을 줬다. 기민당은 권력투쟁 끝에 독일 최대 주이자 과거 사회민주주의의 심장부였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주지사인 아르민 라셰트 당대표를 총리 후보로 지명했다. (코로나19 사태 동안 별 성과가 없었고 특별한 국가 비전도 없어 보이는) 라셰트는 자신보다 더 인기 있는 바이에른주 주지사이자 연립여당인 기독교사회당(CSU·기사당) 대표 마르쿠스 죄더를 누르고 총리 후보가 됐다.

우파의 혼란은 메르켈의 당과 이른바 ‘대연정’을 꾸려온 사회민주당(SPD·사민당)에 기회를 제공했다. 사실, 과거 총리직 대결은 기민당과 사민당 사이에 벌어져왔다. 사민당은 올라프 숄츠 현 재무장관을 경선 후보로 내세웠다. 독일이 코로나19 봉쇄 기간에 매우 건전한 재정 상태를 유지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가 유력한 경쟁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론조사를 보면 사민당은 지지율 14%로, 역대 최저치였던 2017년 총선 때의 20.5%에도 못 미친다. 메르켈이 처음 총리가 된 2005년 사민당의 득표율은 34%였다. 확실히 사민당은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다. 메르켈의 중도 정책이 사민당의 매력을 깎아먹었고, ‘사회적 정의’라는 과거 브랜드는, 기회주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실용주의 노선의 정치적 선택들이 유권자들의 신뢰를 침식하면서 사라졌다.

녹색당이 사민당 대신 기민당의 주요 도전자가 됐다. 녹색당은 2017년 총선에서 10%도 못 얻었지만 최근 조사에서는 26%의 지지율로 23%인 기민당과 팽팽한 경쟁 구도를 그리고 있다. 녹색당은 이런 유리한 위치에서 공식적으로 ‘총리 후보’를 발표했는데, 과거라면 조롱거리가 됐을 행사였다. 기민당의 라셰트에 대한 대안으로 나선, 별다른 행정 경험이 없는 40살의 아날레나 베어보크에게 유권자의 44%가 호감을 나타내고 있다.

녹색당은 현재 군소정당이 아니라 독일 16개 주 가운데 11개 주의 정부를 구성하고 있다. 벤츠와 포르셰의 고향인 남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서는 2016년 이후 제1당으로 주정부를 이끌고 있다. 확실히 기후변화로 인해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녹색당은 환경이라는 핵심 쟁점을 넘어 정책적 주류 정당이 됐고, 과거 핵심 선거구를 뛰어넘어 유권자 전반에서 변화의 분위기를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선거일까지 녹색당이 현재 기세를 유지할지 불확실하다. 그러나 메르켈이 처음 총리가 된 2005년 이후 독일의 정당정치 체제가 큰 변화를 겪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과거 70~80%의 득표율로 독일 정치를 지배했던 기민당과 사민당은 현재 독일인 다수를 대표하지 않는다. 새로운 포퓰리즘 우파 정당을 포함한 6개 정당의 연방의회처럼 더 분열된 정당 체제로 바뀌었다.

선거를 앞두고 다른 정당이 기민당의 우세를 위협하는 현상 자체가 생소하고 선거일까지 기민당이 반전을 이룰지도 모르지만, 사민당은 계속 수세적이기만 하다. 이런 경험은 유럽 전역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공유하고 있고, 아직 유리한 위치에 있는 다른 중도좌파 정당들에는 경고 신호로 간주되어야 한다. 사회 곳곳의 불안정을 해결하는 진보적 미래 프로젝트를 정의하지 못하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유권자들로부터 가차 없이 처벌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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